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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오부치 20주년] ② 한류붐, 드라마서 K팝 등 전방위로 확산

입력 2018.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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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2000년대 이후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군 한류 열풍의 싹을 틔웠다고 평가받는다.

일본 내 한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으로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드라마와 영화에서 K팝으로, 또 음식과 화장품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면서 일본 사회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2004년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배용준의 입국을 기다리는 일본 팬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 공동선언 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日 '욘사마' 열풍 도화선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일본 내 한류 열풍의 계기가 된 것은 당시 국민의정부가 이 선언을 계기로 일본 문화 개방을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왜색(倭色) 문화가 한국에 퍼질 것'이라는 만만치 않은 우려 속에서 일본 문화 개방이 단행됐지만, 걱정과 달리 한국에서 일본 문화의 붐은 일지 않았고 반대로 일본에서 한국 대중 문화의 인기가 폭발했다.

문화 개방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인 1998년 10월, 1999년 9월, 2000년 6월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됐고, 참여정부 때인 2004년 4차 개방이 단행돼 일본 영화, 음반, 게임이 한국 시장에서 '해금'됐다.

첫 한류 열풍은 드라마가 이끌었다. KBS 드라마 '겨울연가'가 NHK에서 재방송되면서 '욘사마' 붐이 일어났고, 일본 관광객들은 드라마 촬영지를 찾아 한국으로 달려갔다.

욘사마 배용준의 방일 때는 그를 보려는 팬들로 공항이 말 그대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의 인기는 일본 사회에서 하나의 '현상'이 됐다.

'겨울연가', '가을동화',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는 '한류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잇따라 히트했다. 이병헌과 송승헌, 장동건 등 스타들은 일본에서도 '대세'가 됐다.

공동선언 이후 한국 대중문화는 시장을 일본으로 넓히는 성과를 거뒀다. 일본 대중문화 팬들은 자국 콘텐츠에서는 얻지 못했던 만족을 한국 드라마에서 찾으며 더 풍요로운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류 붐은 일본에서 재일 교포들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낯설었던 한국어는 일본인에게 친근한 언어가 됐고, 재일교포 집성촌이던 오사카(大阪)의 쓰루하시(鶴橋)는 한류 팬들로 북적였다. 부당한 차별을 받던 재일 코리안들에게는 '한류'의 나라 출신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해졌다.

CJ E&M 日서 K팝 콘서트 열어…열광하는 한류팬들 (지바시[일본 지바현]=연합뉴스) 20일 저녁 일본 도쿄 인근 지바(千葉)시 마쿠하리멧세에서 CJ E&M이 주최한 '케이콘(KCON) 2017 재팬'의 콘서트장에서 일본 한류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2017.5.21 [CJ E&M 제공=연합뉴스]

◇ '관리'되지 못한 한일관계, 한류에 직격탄…'혐한'에 휘청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문화 분야에서 한류라는 성과를 낳았지만, 복잡한 한일관계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사이 한류 붐이 사라질 위기로 몰리고 '혐한'(嫌韓)이라는 역풍이 불기도 했다.

일본 내 한류 이벤트 관계자나 한국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상인들은 한류 붐이 꺾인 결정적인 계기로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전격적인 독도 방문을 꼽는 경우가 많다.

이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것이 오히려 독도에 무관심했던 일본인들이 영유권 억지 주장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기껏 달아오른 한류 붐을 꺼트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0~2012년 동방신기와 카라 등 K팝 스타들이 이끌었던 2차 한류 붐이 뜨거웠지만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급격히 냉각됐다.

이어 박근혜 정부가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국민의 충분한 동의 없이 졸속으로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를 한 것도 잘 관리되지 못한 한일 외교가 한류에 악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례다.

2012년 이후 일본 안방극장에서 한류 드라마의 초대형 히트작이 줄어들었다. 공영방송 NHK의 권위있는 연말 프로그램 '홍백가합전'만 해도 2011년에는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 등 3팀이 출연했지만, 2012년부터 5년 연속 한국 가수는 출연자 명단에서 빠졌다.

일본에서 혐한 시위나 발언,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가 많아진 것은 이처럼 한류 붐이 뜨거워진 후 양국 관계가 소원해진 시점부터였다.

한류에 정통한 프리랜서 언론인 쓰치다 마키(土田眞樹)씨는 "한류 붐이 시들했던 것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는 사실은 일본에서 한류 붐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양국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까다로운 정치·영토·역사 문제를 문화와 분리해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양국 문화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을 모델로 내세운 일본 대형 쇼핑몰 시부야109의 온라인 홍보물[시부야109 홈페이지 캡처]

◇ 연령대 넓어지며 생활 깊숙이…화장품·음식 등 3차 한류 붐

한류 붐이 식으며 도쿄(東京)의 대표적인 한류 상점가인 신오쿠보(新大久保)도 한동안 한산했지만 작년 중반 이후에는 다시 행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것은 손님층이 '한류 오바상'(아줌마)으로 불리던 중년층 뿐만 아니라 10대 혹은 20대 등 젊은 나이대로 넓어졌다는 것이다.

치즈 닭갈비나 치즈 핫도그 같은 한국풍 먹거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행인들이 몰려 주말에는 줄을 서서 거리를 걸어야 할 정도다.

신오쿠보의 '부활'은 최근 들어 일본에서 불고 있는 3차 한류 붐의 연장선에 있다.

세번째 한류 붐은 한국 음식과 한국산 화장품, 그리고 직접 춤을 추며 즐기는 K팝의 새로운 경향이 이끌고 있다.

새로운 유행의 중심에는 정치나 역사 등과 관련된 한일관계에 무관심한 10~20대가 있다.

한일관계의 부침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세대가 새로운 한류 붐을 이끌며 한류가 생활 깊숙이 들어간 것이다.

신오쿠보의 한 음식점 운영자는 "치즈 핫도그나 떡볶이 등 저가 먹거리를 파는 가게에는 10~20대 젊은층이 긴 줄을 늘어설 정도로 한국 음식의 인기가 높다"며 "이들 중에는 한류 팬도 많지만 한류 팬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10대들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 화장품의 경우 10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국경을 초월한 SNS를 통해 한국의 화장법을 직접 접하고 이를 흉내내는 것이 유행으로 퍼지고 있다.

작년 소비자 행동 조사 회사인 '프릴 랩'의 설문조사에서 10대 여성의 절반가량이 패션에 대해 참고하는 나라로 한국을 꼽기도 했다.

트와이스, 방탄소년단(BTS), 여자친구 등이 이끄는 새로운 K팝 붐은 과거처럼 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춤을 배워서 추며 즐기는 '참여형'으로 진화했다.

K팝 댄스를 가르치는 학원은 최근 들어 도쿄에서만 신오쿠보뿐 아니라 나카노(中野), 메구로(目黑), 롯폰기(六本木), 시부야(澁谷), 이케부쿠로(池袋) 등으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붐비는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일본 도쿄의 코리아타운 신오쿠보 거리 모습 [촬영 김병규]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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