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후] '18년 옥살이' 김신혜, 그녀는 진짜 親父살해범일까
"원심 판단이 옳다고 인정돼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한다."
2001년 3월 23일 대법원은 친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김신혜(41)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는 2000년 3월 아버지가 자신을 성추행하자 다량의 수면제가 든 술을 먹여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버지 시신은 집에서 7km가량 떨어진 버스정류장 앞 도로에서 발견됐다.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한다. 재심 개시 결정을 유지한 원심에 문제가 없다."
그로부터 약 17년이 지난 2018년 9월 28일 대법원은 김씨 사건의 재심 개시를 확정했다. 앞서 김씨는 2015년 1월 대한변호사협회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같은 해 11월 법원은 김씨 주장을 받아들여 "수사 절차상 문제가 있었고, 강압성이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어 지난해 2월 항소심 재판부도 재심 개시를 받아들였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김씨는 어쩌다 친부(親父)를 살해한 혐의가 인정돼 18년간 옥살이를 하고 있을까. 김씨가 수사와 재판이 잘못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警 "성추행·보험금 때문"…수면제 술에 타 살해한 것으로 결론
당시 경찰 수사부터 법원의 유죄 판결에 이르는 과정은 이렇다.
김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 수치심과 절망감에 고교 시절 자살 시도도 했다. 그러다 김씨가 27세였던 2000년 1월 당시 18세였던 여동생이 김씨에게 "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분노가 치밀어 아버지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김씨는 아버지를 살해하기에 앞서 아버지 명의로 8개의 상해보험을 가입했다. 그리고 알약 형태로 된 수면제 30알을 사기 밥그릇 뚜껑 위에 놓고 잘게 빻았다. 수면제 가루는 A4 용지에 옮겼다. 이 과정에서 수면제 가루가 일부 식탁 위로 쏟아지자 행주로 닦은 뒤 버렸다.
2000년 3월 7일 새벽 1시쯤 김씨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술에 취하지 않는 약이 있다"며 양주와 수면제를 꺼내 보였다. 이를 섞은 뒤 양주잔에 부어 아버지에게 건넸다. 아버지는 딸이 준 술을 의심 없이 받아 마셨다. 술을 마시고 아버지는 김씨에게 "오랜만에 드라이브나 하자"고 했다. 김씨는 아버지를 차에 태워 운전을 했다. 그러다 약 30여 분이 지난 뒤, 아버지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졌다. 김씨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 앞에 시신을 버렸다. 때는 새벽 4시였다.
다음 날 오후 11시 20~40분 사이 김씨 고모부는 김씨로부터 아버지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 휴게실에서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자백을 듣는다. 고모부는 김씨 큰아버지에게 찾아가 이를 전했다. 그리고 경찰은 가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김씨를 존속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김씨는 죄를 인정하며 선처를 구하는 대신 줄곧 무죄를 주장했다. 법원은 김씨가 수사 과정에서 한 자백과, 자백을 들었다는 가족들의 증언, 사건 당시 김씨 알리바이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金 "성추행은 없었고, 보험금도 못 받는 돈"…검출된 수면제는 치사량 미만
하지만 김씨 주장은 다르다.
김씨 측은 고모부가 자백을 들었다는 증언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고모부는 김씨가 사건 다음 날 밤 11시 20~40분 자신에게 자백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고모부가 경찰에 김씨 자백을 알린 시각은 이보다 앞선 밤 10~11시 사이다. 당시 당직을 서고 있던 경찰은 밤 10시 드라마 ‘허준’을 보고 있다가 고모부로부터 신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 말대로라면 고모부는 자백을 듣기도 전에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김씨 큰아버지가 고모부로부터 김씨 자백을 전해들었다고 진술한 시각도 저녁 8시 30분쯤으로 선후관계가 맞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고모부는 김씨 가족에게 "김씨가 성추행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해야 한다. 그래야 감형받는다"고 종용했다고 한다. 이에 김씨 할아버지, 할머니, 동생은 모두 이 사건을 ‘짐승만도 못한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라고 수사, 재판 과정에서 진술했다.
김씨 측은 그러나 살해 동기로 지적된 성추행은 일어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김씨는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이었던 고상만씨에게 대법원 선고 직전 "여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았다. (강간을 당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나는 아버지에게 스스럼없이 모든 걸 얘기하고 기댔다. 아버지가 저를 성추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편지를 써 보냈다고 한다. 아울러 김씨가 아버지 앞으로 가입한 보험은 김씨가 일본 유학을 앞둔 상황에서 장애인인 아버지가 걱정돼 보험을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대부분을 해지하고 한 두 개만 남길 계획이었다고 한다. 실제 사건 발생 전 8개의 보험 중 3개는 해약한 상태였다. 심지어 가입된 보험금은 가입일로부터 2년이 지나야 사망 보험금이 나오는데, 사건이 발생한 때는 보험금을 받을 수 없던 때였다.
한편 재판에 와서 공소사실은 가루가 된 알약을 술에 넣은 게 아니라 알약 그 자체를 아버지가 모두 먹은 것으로 바뀌었다. 김씨는 알약 30개를 모두 먹는 게 말이 되냐고 항변한다. 김씨 아버지 부검 결과 ‘독실아민’이라는 수면 유도제가 검출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독실아민은 밀가루와 비슷한 특성이 있어 30개를 통째로 술과 혼합하면 떡처럼 뭉쳐 복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 부검 감정서에는 치사량에 한참 못 미치는 양이 나왔다고 기록됐다. 아버지가 마셨다는 양주병, 술잔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김씨가 증거물들을 바다에 버렸다고 결론 내렸다. 수면제를 빻은 밥그릇 뚜껑과 흘린 수면제를 닦은 행주는 발견됐지만 수면제 관련 어떤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 만나지 못해 혼자 있던 3시간 때문에…
그렇다면 김씨는 사건 당일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김씨 측에 따르면 김씨는 당시 완도에 있는 남동생을 데리러 가기 위해 서울에서 고향 집이 있는 완도로 가던 중이었다. 사건이 발생했던 날 오전 0시 55분쯤 김씨는 완도 검문소를 통과했다. 김씨는 내려간 김에 친구들과 만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약속이 어그러지자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검문소를 지나 집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김씨의 전화를 받은 여동생은 "아빠가 술에 취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싸웠다"고 했다. 집에 들어가려던 김씨는 생각이 바꼈다. 술에 취하면 난폭해지는 아버지가 싫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집이 아닌 친구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다만 가족보다 친구부터 만난다고 하면 가족들이 섭섭해할까 봐 그는 여동생에게 검문소 앞이라고 거짓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김씨는 친구 집에서 자지 못했다. 친구가 시간이 너무 늦었다며 부모님에게 혼날 것 같으니 안 된다는 것이었다. 김씨 친구는 이 같은 내용의 통화를 한 사실이 맞는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김씨는 이후 3시간가량 혼자 차 안에서 술을 마시며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다. 이후 입증이 가능한 경위는 새벽 5시다. 김씨는 이쯤이면 됐다 싶어 집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그 전인 새벽 1시 30분에 범행이 발생했다고 봤다. 경찰은 김씨가 여동생에게 한 거짓말과, 친구들과 한 통화는 모두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한 짓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김씨는 현재까지 18년째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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