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4시간 의총' 뒤 바른미래당은 결국 '바미했다'

2018. 10. 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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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송경화의 올망졸망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 두고 의원총회
통일부 장관 초청해 이례적 '100분 브리핑'
이언주·지상욱·이학재 반발해 불참, 이탈
결론은 찬성-반대 아닌 "비준 동의 대상 아냐"

[한겨레]

8일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당 의원총회 방문에 반대하며 의원총회장을 떠나고 있다. 송경화 기자

이런 얘기하기 좀 우습지만 ‘바미하다’는 일부 바른미래당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통하는 은어다.

호남 지역구파와 안철수계 비례파로 나뉘어 싸우던 국민의당 시절부터 바른정당파와 국민의당파로 나뉘어 내분을 겪는 지금까지 이 당에선 의원총회를 몇 시간 해도 결국 총의를 모으지 못하거나 이견만 확인하거나 때론 고성이 오가거나 겨우 결론이 나도 O냐 X냐가 아닌 절충안이 ‘갑툭튀’하기 마련인데, 이런 애매한 상황을 여러 번 겪은 기자들은 자조 섞인 말투로 “바른미래당이 오늘도 바미했다”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 이러면 또다시 기나긴 의원총회가 열릴 테고, ‘다수 뜻’이 모아진다 해도 이견이 빗발칠 것이며, 여러 의원에 대한 추가 취재가 뒤따라야 한다. 어떤 의원은 “여러 세력이 모여 만든 제3정당의 태생적 문제”라고 했고, 다른 의원은 “다양한 스펙트럼은 장점”이라고 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야당인 바른미래당을 찾아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를 설득한 어제(8일), 바른미래당은 또다시 “바미했다.”

조 장관을 의원총회에 초대한다는 계획은 지난 7일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기자간담회를 통해 예고됐다. 조건을 내걸긴 했지만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에 긍정적 입장인 손학규 대표, 김관영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과의 차별화를 부각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초청했으나 거절됐고, 급히 조 장관에게 연락했는데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이언주, 지상욱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 페이스북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며 ‘1차전’을 치렀다. 어제(8일) 오후 2시부터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는 결전이었다. 전투력 좋기로 소문난 이언주 의원은 아예 불참을 통보했다. 참석한 지상욱 의원의 입에 관심이 쏠렸다. 바른정당 출신의 지 의원에게는 당 지도부가 비준에 협조 뜻을 밝혔을 때인 지난달 초, 정론관에서 반발 기자회견을 한 전력이 있다. 당시 손에는 ‘개혁보수와 합리적 중도’가 적힌 당 정강정책이 인쇄돼 들려있었다. 이날 국민의례, 지도부 발언 등 통상적인 순서가 끝나자 모두 그의 입을 바라봤다. 지 의원이 마이크를 켰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비판들을 일단 읊은 뒤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원내 지도부에서 조명균 장관의 의견 개진을 공개 아닌 비공개로 하겠다고 말했고 일정을 따로 잡아 (조 장관과 달리) 국회 비준 동의에 반대하는 전문가의 시간을 잡아주기로 해서 오늘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한 발 물러선 것이었다. 노트북 위에 손가락을 굴러던 기자들이 일제히 지 의원을 쳐다봤다. 기자들을 등지고 앉아 있어 표정을 볼 순 없었다. 다만 지 의원 맞은 편에 앉은 국민의당 출신 의원 얼굴에 옅은 미소가 퍼지는 것은 엿볼 수 있었다.

다소 싱겁게 끝나는 듯 했지만, ‘칼’을 빼먹진 않았다. 손학규 대표가 이날 오전 국회 비준 동의에 ‘적극’ 반대하는 이들을 겨냥해 “냉전적 안보관 탈피”를 강조한 것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바른미래당에는 냉전적 안보관을 가진 의원은 없습니다. 대표님. 걱정 마시고요.” 손 대표는 입술 양 끝을 아래로 내리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8일 의원총회장에 모인 바른미래당 의원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오기 전이다. 송경화 기자

이번엔 이학재 의원이 마이크를 켰다. 예상 대본엔 없던 그림이었다. 첫 마디부터 ‘강펀치’였다. “조명균 장관이 (조금 뒤인) 3시반에 온다고 하는데 빨리 취소해서 통일부에서 출발하지 않게 하길 제의합니다.” 국회 정보위원장이기도 한 이 의원은 “국회로 공이 넘어온 상태에서 장관의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듣는 것은 이미 바른미래당은 비준을 마음 속으로는 정해놓고 형식적 절차를 밟고 있구나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장관이 온다면 저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손 대표 입술 양 끝이 더 아래로 내려갔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이 의원을 바라보지 않은 채 연신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중로 의원의 마이크에 불이 켜졌다. “이거 비핵화 문제, 심각하게 봐야 합니다.” 지상욱, 이학재 의원이 바른정당 출신으로 보수 성향이라면 김중로 의원은 국민의당 출신임에도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경력을 보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육군 준장 출신이다. 안철수 대표 시절 ‘안보’ 몫 비례대표로 10번을 받았다.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의원 등과 함께 하던 국민의당 시절, 김 의원의 시각이 그들과 맞을 리 없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 뒤엔 당내 ‘우군’이 많아졌다. 발언도 잦아졌다. 이날 김 의원은 특히 “북한에 과학자가 2200명이 존재한다”며 핵개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려 할 때 오신환 의원이 입을 열었다. 공교롭게 ‘반대파’ 3명 사이에 끼어앉아있던 차였다. “세분 가운데에 끼어서(웃음). 저도 비준에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반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장관으로부터 실질적인 협상 과정의 내용을 듣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알아야만 판단할 수 있고….”

일단은 1:3.

2시 반부터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30명의 의원 중 19명이 모였다. 지방선거 패배 뒤 ‘잠행’ 중인 유승민 의원과, 바른정당과의 통합 뒤 사실상 무소속으로 활동하는 박선숙, 이상돈 의원 등은 빠졌다. 조 장관은 3시30분 도착할 예정이었다.

3시24분이 되자 지상욱 의원이 굳은 표정으로 나왔다. 보이콧이었다. “내용을 떠나 형식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 기자가 ‘퇴장 외에 다른 조처는 없을지’ 물었다. “예를 들면? 1·2·3·4번 보기를 줘보세요. 무슨 말씀인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당 일정에 불참중인 유승민 의원과 관련해 ‘탈당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고, 지 의원은 유 의원과 가장 가까운 의원인데 혹시 함께 고민중인 지점이 있냐는 질문까지 더 하기엔 취재할 다른 상황이 많았다. 이학재 의원도 그즘 의원총회장을 이탈했다.

8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송경화 기자

3시29분 조 장관이 국회 본청 안으로 들어왔다. 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전투’를 치르러 가는 상황치곤 밝은 표정이었다. 닫힌 의원총회장 문 밖으로 쩌렁쩌렁 마이크 소리가 울려퍼졌다. 조 장관 목소리였다.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쩌렁쩌렁’은 한동안 계속됐다. 나중에 물어보니 설명을 40분간 했다고 한다. 나머지 1시간은 질의응답이었다.

5시쯤 김중로 의원이 의원총회장을 빠져나왔다. 그는 또 ‘북한 과학자 2200명’ 얘길 꺼냈다. “비핵화가 과연 가능한 것이냐. 2200명의 과학자를 안 죽이고. 핵 만드는 노하우는 다 갖고 있지 않느냐….”

5시10분 조 장관이 나왔다. 의원총회장에 들어간지 1시간 40분만이었다. 들어갈 때보다 굳은 표정이었다. 조 장관은 “남북관계 여러가지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 설명드리고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 국회 요청과 관련해 설명드리고 의원님들이 말씀하시는 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다시 의원들만의 회의가 시작됐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8일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를 찾아 100분간 비공개 브리핑과 질의응답을 마친 뒤 기자들 질문을 받고 있다. 송경화 기자

6시10분, 의원총회가 완전히 끝났다. 장장 4시간만이었다. 광주 지역구의 김동철 의원은 기자들을 향해 “결론이 났습니다!” 라고 말하며 본청을 떠났다. 직전 원내대표였던 김 의원의 표정은 밝았다. 반면 부산 지역구의 하태경 의원은 ‘결론이 난 게 맞냐’는 질문에 “정족수가 안 돼가지고…”라며 말 끝을 흐렸다. ‘또 바미한 것 아닌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당직자가 외쳤다. “김관영 원내대표가 브리핑을 할 것입니다. 들어오십시오.” 아직 열기가 남아있는지, 의원총회장은 더웠다.

그리고 김관영 원내대표가 내놓은 결론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판문점 선언을 지지하고요.… 다만 지금 상태로는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없다고 보는 게 다수의 법리 해석이어서 비준 동의 없이도 대통령이 직접 비준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는 게 맞다는 다수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준 동의에 찬성한다, 반대한다가 아닌, ‘그 대상이 아니다’는 결론이었다. 당장의 국회 비준 동의를 피하는 대신 ‘결의안’으로 국회 지지를 보여주고 비용 추계가 구체화했을 때 추후 비준 동의를 받게 하자는 것이었다. ‘조건부 동의’라는 기존 입장은 철회였다. 당내 반발 등을 감안한 절충안이었다. 비준 동의 찬성이 확정돼 당의 내분이 극에 달하는 상황을 막고, 제3정당으로서 경색된 정국을 풀 현실적 대안을 제시했다고 내세울 수 있는 결론이었다. 이 결론이 도출될 때까지 남은 의원은 30명 중 절반인 15명에 불과했다. ‘강력 반발’ 의원들은 모두 불참이었다.

8일 4시간에 걸친 의원총회를 마친 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결과를 기자들에게 밝히고 있다. 송경화 기자

‘불참 1호’라 할 수 있는 이언주 의원은 의원총회가 끝날 때쯤 어디선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요즘 고향인 부산 영도에 자주 발걸음을 하는 이 의원이다.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 곳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는 것은 그냥 한 번 덧붙여본다.

“그나저나 우리 바른미래당이 우파의 대열에서 이탈하려는 듯 합니다.…자유한국당이 시대에 맞는 우파의 역할을 못하는 듯 해서 바른미래당이라는 새로운 중도 우파 정당을 만들어 경쟁하고자 했는데 오히려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 1당 독재에 기여한 듯 해서 너무나 괴롭습니다.”

이런 날이면 의원총회 결과를 정리한 기사를 서둘러 쓰고 퇴근을 하면서도 자꾸만 ‘바미한’ 기분이 손가락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이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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