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상속때 65% 징벌적 세율..'자식같은 기업' 눈물의 매각

한우람 2018. 10. 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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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업 매각 급증 배경
中企 영업益 3%대 그쳐
"힘들게 기업해서 뭐하나"
제2 네이버·구글 성공담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
일부선 한창때 기업 매각
아예 새로운 사업 모색도

◆ 기업 물려줄 바엔 판다 ◆

#1 이현구 까사미아 회장은 올해 고희를 맞았다. 몸과 마음은 여전히 정정하지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홈퍼니싱 시장에서 까사미아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봉착했다. 5년여 장고 끝에 이 회장은 까사미아를 더 잘 키워줄 새 주인을 찾기로 결심했고, 회사를 신세계그룹에 매각했다. 까사미아는 매각 이후에도 5년간 고용 승계 보장 조건으로 직원들의 불안감을 없애는 한편 신세계가 지닌 막강한 유통망과 자금력을 활용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2 김성훈 전 유니더스 대표는 2015년 부친의 급작스러운 사망 이후 갈림길에 놓였다. 첫 번째 대안은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활용해 가업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상속 이후 사업을 10년 이상 유지할 경우 200억원 한도에서 상속세를 면제받는다. 두 번째 대안은 부친 보유 지분을 매각하고 대신 매각대금 중 절반가량을 상속세로 내는 것이다. 회사 주력품인 콘돔이 중국산 공세에 시달리면서 경영 여건 악화에 고민하던 그는 결국 바이오제네틱스투자조합에 회사를 매각했다.

회사를 물려주기보다 매각을 택하는 기업 오너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국내 기업이 중국 등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맹추격 때문에 산업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규제 일변도 정책 역시 회사 매각의 주된 원인이다. 사모투자펀드(PEF) 시장 성장으로 기업 매각 활로가 열리며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은 2009년 4.50%를 기록한 뒤 다음해인 2010년 3.29%로 급락한 후 줄곧 3%대를 유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물건을 1만원어치 팔아서 400원도 못 벌고 있는 셈이다.

경제 저성장에 따른 이익률 저하가 뚜렷한 반면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개인기업 매각이 봇물을 이루게 됐다. 2016년만 해도 매각 규모 2000억원 이상 개인기업 사례는 이상록 카버코리아 회장의 지분 일부 매각(거래대금 4300억원)을 제외하고는 전무했다. 그러나 지난해 들어 김준일 회장이 락앤락을 6293억원에, 고동환 대표가 녹수를 3600억원에, 서영필 회장이 에이블씨엔씨를 3274억원에 팔며 개인기업 매각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기업에 대한 규제 강공책이 이어지며 기업 환경이 어려워진 까닭에 그간 참아왔던 오너들의 기업 매각 욕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오너 창업자의 경우 본인이 청춘을 바쳐 일군 기업에 대한 애착이 상당하다. 그런 까닭에 창업자의 기업 매각은 국내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이런 애착을 바꿔놓을 정도로 기업 하기 어려운 여건이 조성됐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전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증여세율을 비롯한 기업 규제는 한국에서 제2의 네이버, 제2의 구글 같은 성공담이 나오기 어려운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일수록 가업승계를 이루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경영권 상속에 대한 현행 상속·증여세는 최고세율 50%에 30%를 할증한 65% 세율을 적용한다. 이 때문에 기업가치 1000억원 이상 우량 중견기업은 가업을 승계하는 순간 오너 지분율이 3분의 1로 줄어든다. 기업을 키울수록 오너는 지분 중 3분의 2를 국가에 '헌납'하게 된다. 창업자가 기업을 키울 유인이 낮아지는 대목이다.

국내 신생 정보기술(IT) 기업 대표 주자인 네이버와 옛 다음이 대표 사례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는 네이버가 '공룡'으로 성장한 뒤 대기업 총수 지정에 따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보유 지분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 이 창업주가 보유한 네이버 지분율은 창업 초창기인 2002년 말 7.82%에서 올 초 3.72%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이재웅 옛 다음 창업주는 카카오와 합병을 택하며 보유 지분을 5% 미만으로 줄였다. 기업을 더 키워서 보유 가치를 극대화하기보다는 더 많은 규제가 옭아매기 전에 지분을 털어내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김정주 넥슨 창업주는 올해 5월 공개서한을 통해 "가족의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자녀에게 회사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PEF 시장의 고성장도 개인기업 오너들의 매각 활성화의 원인이다. PEF의 기업 인수가 경영 효율성 제고에 도움을 준다는 점이 부각되며 기업 매각에 따른 이해관계자 반발이 낮아졌다.

중견기업 인수 전문 PEF 대표는 "PEF에 기업을 매각해 대규모 현금을 확보했다는 이야기가 중견기업 오너 네트워크에서 주요 화제가 되고 있다"며 "과거와 달리 PEF가 '기업 사냥꾼' 이미지를 벗으면서 오너들의 매각 선택지도 한층 넓어졌다"고 말했다.

오너 입장에서 기업 매각 시 중요한 고려 대상은 임직원 고용 관련 이슈다. 임직원 반발이 클 경우 그만큼 거래 성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PEF는 기업 인수 후 통합과정(PMI)을 중시하며 임직원 고용 보장을 철저히 하는 한편 경영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한 유인책으로 임원에 대한 스톡옵션 부여와 직원 급여 인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임직원들이 PEF로 피인수된 후 '보너스'에 반색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PEF가 기업을 인수할 경우 주주들도 행복해진다. PEF가 기업을 인수한다는 소식은 주가에 호재가 되고 되레 기업 매각 소식이 악재가 되는 현상도 발생한다.

[한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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