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뉴스AS] 18년 만에 재심 확정, 무기수 김신혜씨는 죄를 벗을 수 있을까

입력 2018.10.04. 18:46 수정 2018.10.04.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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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재심 결정 핵심 쟁점 4가지

[한겨레]

친부 살해 혐의로 15년 8개월째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씨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가 지난달 28일 친부살해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8년째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41)씨에 대해 재심을 최종 확정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경찰 수사의 위법성과 강압성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인용하며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한 것이다.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확정은 사법 사상 처음이다. 김신혜씨가 연루된 사건은 무엇이며, 재심 재판의 쟁점은 무엇인지 하나씩 짚어봤다.

1. 사건의 발생

18년 전인 2000년 3월7일 새벽 5시50분. 전남 완도군의 한 버스정류장 앞 도로에서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남성은 이 버스정류장에서 7㎞ 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 3급 지체장애인 김아무개(당시 52살)씨였다. 김씨가 발견된 현장에선 한 차량의 부서진 라이트 조각이 뿌려져 있었다. 이 때문에 사건은 처음에 뺑소니 사고로 의심됐다.

하지만 시신 검안 결과, 김씨에게 교통사고와 관련한 외상과 출혈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확인 결과, 김씨의 시신에선 혈중알코올농도 0.303%와 함께 수면유도제 성분인 독실아민이 13.02㎍/㎖ 검출됐다. 이에 경찰은 누군가가 수면유도제와 술을 이용해 김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추정하고, 김씨 발견 이틀 뒤인 9일 새벽 0시10분께 김씨의 큰딸인 김신혜(당시 23살)씨를 전격 체포했다.

김씨의 체포에는 김씨 고모부의 진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씨의 고모부는 경찰에서 김씨가 여동생을 성추행한 아버지에게 앙심을 품고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게다가 김씨가 같은 해 1월 아버지 명의로 상해·생명 보험 8개에 가입한 뒤 보험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범행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대법원은 2001년 3월 존속살해죄로 김씨의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2. 김씨의 혐의 부인

김신혜씨의 주장을 보면, 김씨는 체포된 직후부터 자신은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항변했다. 하지만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했을 뿐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지속해서 호소했다.

고모부의 경찰 진술에 대해서도 김씨는 고모부에게 자백한 적이 없고, 체포되기 전날인 2000년 3월8일 오후 11시20분께 고모부가 자신을 불러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은데 네가 자백하지 않으면 남동생이 큰일 난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찰서로 갔다고 주장했다.

보험금에 대해서도 아버지가 사망하더라도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기간이기 때문에 살해 동기가 없다고 맞섰다. 김씨는 줄곧 “보험은 모집인들을 배려해 가입한 것일 뿐”이라며 “아버지가 나를 성추행하지 않았고, 나도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아울러 경찰은 김씨가 사용했다는 수면유도제 구입처도 밝혀내지 못했다.

게다가 사건 발생 14년이 지난 2014년께 인권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가 청주여자교도소에서 김씨를 만나 경찰이 영장 없이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폭행과 가혹 행위로 자백을 강요한 정황과 수사과정에서 억지로 현장 검증을 시켜 범행을 재연하게 한 점 등이 드러나기도 했다.

3. 재판부의 재심 결정

2015년 1월 김씨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 법률구조단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경찰이 2인1조 압수수색 규정을 어기고 영장 없이 김씨 집을 압수수색 했음에도 둘이 한 것처럼 허위로 수사기록을 작성했고, 김씨가 현장검증을 거부했는데도 영장 없이 범행을 재연하게 한 점 등을 재심 사유로 들었다.

이에 광주지법 해남지원(지원장 최창훈)은 2015년 11월18일 존속살해죄 등으로 15년8개월째 복역 중인 김씨 사건의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2000년 사건 당시 경찰이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김씨 집을 압수수색하고, 이 과정에서 참여하지 않은 경찰의 명단을 넣어 압수조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 수사에 잘못이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은 압수수색에 참여하지 않은 경찰을 참여했다고 조서에 썼는데, 경찰 대신 군대 동기가 압수수색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씨가 현장 검증을 거부했는데도 영장 없이 장소를 옮겨가며 범행을 재연하게 하는 등 강압 수사를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 경찰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허위공문서 작성과 행사 등 잘못을 저질렀고, 이는 형사소송법이 명시한 재심 사유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죄를 선고할 새로운 증거를 발견한 것은 아닌 만큼 형의 집행을 정지하는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찰이 직무에 관한 범죄를 저지르는 등 수사가 강압적으로 이뤄져 절차상 흠결이 인정된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에 대한 판단은 재심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광주지법의 2015년 판결에 대해 검찰이 항고했고, 광주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노경필)가 이를 기각하자 검찰은 재항고를 했다. 지난달 28일 대법원의 재심 확정판결은 이 재항고마저 기각한 판결이다. 경찰 수사의 위법성과 강압성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인용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법원의 재심 확정으로 김씨는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재심을 받게 됐다.

4. 제한적인 재심 사유

2014년 국회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5년 동안 대법원 재심청구 사건 237건 가운데 95%인 229건이 기각됐다.

형사소송법 420조의 재심 이유는 총 7개 조항으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조항이 매우 협소하게 해석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조항이 제420조 제5호 ‘유죄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하여 무죄 또는 면소를, 형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하여 형의 면제 또는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경한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다. 즉 원판결을 바꿀만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때에만 재심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법원에서 이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대법원은 2009년 7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제5호의 의미를 △피고인이 과실 없이 확정판결 선고 전에 이를 제출할 수 없었다가 판결 후에 새로 발견된 증거로서 △기존 판결이 인정한 사실을 뒤집을 수 있을 만한 증거 가치가 있을 때라고 해석했다. 증거가 피고인의 고의나 과실에 의해 기존 판결에서 제출되지 못했다면 이를 재심 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신혜씨 사건 재심 재판부도 김씨 쪽이 주장한 무죄 증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경찰관의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 등 사법경찰관이 저지른 직무에 관한 죄만을 인정해 재심 개시를 최종 확정했을 뿐이다.

과연 김씨는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18년 만에 벗어던질 수 있을까.

이재훈 장예지 전광준 기자 n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