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로스쿨생들 "법관 양심에 대한 믿음 흔들어" 사법농단 규탄 성명

박광연 기자 입력 2018. 10. 10. 17:04 수정 2018. 10. 1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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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입구 위에 위치한 정의의 여신상 모습.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생들이 “판결문이 법관의 양심에 따라 쓰였다는 믿음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의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수사협조와 진상규명을 법원에 촉구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재학생들은 10일 ‘사법부에 고한다-사법농단 사태 앞에서 사법의 길을 고민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이 같이 주장했다. 성명 발표를 두고 지난 8~9일 진행된 찬반투표에 재학생 470명 중 334명이 참여했고, 이 가운데 299명이 성명 발표에 찬성했다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측은 밝혔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들은 성명에서 “선배 법조인들이 걸어가며 남긴 판결문은 우리의 길이 돼왔고, 적어도 그 모든 문장은 헌법과 법률에 의한 법관의 양심에 따라 쓰였으리라 굳게 믿었다”면서 “그러나 오늘의 사태에 이르러 그 믿음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한 재판은 공허한 말로 퇴색됐고, 법관의 저울에 놓인 법치의 이념은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재학생들은 “법을 공부하며, 법에 따라, 법과 함께 살아갈 미래의 법률가로서 우리는 헌정사의 굴곡에서 사법의 길을 고민한다”며 “사법부 역사에 오명을 남긴 (사법농단) 관여 법관들은 책임을 통감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밝혔다. 또한 사법농단 사태의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 사법농단 피해자들의 권리구제 등을 법원에 요구했다.

재학생들은 성명에서 헌법 조항의 내용을 열거하며 사법농단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재학생들은 “헌법 제103조에 따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면서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의 요구사항을 재판부에 전달해 법관의 독립성을 침범했고, 나아가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싱추진 전략’ 문건 등은 존재 자체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학생들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27조 제1항을 들어 “사법부는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을 자초함으로써 재판의 공정성을 위협했다”고 지적했다.

재학생들은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법원이 잇따라 기각하는 데 대해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 제1항을 인용하며 비판했다. 재학생들은 “법을 적용하는 법관이라도 법 앞에서는 다른 시민들과 평등한데, 수사 과정에서 (법관들에게) 청구된 영장들은 연이어 기각되고 있다”며 “현 사법부가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을 망각하고 사법농단을 바로잡을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라고 했다.

재학생들은 그러면서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사법의 권력은 헌법 이념에 충실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때에만 그 존재가 정당화된다”면서 “진실을 은폐하는 자와 은폐를 방조하는 자가 아울러 진상규명과 정의 실현을 지연하면서 사법부는 스스로의 정당성을 저버리고 있다”고 밝혔다.

『사법부에 고한다 -사법농단 사태 앞에서 사법의 길을 고민하며

우리는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았다는 의혹에 직면한 사법부에 참담한 심정으로 고한다.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그러나 특별조사단에 의해 밝혀진 바와 같이 법원행정처는 개별 판사들의 정치 성향과 판결 내용을 사찰하였고, 특정 사안들에 대한 대법원의 요구사항을 재판부에 전달함으로써 법관의 독립성을 침범하였다. 나아가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 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등의 문건은 그 존재 자체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였다. 사법부가 청와대와 접촉하려 했던 시도가 어떤 법률과 양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제27조 제1항,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재판청구권의 핵심 전제는 재판의 공정성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재판을 거래하였다는 의혹을 자초함으로써 바로 그 공정성을 위협하였다. 의혹이 처음 제기된 5월, KTX 승무원들은 대법원에서 “우리가 지금 법을 믿을 수 있는 상황이냐”고 외쳤다. 그 비통한 외침 앞에서, 그리고 계속하여 드러나는 재판거래 의혹의 정황들 앞에서, 사법부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보장된다고 감히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법을 적용하는 법관이라 할지라도 법 앞에서는 다른 시민들과 평등하다. 그러나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청구된 영장들은 연이어 기각되고 있고, 이는 유례없이 상세한 기각이유들로 뒷받침되고 있다. 현 사법부가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을 망각하고 사법농단을 바로잡을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다.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사법의 권력은 헌법의 이념에 충실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때에만 그 존재가 정당화된다. 그러나 진실을 은폐하는 자와 은폐를 방조하는 자가 아울러 진상규명과 정의 실현을 지연하면서, 사법부는 스스로의 정당성을 저버리고 있다. 사법부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하여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하여야 한다는 법관윤리강령을 다시금 깊이 새겨야 한다.

선배 법조인들이 걸어가며 남긴 판결문은 우리의 길이 되어왔다. 그 걸음을 온전히 따라가기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 모든 문장은 헌법과 법률에 의한 법관의 양심에 따라 쓰였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오늘의 사태에 이르러 그 믿음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공정한 재판은 공허한 말로 퇴색되었고, 법관의 저울에 놓인 법치의 이념은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법을 공부하며, 법에 따라, 법과 함께 살아갈 미래의 법률가로서 우리는 헌정사의 굴곡에서 사법의 길을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우리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생들은 뜻을 모아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사법부 역사에 오명을 남긴 관여 법관들은 책임을 통감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

하나, 사법부는 진상을 규명하고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라.

하나, 사법부는 현 사태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의 권리를 구제하라.

2018. 10. 10.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 일동』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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