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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밉상'이면 먼지털기도 괜찮다?

입력 2018. 10. 07. 09:26 수정 2018. 10. 0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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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한겨레]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에 대한 정부기관의 수사(조사)는 반년 넘게 현재 진행형이다. 발단을 제공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지난 5월1일 오전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강서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발단은 막내딸 조현민씨가 제공했다.

회의 석상에서 음료수 컵을 집어 던진 사실이 보도되면서 ‘갑질’ 논란에 불이 붙었다. 발작적인 목소리가 담긴 녹취 파일이 공개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마침내 경찰이 폭행 혐의를 두고 수사에 나섰다. 그게 지난 4월의 일이다.

그 이후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 다섯 식구에 대한 폭로와 제보와 첩보가 쏟아졌다. 돈 좀 있다고 으스대는 그들을 손보겠다며 힘 좀 쓴다는 정부기관들이 앞다퉈 팔을 걷었다. 경찰에 이어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보건복지부, 법무부 이민특수조사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관세청, 국세청,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교육부까지 모두 11개 기관이 달려들었다. 캐비닛에 묵혀놨던 파일들까지 총동원됐다.

그렇게 시작된 수사(조사)가 6개월을 넘겼다. 아무리 잘못 많은 재벌이라도, 그 많은 정부기관이 한꺼번에 일가 모두를 겨눈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일가족 5명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만 10가지 이상이다. 반년 동안 포토라인에 선 횟수가 14차례, 압수수색도 18차례나 이뤄졌다. 회장 부부와 두 딸은 구속의 문턱까지 갔었다. 검찰과 경찰은 모두 다섯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신청)했다. 그러나 모두 기각됐다.

법원은 “법리 다툼의 소지가 있다”,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며 영장을 내주지 않았다. 그 정도 혐의로 굳이 구속할 필요가 있느냐고 수사기관에 반문한 것이다. 이게 지난 7월의 일이다.

이쯤 되면 드러난 범죄 혐의는 재판에 넘기고, 조처할 것은 그것대로 처리하고 매듭을 짓는 것이 상례다. 처벌의 시작이 구속일 수는 있지만, 구속이 처벌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수사(조사)는 일가 중 누군가를 ‘잡아넣을’ 때까지 계속할 것 같은 모양새다. 진에어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면허유지 결정, 조 회장의 검찰 송치 말고는 결론을 낸 것이 없다.

조 회장 일가 수사(조사)가 여기까지 온 데는 역대급 ‘국민 밉상’ 이미지가 결정적이었다. 4년 전 ‘땅콩 회항’ 사건 때 일부 드러난 인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들은 재벌의 나쁜 면을 말할 때 거론되는 저열한 특징을 빠짐없이 보여줬다. 돈과 인격을 맞바꾼 행동으로 국민적 분노를 샀다. 화를 자초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운 사람’이 아니라 ‘범법 행위’를 처벌하는 법치국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인격책임 대신 행위책임을 묻는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배운다. 조 회장 일가의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와 이미지를 가리고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분명해진다. ‘결정적 한 방’이 나올 때까지 털고 파는 것은 먼지털이 조사, 표적 수사일 뿐이다. 그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우리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서 목도했었다.

검찰과 경찰은 과거사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예전의 인권침해와 공권력 남용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 대법원이 확정 판결한 사건까지 대상에 올렸다. 검찰은 지난 7월 전에 없던 인권부·인권수사자문관·인권감독관을 신설했다. 수사 중인 사건의 인권침해와 권한남용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대응하겠다고 동네방네 알렸는데, 이들이 조 회장 일가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현재’는 방관하며 ‘과거’만 문제 삼으니 아이러니다.

“절제를 모르는 검은 하나의 폭력이다.” 법률가인 문재인 대통령, 형법학자인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배우고 가르쳤을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의 유명한 말-<권리를 위한 투쟁>에 나오는-이다. 문 대통령과 박 장관은 조 회장 일가 수사(조사)를 계속하게도, 마무리 지을 수도 있는 자리에 있다. 문 대통령은 과거 백남기 농민이 시위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을 때 야당 대표로 이런 말도 했다. “공권력의 책임은 특별히 무거워 개인의 책임과 같지 않다. 국민을 상대로 남용돼선 절대 안 된다.”

경찰 물대포만이 공권력은 아니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백씨도 국민 밉상인 조 회장 일가도 인권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강희철 사회1에디터석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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