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society

세종대왕 '외에' 한글을 빛낸 5명의 사람들

입력 2018.10.09. 11:36 수정 2018.10.09. 17:16
한글 점자 만든 '박두성'부터 대표 글꼴 만들어낸 '최정호'까지
요리책도 한글로 차린 장계향 "여성들이 한글 책만 봐도 음식 쉽게"

[한겨레]

아직도 ‘한글’하면 세종대왕만 떠올리시나요?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뜻을 이어 한글을 지키고 가꾼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572돌 한글날을 맞아 누구보다 한글을 사랑하고 아낀, 한글대표선수 다섯명을 소개합니다. 한글날 주인공은 나야 나!

■ ‘기역, 니은, 디귿, 리을’ 한글의 이름을 만든 동시 통역사 ‘최세진’

최세진.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안녕하세요. 조선과 명나라를 오가며 동시 통역사를 한 최세진입니다. 대대로 역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통역 일을 하게 됐죠. 한국에도 중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요? ‘중국어 번역과 통역’하면 한때 제가 조선에선 최고로 꼽혔는데요. ^^ (흠흠) 중국어 실력 덕분에 중인 출신임에도 양반들도 하기 힘들다는 정2품 벼슬까지 지내기도 했죠.

전 후배 통역사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곤 했어요. ‘노걸대’란 교재를 썼는데요. 고려 상인이 특산물을 중국에 가져가서 팔고, 또 중국의 특산물을 사서 귀국할 때까지 이야기를 담은 중국어 회화책이었습니다. ‘역관들을 위한 실용 중국어 회화’인 셈이죠. 근데 후배들이 발음을 잘 따라 읽지 못하더라고요. 아시죠? 중국어는 성조도 있고 많이 복잡하잖아요.

‘어떻게 하면 쉽게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중국어 교재에 한글로 음을 달면 어떨까?’ 결국 몇 달동안 ‘노걸대’ 번역판을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반응은 어땠냐고요? 당연히 좋았죠. ^^ 이 번역판 덕에 아들도 쉽게 중국어를 배우더군요. 덕분에 전 승진도 하고요.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그런데 또 다른 고민이 생겼어요. 이웃에 사는 통역사가 하루는 절 찾아와 “‘ㄱ,ㄴ,ㄷ,ㅏ,ㅑ’와 같은 초성과 중성을 어떻게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러고 보니 ‘훈민정음 해례본’에도 한글 기본 글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자료마다 자음을 부르는 이름은 가지각색이었죠. ‘자음과 모음의 표준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날부터 글자 모양도 살피고, 소리를 내 발음도 해봤죠. 결국 가장 간편하게 발음할 수 있는 모음 ‘이’와 ‘으’를 넣어 자음의 이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기윽’(기역), ‘니은’, ‘디’(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읏’(시옷) 이런 식으로요. 자음과 모음의 차례도 다시 정리했습니다. 첫소리와 끝소리에 모두 쓰이는 사용 빈도가 높은 자음부터 앞세워 놓는 방식으로 배열했죠. 모음은 입을 벌리는 순서에 따라, 수직 글자를 먼저 배열하기로 했어요.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 이런 노래도 있다면서요? 다 제 덕 아닌가 모르겠어요. 하핫 ^^

한자에 한글로 음과 뜻을 단 ’훈몽자회’ 영인본. 창비교육 제공

■ 최초의 한글 백과사전으로 여성들을 도운 만물박사‘빙허각 이씨’

빙허각 이씨.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안녕, 나는 빙허각 이씨에요. 여성들을 위한 한글 백과사전 ‘규합총서’를 만들었죠. 시동생 서유구가 한문으로 백과사전을 만드는 걸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같은 아낙들이 꼭 알아야 할 지식도 많은데 어려운 한문으로 돼 있으니 쉽게 읽을 수가 없겠구나” 싶었죠. 저야 한문을 아니까 그럭저럭 읽을 수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한문을 배우는 여성들이 많이 없었거든요.

결국 한글로 된 ‘생활 백과사전’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딸과 며느리들한테 전하려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써놓기도 했거든요. 남편 서유본도 적극 돕겠다고 나섰어요. ^^ 같이 자료를 찾고, 책을 읽고, 글을 썼죠. 사전을 펴내는 데만 힘을 쓰도록 남편은 집안일도 종종 거들어주곤 했어요.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그렇게 1809년 생활 백과사전 ‘규합총서’가 탄생했습니다! 최초의 한글 백과사전입니다. 소식을 듣고 동네 아낙들이 집 마당에 가득 모였어요. 옆 마을에서도, 뒷 마을에서도 소문을 듣고 달려와 ‘규합총서’를 살펴봤죠.

“남성 양반님들이 쓴 책들은 모두 한문이라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우리 같은 사람들한텐 말짱 도루묵이죠.” “빙허각 마님이야말로 남성 양반님 천만 명 몫을 하셨구먼요. 이 언문 생활 백과사전으로 우리 민초들도 살리고 우리 글자도 살리고요.”

아낙들이 너도나도 기뻐하고 좋아해주니 그동안 고생한 것도 다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식을 남성들만 읽는 한문책에 가둘 이유가 있나요?

‘규합총서’ 모습. 창비교육 제공
‘규합총서’ 표지와 차례. 국립중앙도서관·창비교육 제공

■ 한글 요리책으로 사람을 살린 살림의 고수 ‘장계향’

장계향.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난 경북 안동에 사는 장계향이라고 해요. 보통 ‘장씨 부인’이라고도 불러.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 디미방’을 펴냈지. 아이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 매일 촛불을 밝히고 글을 쓰느라 고생 좀 했어. 1600년대 경상도 양반집에서 만들어먹던 음식요리법, 발효식품을 만드는 법, 식품 보관법 등을 자세히 적어놨지. 주로 양반집 요리긴 하지만 국수, 만두, 떡 등 토속 재료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우리 음식 146가지를 소개해놨어. 2017년엔 ‘백선생’이 그렇게 유명하다며? 여기선 ‘장선생’으로 통한다구. ^^

요리책을 만든 이유는 별 거 아니야. 아니 하루는 이웃집 아낙이 숭어 한 마리를 들고 찾아오더라고. “이걸 어찌 먹어야 할깝쇼?” 물었지. 좋은 재료가 생겨도 제대로 요리를 하지 못해서 재료를 버리는게 안타깝더라고. 그래서 요리법을 알려줬더니 그 아낙이 많이 고마워했어.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또 어떤 날엔 동네 젊은 새댁이 글쎄, 시어머니에게 왜 반찬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냐고 된통 구박을 당하고 있는거야. 안쓰럽더라고. 그때 생각이 났지. “한글로 요리책을 펴내면 한글을 아는 여성이 책만 봐도 쉽게 음식을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어. 딸과 며느리가 ‘음식 디미방’의 잡채 만드는 법을 보고 요긴하게 활용하는 것을 보니 뿌듯하더라고. ‘찰랑찰랑’, ‘질벅질벅’ 같은 생생한 한글을 사용해 설명하니 실생활에서 보고 써먹기 쉬울 수밖에. ^^ 원본을 잘 간직할 수 있도록 필요한 사람은 베껴서 서로 돌려보도록 했지. 세상 수많은 요리책의 원조랄까?

‘음식 디미방’에 나온 요리법. ‘만두법’ 등이 적혀있다. 창비교육 제공

■ 한글을 여섯 개의 점으로 표현한 길잡이 ‘박두성’

박두성.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안녕하시오. 나는 박두성이라고 하오. 1913년부터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제생원에서 맹아부 교사로 일을 했소. 앞이 안 보이는 아이들에게 일본 점자를 가르치면서 틈틈이 주산과 우리말, 수저 잡는 법 등을 알려줬소. 근데 쉽지 않았소. 학생들이 일본 점자책으로 배우면서 일본어 수업을 들으니 말이오. 쉬운 용어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걸 보니 안타까웠소. 한글 점자가 있으면 쉽게 배울 수 있을텐데 싶었지.

그땐 3·1 운동이 일어나고 일본의 탄압이 점점 심해지던 시기였소. 어느 날 일본인 교사가 “앞으로는 우리 학교에서도 조선어를 가르칠 수 없소!”라는 거요. 그래서 내가 말했소.

“눈이 멀쩡한 사람이 그렇게 마음이 어두워서 되겠소? 단지 눈이 멀었다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소? 눈 밝은 사람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글을 읽고 쓰겠지만 눈먼 사람에게 조선말까지 빼앗으면 저 아이들은 부모와 형제자매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겠소? 저 아이들에게 장님에 벙어리까지 되라는 말이오?”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그 사람은 끽소리도 못했었소. 해서 결심했소. 한글 점자를 만들어 눈먼 사람들도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말이오. 결국 1923년 맹아부 제자들과 함께 ‘조선어 점자 연구위원회’를 비밀리에 만들고, 한글 점자 연구에 몰두했소. 3년을 꼬박 연구한 끝에 여섯개의 점으로 이뤄진 한글 점 ‘훈맹정음’이 탄생했소.

“누구든지 배워야 하지만 눈이 먼 사람은 멀쩡한 사람보다 더 배워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었소. 배우고 싶어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점자책을 보내줬지. 종이 구하는게 어려웠던 시절이라 관공서나 은행에서 누렇게 바랜 문서들을 얻어왔소.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귀여운 우리 딸도 날 도와주더군. ^^ 그렇게 점자로 된 교육책이나 소설, 교양책도 펴냈소. 성경도 점자로 옮겼다오. 지금도 내가 만든 점자를 잘 쓰고 있는지 사뭇 궁금하오.

‘훈맹정음’의 모습. 창비교육 제공

■ 글씨에 한땀 한땀 혼을 넣은 글꼴 장인 ‘최정호’

최정호.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안녕하세요. 최정호입니다. 이렇게 인사를 드리니 쑥스럽네요. 2017년에 사는 분들이 ‘굴림체’를 쓴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진지하게 이야기할 땐 ‘궁서체’를 쓰신다고도 들었습니다. 하하. 사실 그 두 글꼴을 만든 사람이 바로 접니다. ^^ 굴림체와 궁서체를 포함해 공작체, 그래픽체, MS명조 등 30여가지 한글 글꼴을 만들었습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글씨 쓰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글씨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답니다. 보통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따귀를 맞았어요. 글씨 숙제를 검사하는 날이었는데, 제가 쓴 글씨를 보고 부모님이 대신 써주었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결국,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글씨를 써서 보여주고 나서야 억울함을 풀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한글 글꼴에 관심을 깊게 가지게 됐어요. 낮에는 인쇄소 일을 하고 밤에는 미술학원을 다녔죠. 가끔 일본에 사는 한국인을 위해 영화 광고나 포스터, 간판 등에 들어가는 ‘선전 글씨’를 써주기도 했어요. 인쇄기술을 배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리 인쇄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글꼴이 아름답지 않으면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없구나’라고 말이죠.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혹시 일본 화장품 회사인 ‘시세이도’라고 아시나요? 글쎄, 하루는 길을 걷다가 ‘시세이도’ 광고에 나오는 글자가 아름다워서 멈춰섰어요. 글자도 예술이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전 세계인이 감탄할 수 있는 한글 글꼴을 만드는 걸 목표로 꿈을 키웠습니다. 처음엔 일본 글꼴을 바탕으로 한글 글꼴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 고유의 글꼴이 없는 점이 아쉽더라고요. 고민 끝에 탄생한 게 바로 궁서체입니다. 1988년엔 제 이름을 딴 ‘최정호체’도 나왔습니다. ^^

한글 글꼴을 만드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어찌나 막막하던지요. 처음엔 ‘훈민정음’의 글자 형태를 꼼꼼히 살폈죠. 어렵게 만들고도 마음에 안 드는 활자는 용광로에 던져버리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 글꼴에 매달렸냐고요? 전 글자가 사상이나 뜻을 전달하는 도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읽는 사람들이 피로를 느끼지 않도록 읽기 쉬운 모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굴림체와 궁서체 모두 유용하게 써주세요.

균형미와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 최정호체. 창비교육 제공

*위 내용은 한글학자 김슬옹시인 김응이 쓴 ‘한글 대표 선수 10+9’(창비교육)를 토대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한겨레는 지난해 다뤘던 ‘한글을 빛낸 5명의 사람들’을 독자 여러분들께 다시 선보입니다.

<한글 대표 선수 10+9> 창비교육 제공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추천 뉴스 1

연령별 많이 본 뉴스

전체
연령별 많이 본 뉴스더보기

추천 뉴스 2

추천 뉴스 3

추천 뉴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