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가짜뉴스 대책으로 정쟁하면 안 된다

2018. 10. 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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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33
'보수-진보' '여-야' 뛰어넘는 공동체 의제
헌법상 기본권 '표현의 자유' 침해 불가능
가짜뉴스 걸러내는 자율 시스템 마련해야
이낙연 국무총리 "증오 야기해 사회통합 흔드는 민주주의 교란범"
황교안 대행 "사회적 정보 신뢰 떨어뜨려 합리적 공론 형성 저해"

[한겨레] 화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서글펐습니다. <한겨레>가 추석 연휴 직후부터 내보낸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탐사기획의 파문이 번지는 것을 보며 든 생각입니다.

‘반동성애 기독시민연대’와 ‘국가 정신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 사람들이 8일 한겨레신문사 앞에 몰려와 ‘한국교회 탄압의 앞잡이 한겨레를 규탄한다’는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한겨레>는 극우 기독교 단체와 ‘가치 논쟁’을 하기 위해서 이번 기획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 ‘거짓 정보’를 유포시키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누구나 가짜뉴스의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와 국가정신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국정본)가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들머리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은 8일 ‘21세기 분서갱유 진시황 부활 접어라’라는 어마어마한 제목의 논평을 냈습니다. ‘탄압용 가짜뉴스 대책, 연기 아니라 취소해야’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좀 더 강력한 가짜뉴스 대책을 주문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범정부 허위조작 정보 근절 대책’ 발표를 미룬 것을 비판한 것입니다.

“정부가 8일 ‘가짜뉴스 근절대책’이란걸 발표하려다가 돌연 연기했다. 그것도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발표하려고 했다. 정권 차원의 시도라는 얘기 아닌가.”

“당초 계획에는 방통위와 법무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경찰청 등 관계기관을 총동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좌파 언론이 대대적인 보도로 분위기 띄우고, 권력이 발을 맞추는 모양새는 사납다.”

“정권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입에 재갈을 물리는 독재적 발상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정부가 권력기관을 동원해 가짜뉴스를 판단하겠다는 초법적인 발상을 접어야 한다. 가짜뉴스를 핑계로 사상통일을 하려 하는가. '21세기 분서갱유' 는 꿈도 꾸지마라. '진시황의 부활'을 노리지 마라.”

<조선일보>도 9일 치 신문에서 8면 머리기사로 거들었습니다.

성에 안 차서···가짜뉴스 근절책 발표 연기

어제 국무회의 후 공식발표 예정

문 대통령 “그 정도로 되겠나”

이 총리도 “근본적 대책 강구하라”

더 강경한 대책 나올 가능성 커져

일각선 “논란 확산 의식한 조치”

그 전에 10월 4일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의 논평도 있었습니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마저 검열하고 통제하려는 정부 여당의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제목입니다.

“정부 여당이 가짜뉴스에 대해 ‘가짜뉴스 대책단’을 구성하고, 관련법을 입법화하는 등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국정 운영에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되면 야당 국회의원과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 코드 통계를 위한 통계청장 교체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이제는 정부 여당이 야당과 국민의 비판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고 언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공언처럼 20년 집권, 50년 권력을 잡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정부 여당이 변화하는 개인 미디어 환경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조류를 부정하고 '가짜뉴스'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막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은 정부라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가짜뉴스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각종 언론에 영향력을 미쳐 공정한 보도가 되지 않도록 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가짜뉴스 대책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뭘까요? 정치는 모든 쟁점을 정쟁화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가짜뉴스 대책이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른바 ‘보수 논객’들의 활동을 제약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판은 정확해야 합니다. 일단 부풀려서 고함부터 지르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논란의 시작이 된 이낙연 국무총리의 2일 국무회의 발언을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짜뉴스가 창궐합니다. 유튜브, SNS 등 온라인에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급속히 번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사생활이나 민감한 정책 현안은 물론,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가안보나 국가원수와 관련한 턱없는 가짜뉴스까지 나돕니다.

가짜뉴스는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입니다. 가짜뉴스는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고 사회의 불신과 혼란을 야기하는 공동체 파괴범입니다. 개인의 의사와 사회여론의 형성을 왜곡하고, 나와 다른 계층이나 집단에 대한 증오를 야기해 사회통합을 흔들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민주주의 교란범입니다.

그동안 정부와 민간이 가짜뉴스를 없애려고 노력해왔으나, 노력은 미흡했고 사태는 더욱 악화됐습니다. 더는 묵과할 수 없습니다.

기존의 태세로는 통제하기에 부족합니다. 검찰과 경찰은 유관기관 공동대응체계를 구축해서 가짜뉴스를 신속히 수사하고, 불법은 엄정히 처벌하시기 바랍니다. 악의적 의도로 가짜뉴스를 만든 사람, 계획적 조직적으로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사람은 의법처리해야 마땅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부처는 가짜뉴스의 통로로 작용하는 매체에 대해 필요하고도 가능한 조치를 취해야 옳습니다.

각 부처는 소관 업무에 관한 가짜뉴스가 발견되는 즉시 국민들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의 혼란을 막고, 위법한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수사를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는 온라인 정보의 생산, 유통, 소비 등의 단계별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의 법적 기술적 규제 움직임을 참고해서 입법조치가 조속히 완료되도록 국회와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넷과 SNS는 실질적으로 언론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따라서 그에 합당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마땅합니다.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차단하는 자율적 규제를 강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들께서도 성숙한 시민의식과 냉철한 판단으로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말고 배척해 가짜뉴스가 발붙이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도록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가짜뉴스는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이라고 했습니다. 가짜뉴스와 표현의 자유를 분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검찰과 경찰에 ‘불법’을 엄정히 처벌하라고 했습니다. 불법이 아니면 처벌할 수 없는 것이 법치주의입니다.

“악의적 의도로 가짜뉴스를 만든 사람, 계획적 조직적으로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사람은 의법처리해야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관계부처는 온라인 정보의 생산, 유통, 소비 등의 단계별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습니다. 필요한 일입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의 법적 기술적 규제 움직임을 참고해서 입법조치가 조속히 완료되도록 국회와 협조하라”고 했습니다. 법적 미비점이 있으면 입법을 하라는 지시입니다.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차단하는 자율적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너무나 온당한 주문입니다.

이처럼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을 하나하나 뜯어서 살펴보면 별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이 묵직하게 들리는 이유는 가짜뉴스에 대한 국민의 광범위한 분노가 발언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시비에스> 의뢰로 전국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8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가짜뉴스 방지를 위한 새로운 법 도입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개인의 명예와 민주주의 보호를 위해 찬성한다’ 63.5%,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 20.7%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절대다수 국민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나도는 가짜뉴스의 폐해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자유한국당은 최근 가짜뉴스를 둘러싼 논쟁이 퍼지면 자칫 자신들에게 정치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강하게 반발하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론학자들은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입법이나 행정조처를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서 처벌할 수 있는 가짜뉴스는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명백한 허위 사실 등 불법인 경우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언론학자들은 최근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현실에는 정보기술 혁신의 부작용으로 권위와 신뢰를 급격히 잃어가는 기존 언론의 추락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따라서 가짜뉴스의 폐해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한 정보와 부정확한 정보를 가릴 수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안목을 끌어올리고 가짜뉴스를 걸러내는 자율 시스템을 마련해서 작동시켜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이런 점을 모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짜뉴스 단속과 표현의 자유 침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박대출 의원의 논평에는 이런 대목이 들어 있습니다.

“허위 사실을 담은 가짜뉴스는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현행법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이다. 가짜뉴스의 잣대는 하나여야 한다. 허위 사실 생산과 유포를 차단하는 법, 좌파 우파에 예외 없이 동일한 기준의 법이라면 못할 것도 없다.”

윤영석 수석대변인의 논평에도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짜뉴스로 인한 명예훼손, 허위정보는 사라져야 한다.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자도 발생되어선 안 된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가짜뉴스를 방지하고 처벌할 수 있는데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현행법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하면 된다. 굳이 총리까지 나서서 검경과 방통위에 엄중 처벌을 주문하고 여당은 ‘가짜정보유통방지법’을 발의하겠다며 예민하게 나설 일이 아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과 박대출 의원 및 윤영석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정부는 가짜뉴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난해 5월2일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 마지막 국무회의를 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던 시기에 황교안 권한대행은 여러 차례 가짜뉴스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황교안 권한대행의 발언을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7년 2월 28일 국무회의

“최근 국내외에서 ‘가짜뉴스’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가짜뉴스는 타인의 인격과 명예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건전하고 합리적인 공론 형성을 저해하는 등 그 부작용이 매우 크다.

가짜뉴스는 일단 전파되고 나면, 사실관계를 바로잡는데 많은 노력과 비용이 소모되는 등 큰 피해가 수반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정보화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서, 가짜뉴스가 더 빠르고 더 넓게 확산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SNS)와 같은 새로운 정보소통 네트워크의 신뢰도를 제고하고, 누구나 믿고 안전하게 정보통신망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가짜뉴스에 대한 선제적이고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 미래부·경찰청 등 관계기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가짜뉴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모니터링과 단속을 강화해 주기 바란다.

정부의 규제와 단속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으므로, 언론·민간 전문가 등과 협력해, 사실확인 및 신속 차단 시스템 구축 등 체계적으로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다. 가짜뉴스의 명확한 기준과 처벌 등에 대한 법령이 조속히 정비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

3월 27일 공명선거 관계장관회의

“가짜뉴스 등 흑색선전은 전파속도가 빠르고 넓어 그 폐해가 큰 선거 범죄다. 전담대책반 운영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4월 17일 2차 공명선거 관계장관회의

“거짓 정보로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이 저해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가짜뉴스 차단을 위해 언론·SNS 업계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5월 2일 마지막 국무회의

“SNS 등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가짜뉴스·허위사실 유포 행위가 지난 18대 대선에 비해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에 대한 신속한 사실 확인 및 철저한 사법처리 등 후속조치에 역량을 집중할 것을 당부한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과 황교안 권한대행의 발언에 차이가 있습니까?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가짜뉴스 대책을 무조건 정쟁의 대상으로 몰고 갈 이유가 없습니다.

가짜뉴스는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보수 진보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짜뉴스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해서 풀어가야 할 어려운 숙제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 앞으로 차례차례 내놓을 가짜뉴스 대책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여야가 함께 차분하게 살펴보고 지혜를 모아 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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