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풍력발전 우리동네는 안돼".. 백두대간 곳곳서 갈등

고은경 2018. 10. 5.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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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강준구 기자

“주머니하늘다람쥐, 산양, 담비가 서식하는 생태자연도 1등급지 면봉산에 풍력단지가 들어서는 게 말이 됩니까. 풍력단지가 들어서는 곳은 산사태 위험 1등급 지역과도 가깝습니다. 풍력단지 반대에 서명을 한 주민만 4,000여명입니다.”

추석 명절을 앞둔 지난달 21일 경북 청송군 주민 70여명은 굵은 빗줄기 속 청송군청 앞에 모여 풍력사업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풍력 반대’라고 적힌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주민피해 외면하는 청송군은 각성하라” “주민동의 없는 풍력허가는 무효다” 등을 외쳤다. 들어설 풍력단지와 반경 2㎞ 떨어진 월매리 주민을 대표한 남명재 이장은 “사과농사와 송이를 캐는 주민들이 생업도 미룬 채 환경영향평가와 멸종위기종을 공부하면서 현장을 조사해야 했다”며 “환경훼손은 물론 산림재해 위험성도 큰 만큼 풍력단지가 들어서면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청송군 면봉산에 풍력사업이 추진된 건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사업 타당성 조사가 시작됐고 2012년 10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발전 사업 허가가 떨어졌다. 이후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2016년 8월 2.7㎽급 풍력기 10기에 대한 승인이 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주민들은 풍력단지의 여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은 물론 승인 허가가 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환경영향평가 기준에 따라 사업자는 1.5㎞이내 가구들과 조용히 협의를 마치는 선에서 끝냈기 때문이다.

다른 주민들이 사태를 파악하게 된 것은 2016년 9월 사업자가 3.6㎽급 풍력기 24기로 확대해 환경영향평가를 재승인 받기 위해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면서부터다.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에도 풍력발전 설립이 가능해짐에 따라 사업자가 1등급 지역을 포함시켜 사업을 확대한 것이다. 24기로 확대하는 것에 대한 산업부의 사업 허가는 받았지만 아직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는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다. 사업자는 사업성을 이유로 변경안이 통과된 후 착공한다는 입장이지만 법적으로 이미 허가가 난 10기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착공할 수 있다. 이승철 청송 면봉산 풍력발전단지 저지연합대책위원장은 “올해 초 환경청에서 조사 결과 풍력단지가 들어서는 지역이 생태자연도 1,2,3등급지에서 1,2등급지로 상향조정 됐다”며 “환경적으로 중요성이 입증된만큼 이미 허가가 난 것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1일 경북 청송군청 앞에서 열린 풍력발전 반대 기자회견에서 주민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이상돈 의원실 제공

◇친환경? 환경파괴? 풍력발전 놓고 갈등

청송군뿐만 아니라 최근 경북 영양군, 영덕군 등 경북 지역 곳곳에서 풍력발전소 건설을 놓고 주민과 사업자,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환경부와 한국풍력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백두대간을 따라 90개 풍력발전소에서 1,140㎽ 용량으로 573기의 풍력기가 가동 중이다. 이중 풍력발전을 위해 적합한 연평균 풍속이 초속 7m 이상 지역이 많은 강원, 경북, 전남, 제주 등에 88%가 몰려 있는 상황이다. 현재 102기가 가동되고 있는 경북지역의 경우 추가로 28기를 건설 중이고 공사를 준비하는 발전기도 400여기가 넘으면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역주민들이 풍력에 반대하는 이유는 환경파괴와 소음, 저주파 등에 따른 건강권ㆍ재산권 피해다. 환경적 측면에선 산양, 담비 등 멸종위기종 생물의 보금자리가 파괴되고, 산사태 등의 위험도 커진다는 우려도 크다. 또 풍력발전 특성상 발전기에서 발생하는 저주파도 문제다. 저주파는 음파의 주파수 영역이 100㎐ 이하인 소음을 말하는데 ‘웅웅’하는 소리로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소음과 저주파 영향은 해당 지역 토지 가격 하락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24기의 풍력기가 이미 운영중인 경북 영덕군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사업자 계획대로 환경영향평가가 통과되면 달산면, 남정면 등 이곳에만 538㎽ 용량의 163기가 추가로 들어설 전망이다. 주민들은 소음 문제뿐 아니라 풍력기 회전축에 들어가는 오일의 누수 등으로 송이 최대 군락지로서의 피해가 클 것을 우려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지역주민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자는 환경영향평가를 앞두고 지역 주민 80%의 동의를 얻었는데 동의하지 않은 주민들이 동의절차를 두고 반발하고 있다. 남정면에 5년째 거주하는 김종례씨는 “사업자가 70~80대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보상이나 합의 없이 동의를 받아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달산면 주민인 신훈주씨는 “속으로는 풍력단지 허가를 반대하더라도 해당 지역 내에서 따돌림을 당할까봐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는 주민들도 많다”며 “마을회관에 가면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이 서로 등을 돌리고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2.7㎽급 풍력기 10기에 대해 허가가 난 경북 청송군 면봉산을 무인항공기로 촬영한 전경. 청송 면봉산 풍력발전단지 저지연합대책위원회 제공

◇풍력 40%에 생태우수지역 포함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전체 풍력 환경영향평가 협의건(총 71곳) 가운데 4곳(부동의)을 제외한 67곳이 ‘조건부 동의’가 이뤄졌다. 9곳은 협의 중인 상황이다. 어지간하면 승인이 났다는 얘기다. 특히 71곳 가운데 29곳(40.1%)에는 생태자연도 1등급, 백두대간 등 생태우수지역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사업자가 발전사업에 대해 산업부로부터 인허가를 받은 후에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한 현행 제도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인허가가 난 상황에서 부동의를 하기란 쉽지 않아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4년 생태자연도 2급지에서만 가능하던 풍력발전소 건설을 1급지로 확대하고 산지 내 풍력발전시설 허가 면적도 3만㎡ 이내로 제한하던 것을 10만㎡ 이내로 넓히는 등 규제를 완화한 것도 한몫을 했다. 이런 규제완화는 실제 2015년 GS영양, 제주김녕 등 신규 발전소 설치로 이어졌고 2016년 풍력 누적용량이 전체 에너지 발전 비중의 약 1%에 달하는 1GW를 넘어서는 계기가 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그동안 규제완화로 풍력발전에 대한 허가가 무분별하게 났다”며 “청송과 영덕 풍력단지 현장을 방문해보니 무엇보다 주민들의 반발이 큰 데다 생태우수지역 훼손이 심각하고, 산사태 유발 가능성이 커 사업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환경훼손과 멸종위기종 발견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된 경북 양양군 양구리 풍력단지(왼쪽)와 풍력단지 공사장 주변에서 발견된 수리부엉이. 환경부,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실 제공

◇풍력은 늘려야 하는데, 해법은

태양열과 함께 대체 에너지로 주목 받는 풍력발전은 바람에너지를 풍력 터빈을 이용해 기계적 에너지로 변환시키고, 이 에너지를 이용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화석 에너지와 달리 온실가스 배출이 없다. 정부가 풍력발전에 힘을 싣고 있는 이유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안’에 따르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17년 7%에서 20%까지 달성하고, 특히 풍력의 경우 재생에너지 가운데 현재 8%(1.2GW)인 비중을 2030년 28%(17.7GW)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하지만 환경파괴 논란이나 지역주민 반대를 해소할 방안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점점 더 갈등만 커질 거라는 우려가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역주민과의 상생과 환경파괴를 최소화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상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발전효율이 높은 지역만 우선 개발하는 게 아니라 환경적으로 민감하지 않으면서 발전효율 확보가 가능한 지역을 선정해야 한다”며 “지역주민의 지분이나 펀트투자 등 주민참여방안과 고용창출, 이익공유와 같은 대책마련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위주가 아닌 소규모의 풍력단지를 세우는 것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된다. 송우창 강원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풍력단지를 세워 그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등 소규모로 활용한다면 송전선로 비용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환경파괴와 주민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경북 청송ㆍ영덕=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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