사회

[단독]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 누가 그들을 'IT노예'로 만들었나

김건호 2018. 10. 4.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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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대한민국 IT 노예②] '크런치 모드'에서 '워라벨'을 바라는 개발자들

2016년 11월, 넷마블의 한 20대 게임 개발자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한창 미래를 꿈꿀 20대 청년은 1주일간 78시간에서 89시간에 이르는 고강도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회에 따르면 그는 발병 전 12주간 불규칙한 야간근무와 초과근무를 지속했다고 한다. 결국 공단은 유족이 낸 유족급여 청구에 대해 지난해 6월 ‘업무상 재해’로 승인했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IT 강국이다. 세계 최고속도의 인터넷을 기반으로 컴퓨터와 스마트폰, 게임 등 많은 분야에서 석권하며 명실상부한 IT 강국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안타깝게 삶을 마감한 20대 개발자의 사례처럼, 게임업계에서는 밤과 낮의 구분이 없는 근무, 임금과 초과근무수당 미지급 등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노동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임금 미지급에 문서위조까지...살벌한 게임업계

근로기준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구오하이빈 대표 등 아이덴티티 게임즈 임직원들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서울고용노동청에 따르면 구오하이빈 대표는 퇴직자 69명의 임금 2800만원을 지급기일 내에 미지급한 혐의와 재직자 100여명의 임금 310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경찰은 아이덴티티 게임즈 직원 3명에 대해서도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지난 7월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경찰은 이들이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한 사실이 없음에도, 은행 이체자료와 내부결제문서를 조작해 임금을 지급한 것처럼 꾸며 지난해 7월25일과 지난해 8월18일 두 차례에 거쳐 허위문서를 서울노동청에 제출해 공무집행방해혐의가 있다고 봤다.

아이덴티티티 게임즈는 작은 회사가 아니다. 2007년 4월 설립된 이 회사는 직원 수만 300여명의 중견게임사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회사로부터 투자 등을 받으며 급성장했고, e스포츠와 블록체인 등 신사업에도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신용평가기관인 나이스평가정보 자료를 보면 이 업체 퇴사율은 62%에 육박한다. 직원 수는 300명가량인데 지난 8월 기준으로 1년간 132명이 입사한 반면, 168명이 퇴사했다.

◆개발자들의 허리를 밟고 큰 12조원 게임시장

“사실 게임으로 조 단위 돈을 벌어오죠. 사실 개발자들은 죽어나는데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죠.”

국내 굴지의 한 게임사에서 개발자로 일했던 김모씨는 게임업계의 노동문제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김씨는 대부분 회사 내부에서 팀 단위로 개발을 하다 보니 성과급으로 인한 임금도 천차만별이라면서 과거 IT기업들이 스타트업으로 시작하다 보니 야근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지난해 11조6000억원에 이어 올해 12조1000억원, 내년 12조5000억원 등으로 매년 커지는 추세다.

실제로 게임업체들의 수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른바 ‘3N’이라 불리며 대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들의 매출은 넥슨이 2조2187억원, 넷마블은 2조4248억원, NC소프트는 1조7587억원에 달한다.

이른바 ‘3N’으로 불리는 넥슨, 넷마블, NC소프트 사옥. 뉴시스
◆노조 만든 업체들 “특수성 고려하며 시정해야”

게임업계 내부에서는 이러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 최대 게임업체 넥슨에서 업계 최초로 넥슨 노동조합이 출범한 데 이어 스마일게이트에서도 게임업계 두 번째 노동조합인 SG길드가 설립됐다. 이들은 크런치모드를 워라벨 모드로 바꿔보겠다며 포괄임금제 폐지와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넥슨 노조는 설립선언문을 통해 “국내 게임산업은 시장규모 12조원대로 급성장했지만 게임을 설계하고 만드는 게임업계 노동자들의 처지는 매우 열악한 현실”이라며 “무리한 일정에 갑작스러운 요구, 프로젝트가 접히면 이직이 강요되는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떨어야 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넥슨 노조는 게임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해 나갈 견인차가 될 것”이라며 “나아가 더 많은 게임산업 노동자들이 노조할 권리를 찾는 길을 열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스마일게이트 노조도 설립선언문을 통해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의무적 근로시간 없는 유연근무제를 추구하며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합리적인 조직문화 구축을 위해 불합리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강조했다.

◆‘크런치 모드’와 ‘워라벨’, 달라도 너무 다른 노동

“최고 악몽은 게임 출신 전 한두달입니다. 사실 회사입장에서는 수백억원을 들여서 만들었는데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죠.”

중견 게임사의 개발자로 일한 이모씨는 기자에게 크런치 모드에 대해 설명했다.

게임업계에는 타 분야와 달리 크런치 모드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게임 출시가 임박해 게임개발자들이 고강도 근무체제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수십일 밤을 새우고, 숙식을 회사에서 해결해야 하는 크런치모드에서 치열한 게임업체 간 경쟁과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이 들어가는 개발비용 등을 안고 있는 개발자들의 고충이 녹아있다.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은 “비단 게임업계뿐만 아니라 임금 미지급이나 업무 강요 등 부당한 노동업무환경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며 “한편으론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형태를 띠는 게임업계의 특수성도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게임개발은 주로 팀 단위로 이뤄지고 개발된 게임의 성과에 따라 큰 보상이 따른다”며 “이를 일괄 규제시키면 게임개발의 역동성을 억제하는 측면이 있고, 24시간 AS가 필요한 게임 서비스 특성상 새벽에 실시간 오류가 발생하면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으니 면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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