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떠난 허수경 시인.. "빈 자리 클 것 같다"

윤성효 2018. 10. 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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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독일에서 암 투병중 별세.. 스승 강희근 시인 등 애도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고 허수경 시인.
ⓒ 이근혜
"자주 지나다니는 길은 잃어버릴 수 없어. 우리가 잊어버릴 수 없는 이유는 마음속으로 서로 자주 지나다녔기 때문이야"(<너 없이 걸었다> 중).

"당신, 이 저녁 창에 앉아 길을 보는 나에게, 먼 햇살, 가까운 햇살, 당신의 온 생애를 다하여, 지금, 나에게 스며든다, 그리움과의 거친 전쟁을 멈추고 스며드는 당신에게 나 또한, 스며든다"(<나의 저녁> 중).

허수경 시인이 '먼 길'을 떠났다. 향년 54세. 허수경 시인은 지난 3일 오후 7시 50분(한국시간) 독일에서 암 투병 중 별세했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시인은 1992년 독일로 건너가 고고학을 공부했고, 뮌스터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인은 30여 년간 이국의 삶 속에서도 모국어로 시를 썼다.

허 시인은 1987년 계간 <실천문학>으로 문단에 나왔다. 이후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역에서> 등의 시집을 냈다.

그리고 고인은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등을 냈다.

허수경 시인은 2001년 동서문학상, 2016년 전숙희문학상에 이어 올해 '제15회 이육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스승 강희근 교수 "빈 자리 클 것 같다"

허수경 시인을 아는 사람들은 가슴 아파하고 있다. 대학에서 고인을 가르쳤던 강희근 경상대 명예교수(시인)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스승이 제자의 죽음에 대해 말하려고 하니 가슴이 더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강희근 교수는 "올해가 경상대 개교 70년이다. 이만한 무게의 시인을 배출한 심정은 더할 수 없이 좋고, 훌륭한 일을 해낸 허 시인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고인은 늘 시대·역사에 대해 책임지는 시인이었다. 역사를 꿰뚫어 보는 통시적 관점에서 인류문화를 찾아 들어가려고 했다"며 "스승으로서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못했는데 청출어람을 보였다. 다시 그런 훌륭한 제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빈 자리가 클 것 같다"고 말했다.

허수경 시인은 경상대 국문학과 2회 졸업생이다. 경상대 경영학과 교수였던 허남백 교수(작고)가 아버지로, 허남백 교수는 생전에 희곡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허 시인은 진주여고 졸업생이다. 진주지역 고등학교가 평준화되기 직전 해에 진주여고에 입학했다. 강희근 교수는 "집에서는 다른 대학이나 학과 진학을 바랐는데 본인이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했다, 그것만 봐도 자기 꿈이 컸던 것 같다"고 했다.

또 그는 "대학 다닐 때 보면, 고인은 이른바 '운동권'이었다. 독서모임에서 활동했고, 다른 사람보다 늘 몇 발짝 앞에 갔다. 동기들이 태클을 걸지 못했고, 그만큼 의식이 늘 앞서 갔다"며 "그리고 대학보다는 늘 바깥에 귀를 기울이고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 방학 때 <실천문학> 등을 다니며 귀를 기울였다. 진주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우려고 곳곳을 돌아다닌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며 "하루는 연구실에 들어와서 차 한 잔 달라고 하며 '돌고 돌아도 별 군데 없더라'는 말을 하더라. 선생의 자부심을 키워주려고 한 말 같기도 해서, 그 마음이 갸륵했다"고 덧붙였다.

고인과 진주에 있을 때 가깝게 지낸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는 "오늘 아침 소식을 듣고 가슴이 너무 먹먹하다"며 "그의 시라도 고향 진주에서 오래 살도록 다시 챙겨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문학과지성사>는 홈페이지에 고인에 대해 "생과 죽음을 넘어서는 깊고 오랜 시간의 감각을 노래한 시인"이라며 "우리는 허수경이 시로써 이야기한 오래된 일과, 그것이 무엇으로 남아 현재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묻고 또 물으며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소개해 놓았다.

허수경 시인의 장례는 독일 현지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진다. 독일에는 고인의 남편이 있다.

고인의 동생인 허훈(진주)씨는 "어제 밤에 소식을 들었다. 누나는 2011년에 진주에 다녀간 게 마지막 고향 길이었다"고 말했다.

진주지역 문인과 고인을 아는 사람들은 10월 중하순경 허수경 시인을 추모하는 모임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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