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문학상 이어 친일 문인 기리는 동인문학상도 폐지해야"

2018. 10. 7. 16: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가회의·민족문제연구소 세미나 개최

[한겨레]

6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동인문학상 세미나에서 고명철 광운대 교수가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명원 경희대 교수, 오창은 중앙대 교수, 최강민 우석대 교수, 소설가 공선옥, 고명철 교수, 문학평론가 이성혁·서영인. 최재봉 기자

중앙일보가 주관하는 미당문학상이 친일 논란 와중에 시상을 중단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또 다른 대표적 친일문인 문학상인 조선일보사의 동인문학상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가 열렸다. 발표자들은 동인문학상 폐지를 촉구하면서, 폐지 이전에라도 개별 문인들이 이 상의 심사와 수상을 거부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위원장 유용주)와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6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1층 예인홀에서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마련했다.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조선일보사가 주관해 소설가 김동인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을 겨냥한 자리였다. 김동인(1900~1951)은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로,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발표한 친일 문인 명단 42명에 들어 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그 행적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939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을 방문해 전지(戰地) ‘문단 사절’을 조직할 것을 제안하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북지(北支) 황군위문사절단으로 다녀왔으며, 1941년 12월에는 시국에 적극 협력할 것을 요지로 하는 라디오 방송을 했고, 친일역사소설 <백마강> 등을 집필했으며,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만들어진 친일 문인단체 조선문인보국회 간부로 활동했고, 1945년 8월15일 오전 10시 조선총독부 정보과장을 방문해 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을 만들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미 자란 아이들은 할 수 없지만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는 ‘일본과 조선’이 별개 존재라는 것을 애당초부터 모르게 하려 한다”(‘감격과 긴장’)는 글을 1942년 <매일신보>에 쓰기도 했다.

6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동인문학상 관련 세미나에 참가한 이들이 “동인문학상 폐지!”를 외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최재봉 기자
6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동인문학상 세미나에서 고명철 광운대 교수가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명원 경희대 교수, 오창은 중앙대 교수, 최강민 우석대 교수, 소설가 공선옥, 고명철 교수, 문학평론가 이성혁·서영인. 최재봉 기자

6일 세미나에서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김동인의 친일 행위는 적극적 자발성을 큰 특징으로 한다”며 “글쓰기와 행적 양면에서 적극적으로 대일협력에 앞장선 김동인이 해방 뒤에는 그와 관련해 허황된 자기변호로 일관했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의 왜곡과 자기변호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동인문학상에 대해 “폐지가 가장 명료한 해법”이라며, “문인들이 친일문인 문학상의 심사나 수상을 거부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오창은 교수(중앙대)는 동인문학상이 한국 사회에서 친일문인을 기리는 첫번째 문학상으로서 “친일 경력 문인들의 문학상이 끊임없이 재현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는 ‘원죄’를 지었다고 지적했다. 1955년 장준하가 발행하던 <사상계>가 제정한 동인문학상은 1967년 중단됐으나, 1979년 동서문화사가 이 상을 부활해 1985년까지 시상했으며, 한 해 시상을 거른 뒤 1987년 조선일보사가 이어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최강민 교수(우석대)는 “<사상계>가 동인문학상을 제정했을 때는 남한 출신 문인들에 의한 북한 출신 문인 차별과 배제에 맞선 서북지역주의(또는 범북한지역주의)로서 의미가 있었고, 1950년대 수상작들은 당대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즘 작품들이 많이 선정되었다”며 “그러나 조선일보사가 주관하면서부터는 김동인의 문학 특성 중 개인주의, 유미주의 계열의 작품들이 주로 수상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최 교수는 특히 “조선일보의 중간 창업자인 방응모는 중일전쟁 이후 친일단체 참여, 일제 군국주의 찬양, 친일 논설 쓰기 등 반민족적 친일행위를 하다가 해방 뒤 반공주의자로 변신했고 한국전쟁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방응모의 이런 행적은 김동인의 삶과 유사한 부분이 많으며, 조선일보는 김동인을 우상화·정전화하는 동인문학상을 통해 방응모를 우상화·정전화하는 대리체험과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거대 언론사가 운영하는 친일문학상을 폐지하려는 운동은 친일문학상을 통해 자사의 친일 역사를 은폐 축소시키거나 극우적 지배담론을 생산하려는 거대 언론사와의 싸움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2001년 동인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거부했던 소설가 공선옥씨도 이날 발표에 나와 “상을 주는 주체인 조선일보사의 기사 혹은 사설을 읽으면서 분노를 느낀 적이 많았고, 종신 심사위원제를 통해 문인들을 줄 세우려는 식의 선정 방식도 굴욕적으로 느껴져 수상 후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작가회의는 친일 문인 문학상과 관련한 논란을 두고 토론회와 몇차례 이사회를 거쳐 지난해 10월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성명에서 작가회의는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면서도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고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