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파산.. 아이는 빚을 물려받았다

조백건 기자 입력 2018. 10. 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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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 선 아버지가 아들 계좌로 5000만원 입금.. 고스란히 빚으로
1년뒤 법원 조사로 가까스로 면책, 취업·금융거래 제약서 벗어나

지난해 10월 말, 중학교 2학년 김형준(가명)군은 어머니와 늦은 저녁을 했다. 두 사람은 월세 9만원 하는 수도권의 한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어렵게 입을 뗐다. "오늘 법원에서 네가 파산 선고를 받았다."

형준이가 파산 선고를 받게 된 건 아버지가 아들 계좌로 부친 5000만원 때문이었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2007년 건설업을 하는 지인이 저축은행에서 50억원을 빌릴 때 연대 보증을 서줬다고 한다. 사업 부진으로 대출금 상환이 되지 않자 은행은 형준이 아버지에게 빚 독촉을 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2011년 형준이 계좌로 5000만원을 송금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이 은행도 경영 부실로 파산이 났다. 은행 파산 절차는 예금보험공사(예보)가 맡았다. 예보는 은행이 물어줘야 할 돈과 받아야 할 돈을 정리했다. 받아야 할 돈 중 하나가 형준이 아버지가 송금한 5000만원이었다. 예보는 2013년 형준이를 상대로 이 돈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냈다. 5000만원은 형준이 아버지가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인데 그러지 않고 아들 계좌로 숨겼다는 것이다. 입금된 계좌의 명의가 형준이로 돼 있어 소송의 '피고'는 형준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법정에는 형준이 어머니가 나갔다. 아버지는 몇 년째 연락 두절 상태였다. 어머니는 "남편이 친정에서 빌린 돈을 형준이 계좌에 넣은 것이고 돈은 양육비에 썼다"고 했다.

법원(1·2심)은 예보 손을 들어줬다. 이 돈이 형준이 외가에서 나온 돈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법원 판결로 형준이는 5000만원을 물어줘야 할 처지가 됐다. 2심 판결은 2015년 9월에 나왔다. 형준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돈을 갚을 길이 없자 형준이 어머니는 법원에 아들의 파산 신청서를 냈다. 형준이는 이때까지 자신이 5000만원이 넘는 돈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이고, 법원에서 파산 심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법원은 작년 10월 형준이에게 파산 선고를 했다. 빚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은 연령에 상관없이 파산의 원인(채무 불이행)이 있으면 파산 선고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중2 형준이는 '파산자' 신분이 됐다. 파산자는 취업과 금융거래 등에서 제약을 받는다.

이후 법원의 면책(免責) 조사가 시작됐다. 법원에 소속된 파산 관재인(변호사)이 형준이의 빚을 탕감해줄지를 심사하는 과정이다. 면책 결정을 받지 못하면 형준이는 10년간 파산자 신분으로 살아야 했다. 관재인을 맡은 최성문 변호사는 어머니를 상대로 재산 상황 등을 조사했다. 최 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형준이가 파산 선고 소식을 듣고 말수가 확연히 줄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형준이는 당시 본인 계좌로 돈이 들어온 사실을 몰랐다. 주된 책임은 그 돈을 넣고 빼 쓴 부모에게 있으니 형준이를 면책해 주는 게 합당하다'는 조사 보고서를 판사에게 제출했다. '미성년자인 형준이가 빚을 갚기도 어려워 보인다'는 내용도 넣었다.

의정부지법은 최근 이를 받아들여 형준이에게 면책 결정을 내린 것으로 4일 알려졌다. 면책을 받으면 파산자 신분에서 받는 제약이 없어진다. 다만 면책을 받았다는 기록은 한국신용정보원에 최대 5년간 보관된다. 최 변호사는 "형준이가 대학 졸업 후 경제적으로 자립할 시기에는 이 기록도 모두 없어져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이번 일로 인한 상처가 빨리 치유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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