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무엇인가.. 경청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죠

한국일보 2018. 10. 5.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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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책읽어? <20> 김영민 서울대 교수
요즘 가장 뜨거운 칼럼니스트, 김영민(왼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김민정 시인이 만났다. 류효진 기자

그가 쓴 칼럼을 찾아 보니 추석에 관한 것만 세 꼭지나 되었다. 추석을 가지고 그다지 할 말이 많았다기보다 어쩌다 마감 시즌에 공교롭게도 추석이 껴 있던 거지요. 내년 설날에 그의 마감이 잡혀 있을까. 설날이란 무엇인가, 를 벌써부터 기대하게 만든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였다.

김민정(민정)= “어제 교수님 홈페이지 들어가 구경 좀 하려고 했더니 글쎄, 막혔더라고요.”

김영민(영민)= “복구됐습니다. 오늘 아침에요. 가끔씩 문제를 일으킵니다. 네? 아 물론 갑자기 사람들이 많이 오기도 했습니다만.”

민정=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이 칼럼이 진짜 폭발적인 반응이긴 했어요.”

영민= “그렇다기보다… 좋아하는 일부 층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좀 좋아하는 것 같고요. 그렇습니다.”

민정= “사람들이 쓰신 글을 좋아해주니까 솔직히 좀 좋지 않으세요?”

영민= “좋긴 한데 그렇다고 춤을 추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민정= “반문을 자주 하시는 편인가요?”

영민=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는 많이 합니다. 사상 공부에 필요한 방식이기도 하고요. 반문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방식 중 하나지요. 질문이라는 게 사람을 어느 면에서 좀 숭고하게 만드는 게 있는데다 얘기를 진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제가 되기도 하니까요.”

민정= “그래도 신문 칼럼에서 이런 글쓰기를 하는 분은 처음 봐요.”

영민= “그러게요.”

민정= “앞서 쓰신 칼럼들까지 역주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기가 있는데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봤거든요. 재미는 뭐 기본이고요. 이를테면 쓰는 자와 읽는 자가 한데 모여 공을 차는 느낌이랄까. 리드미컬한 놀이 같아요, 글이.”

영민= “제 글에 리듬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글에 리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리듬이 없는 글은 읽기 어려우니까요. 리듬만 있어도 사람들은 글을 읽을 수가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은 합니다. 재미도 그래요. 저는 재미없는 글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굉장히 폭넓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데요, 솔직히 지루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봅니다. 맛없는 디저트를 먹기에 인생이 너무 짧잖아요.”

민정= “오오, 디저트를 좋아하세요?”

영민= “네 좋아합니다. 맛있는 디저트도 당연하고 새로운 디저트도 중요한 경험의 확장이라고 생각해서 충분히 즐기려고도 합니다. 그런데 책 얘기를 하자 하셨는데 칼럼 얘기를 많이 물으시네요.”

민정= “이 칼럼들이 묶여 책으로 나올 거란 얘기를 들었거든요.”

영민= “아, 그렇게 되는군요. 나올 책들이 꽤 됩니다. 여기저기 연재하고 있는 코너들을 모아 책 낼 것들이 좀 됩니다. 참 제가 올 초에 영어로 된 책을 냈어요. 제 책이 ‘중국 정치사상사’라고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라는 제목인데 이게 중국어로 번역이 되는 과정에서 한국어로 된 책도 있으면 좋겠다, 해서 지금 번역 중에 있습니다.”

민정= “그 번역은 누가 합니까?”

영민= “제가 합니다(웃음). 남이 하면 맘에 안 들 수도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제가 하면 좋은 점 중 하나는 맘에 안 들면 바꿀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민정= “그나저나 학부 때 전공이 철학이셨는데 그 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셨는지요.”

영민= “책 많이 읽는 데인 줄 알고 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은 좋아했습니다. 아마 저와 비슷한 세대들이라면 공감할 텐데 전집류를 많이들 팔고 다녔어요. 집에서 부모님이 그거 사주셔서 많이 읽은 거죠. 책은 가리지 않고 잡다하게 읽는 편입니다. 직업이니까요.”

민정= “막상 철학과에 가니 책을 많이 읽게 되던가요?”

영민= “그 학과라서가 아니라 저는 그냥 꾸준히 읽었습니다. 직업에 대한, 미래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없었을 때입니다. 지금처럼 취직이 어렵던 시절이 아니니까 일단 읽자, 읽어나 보자, 그렇게 살 수 있던 세대였습니다.”

민정= “읽기에 비해 쓰기는요? 그 훈련이 일찌감치 되지 않았다면 비문 없이 매끈한 문장 쓰기가 쉽지는 않았겠다 싶거든요.”

영민= “그렇진 않습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중학교 때 좋은 담임선생님들 만나서 좋은 책을 많이 권해 받은 것 같고요, 고등학교 때는 내내 독서회 활동을 했고요. 학교 공부는 안 하고 매주 책 한 권씩, 혹은 단편이든 뭐든 한 편씩 읽고 토론하는 모임 활동을 하니까 책을 꾸준히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때는 김인환 교수님과 김우창 교수님, 이 두 분의 영향 아래 있었고요.”

민정= “이를테면요?”

영민= “하루는 김인환 교수님의 ‘문학개론’을 들었는데 아무 질문이나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사시는 동안 잘했다 싶은 일과 잘못했다 싶은 일을 말씀해달라고요. 잘했다 싶은 건 소설을 닥치는 대로 많이 읽은 일이고, 잘못했다 싶은 건 철학 공부를 체계적으로 못한 일이라고 하셨는데, 말씀 끝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추천해주신 게 기억이 납니다. 김우창 교수님에게는 1학년 때 교양 영어를 배웠는데 플라톤의 ‘국가’를 영역본으로 함께 읽었어요. 그게 너무 좋았습니다.”

김영민 교수는 콤비 자켓, 청바지 차림에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왔다. 스티브 잡스의 그 운동화다. 김 교수는 "신발 볼이 넓어 신었다"고 했다. 류효진 기자

민정= “전공으로 중국 철학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을까요?”

영민= “동서양 할 것 없이 관심이 다 있긴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한 겁니다. 사실 저는 그게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사람이 정확한 인과관계에 의해 행동하지 않거든요. 어느 날 한밤중에 갑자기 치킨을 시키잖아요. 그게 뭐 대단한 인과관계가 있나요? 어느 날 문득 그런 거죠.”

민정= “하버드로의 유학은 어떻게 가시게 된 건가요? 장학금 받아서 간 거라고 하실 거죠?”

영민= “그렇습니다. 학비에 생활이 되는 장학금이 안 생겼으면 아마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버드에서 공부한 건 비슷한데 사상사입니다. 철학보다 역사적인 게 가미가 된 거죠. 직업적으로 저더러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사상사 연구자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정= “유학 가셔서 죄다 원서로만 책을 읽으셨을 거 아니에요.”

영민= “영어 공부를 제대로 못한 세대죠. 고생스럽게 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민정= “혹시 운동권이셨나요?”

영민= “운동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운동권이라는 오해를 받은 적은 있습니다. 제가 쓴 글을 보고 누군가 너 빨갱이구나, 그런 적이 있어요. 너무 미안했죠. 빨갱이들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민정= “글의 기저에 약간의 삐딱함이 있긴 한데요.”

영민= “전 모르겠습니다. 남들은 그렇게 느낄지 모르겠습니다만, 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아마추어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민정= “지극히 겸손하신 거 아닌가요.”

영민= “어지간하면 있는 그대로 말하는 스타일이긴 합니다. 음, 글 얘기를 하시니까… 신춘문예에 당선된 적은 있습니다.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화평론 부문이 처음 신설된 때였는데 필명으로 투고를 했었죠. 유학을 떠났다가 잠시 귀국해서 영화 만드는 거 배울 때였는데 ‘안토니아스 라인’을 가지고 썼거든요. 그런데 덜컥 된 거예요. 심사위원이요? 가물가물한데 최민 선생님과 강한섭 선생님이셨던 것 같은데 영화평론 심사위원은 아니시지만 박완서 선생님이 쓱 등장을 하셔서 이런 말씀을 제게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난 다른 부문 심사위원이었지만, 내가 맡은 부문 글들보다 당신의 글이 제일 좋았어요’라고요.”

민정= “아 뭐예요, 선생님. 이미 프로 글장이셨던 거잖아요.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요. 근데 저는 이런 인용이 좋은 거예요. ‘이건 마크 타이슨의 말이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영민= “사실 제가 일상에서 그렇게 말을 하거든요. 칼럼 읽은 학생들의 반응이 뭐냐면 ‘음성 지원이 되는 것 같다’라고들 해요.”

민정= “몸을 움직이게 하는, 유머가 있는 글을 참 좋아하긴 하는데 흔치가 않아서요.”

영민= “제 생각에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좁은 의미의 유머라는 게 한국의 글쓰기에서 많이 발전되지 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특히 한국 시장의 에세이로 보면 천착을 한 부분은 두 가지인 것 같은데 하나는 교훈을 주기 위한 글쓰기, 재미없을 때가 많죠. 두 번째는 심란한 정서를 파고드는 글쓰기, 답답할 때가 있죠. 그 둘이 그렇다고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고요, 양분이 된 듯하니까, 그 자체로 유쾌한 글도 좀 많이 나와주면 좋겠다 바라는 거죠. 무엇보다 우리에게 시급한 건 고급 서평지 같아요. 적당히 소개하는 건 있어도, 고급스럽고 전문적인 서평지는 없거든요. 예컨대 ‘런던 리뷰 오브 북스’라든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라든지 재력이든 뭐든 하실 수 있는 분들이 투자를 좀 하시면 좋겠다 싶어요.”

민정= “글을 빨리 쓰실 것 같긴 해요. 어떠신가요. 물론 글의 목적에 따라 시간도 다르게 소요가 되겠지만요.”

영민= “네, 칼럼을 쓸 때 별로 오래 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논문은 완전히 다르게 씁니다. 학생들은 논문 글쓰기를 배워야 하니까요. 비문 없어야 하고요, 헛소리하면 안 되지요. 논리와 증거에 의해서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글쓰기 훈련, 그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교한 논리와 사실에 근거한 글쓰기, 그걸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비문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지만 비문 남용은 굉장히 불성실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민정= “학생들에게 교수님은 어떤 선생님이신 것 같은가요?”

영민= “어려운 사람이 아닐까요? 제가 굉장히 비타협적인 부분이 있거든요. 일단 공부하는 데 해이하거나 약속을 안 지키거나 하는 데 엄한 편입니다. 무엇보다 마감 기한이나 시간, 중시합니다. 한국일보에 칼럼 연재할 때 저 한 번도 늦은 적 없어요. 한번 물어보세요. 그리고 저는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씁니다. 저 역시 배운 겁니다. 김우창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교수평가요? 나쁘지는 않은 정도 같은데요.”

민정= “근래에 읽은 책 가운데 특별히 꼽아주실 게 있다면요.”

영민= “음, 시집 얘기해도 되나요? 정한아 시인의 ‘울프 노트’를 좋게 읽었어요. 특히 시인의 말을 좋아합니다. 아시죠? 유쾌하기도 하고 심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에세이로는 스가 아쓰코의 책을 좋아합니다. ‘베네치아의 종소리’, ‘밀라노, 안개의 풍경’,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요 3권 나와 있는데요, 섬세한 정서인데 심란하지 않아요.”

민정= “책을 빌려보는 스타일은 아니신 것 같아요.”

영민= “네 반드시 사서 봅니다. 책은 그래야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선생님 책도 보내지 마세요. 제가 사서 보겠습니다. 제가 책을 사서 보는 이유는 인덱스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덱스가 없는 책은 제게 실망스러운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민정= “외국에서 교수로도 계셨고 한 12년 나가 있다 들어오신 거잖아요. 그 거리가 주는 정확함도 있을 텐데 우리들의 교양 말이에요.”

영민= “우리나라는 제가 볼 때 교양에 있어 일반인들의 수준이 낮은 게 아니라 엘리트들의 수준이 낮지요. 정말입니다. 일반인들의 수준은 높아요. 엘리트들이 낮지. 그건 오해하면 안 됩니다.

민정= “요즘 무슨 책을 읽고 계신지요. 이 인터뷰의 공식 질문이기도 했던 터라서요.”

영민= “너무 다들 읽으신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음, 미셸 푸코 같은 경우는 그의 강의록들이 계속 출판되고 있거든요. 외국에서 계속 나오는 중인데 한국어로도 번역 많이 되고 있거든요. 어려운 얘기긴 하지만 강의록이기 때문에 열심히 읽으면 이해가 되고 읽을 가치가 있다 싶어요. 특히 푸코 책은요, 읽으면 머리가 좋아져요. 간혹 어떤 책은 읽으면 머리가 나빠지는 것도 있거든요(웃음). 그리고 소동파의 산문요. 시보다는 산문을 권합니다. 출판사요? 번역본이 여러 군데에 나와 있지요. 저는 뭐 그냥 한문으로 읽으니까요.”

민정= “한문을 잘하고 잘 아는 기분은 대체 어떤 걸까요.”

영민= “제가 지금 ‘논어’를 번역하고 있는데요, 왜 새로 번역할 필요가 있는가, 그걸 ‘기획회의’에 연재하고 있기도 한데요, 나중에 책으로 나올 테니 그때 한번 보시면 될 듯해요. 그리고 제가 한문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뭐라 확실하게 답해드리기는 어려운데, 일단 자주 봅니다. 그리고 좋은 선생님이랑 같이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요, 저는 지금도 계속 공부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읽습니다. 벌써 10년 가량 학생들에게 그렇게 한문을 가르쳐왔습니다. ‘논어’ ‘대학’ ‘맹자’ ‘중용’을 1년 단위로 돌아가며 읽습니다.”

민정= “우와 저도 좀 가르쳐주시면 안 되어요?”

영민= “일이십 명 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입니다.”

민정= “아 네. ‘논어’ 새로 번역하신다고 했는데 ‘대학’ ‘맹자’ ‘중용’도 다 번역해주시면 안 될까요?”

영민= “너무 시간이 많이 들더라고요.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에요.”

민정= “어머, 뭘 하고 싶으세요?”

영민= “비밀입니다.”

김영민 교수의 다리가 길다는 걸, 김민정 시인이 알아챘다. 김 교수는 "그런 건 좀 써 달라"고 했다. 류효진 기자

민정= “또, 또요 선생님, 책이요.”

영민= “재미가 있으면서도 내용이 풍부한 거라면 마키아벨리요. 보통 마키아벨리 하면 ‘군주론’이나 ‘로마사 논고’를 생각하는데 그가 쓴 문학 작품이 있어요. ‘만드라골라’라고. 그거 한번 보세요. 로마 시대의 세네카도 추천합니다. 세네카나 키케로 이런 사람들은 단순히 철학자가 아니라 수사학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글을 굉장히 재미나게 씁니다. 그리고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도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부끄러운 것이 저는 연구자잖습니까. 연구자는 책을 세지 않고 책의 수영장 안에 있다고 보면 되는 거거든요. 직업이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텍스트를 기반해서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책을 읽냐, 무슨 책이 재밌냐, 이런 질문이 큰 의미가 없는 게 잠수부처럼 들어가 있는 상태니까요.”

민정= “에이 그럼에도 잠수부가 매번 건져 올리는 게 소라였다가 해삼이었다가 다 다른 것인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럼에도 저는 이런 하나 마나 한 질문을 또 던지고 맙니다.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할까요?”

영민= “호모 사피엔스가 노려 볼 만한 어떤 고양된, 성스러운, 초월적인 계기가 세 가지 정도 있다고 보는데 그중 하나가 책이 아닌가 합니다. 책이라는 게 읽는 행위 자체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잖아요. 특히나 책을 통할 때는 죽은 저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살아 있는 저자는 시샘을 할 수 있잖아요(웃음). 왜 서양 회화에 수태고지 그림 있지요. 성서를 보고 있거든요. 그 자체로 책이 성스러움과 연결이 되어 있는데 요즘처럼 책이 많아지고 흔해진 마당에 책이 어디 그렇던가요. 지난 여름 여행지에서 들른 미술관에서 책 읽는 사람을 그린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어떤 여성이 점자책을 읽고 있더라고요. 순간 그랬죠. 아, 오늘날 책을 매개로 성스러운 그림을 그리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겠다… 아무튼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 물으면 사실 안 읽어도 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드는 정말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 보겠다는 자세요.”

민정= “마지막으로 김영민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하면 답 안 하실 거죠? 그렇다면 정우성이란 무엇일까요? 지금 보니 선생님 다리 엄청 기시네요.”

영민= “네? 그런가요? 네 그런 건 좀 써주십시오(웃음). 정우성은 초월적으로 잘생긴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춤 잘 추는 사람이 부러워요. 악기 잘 다루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김민정 시인·난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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