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치마 입고 라이딩..여성 차별 '바이크 문화' 항의

이보라 기자 2018. 10. 10. 21: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치맛바람 라이더스’ 행사 연 트위터·바이크·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모임 ‘트바움’
ㆍ달리다 보면 엄청난 ‘여혐’ 경험…기존 모임에 염증 느껴
ㆍ이륜차 차별도 심해…“누구나 평등한 라이딩 바람”

‘트바움’ 회원이자 ‘치맛바람 라이더스’ 주최자인 바바, 김꽃비, 모가요, 서울혼당씨(왼쪽부터)가 지난 3일 서울 중랑구의 한 카페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중 카메라를 보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바이크(오토바이)를 탈 때 여성으로 인식되는 순간 엄청난 위협을 받아요. 남성 운전자가 뒤를 쫓아 온다거나 무리하게 추월하고요. 옆으로 스치듯이 위협 운전을 합니다. 신호 대기로 정차할 때는 옆에 있는 택시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위아래를 훑어보기도 하죠.”

배우 김꽃비씨(33·별명 ‘바이크전도사’)가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트위터를 하며 바이크를 타고,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임 ‘트바움’을 제안했다. 트바움의 ‘움’은 여성이자 사람을 뜻하는 ‘wom’의 약자다.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정반대인 사회를 그린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여성을 ‘wom’으로 남성을 ‘manwom’으로 표현한 것에서 따왔다.

김씨는 기존 바이크 모임에 지쳐 모임의 아이디어를 냈다. 기존 바이크 모임은 남성 중심 문화가 팽배하다. 여성 운전자가 가면 ‘여신’ 취급을 해주거나 아니면 무시하기 일쑤였다. 동등한 운전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여자가 바이크를 타? 스쿠터나 타지.” 차별적 언행을 자주 겪었다. 치어리더나 플래그 걸처럼 남성을 뒤에서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기를 강요받았다.

참가자 ‘모가요’(별명)씨는 “남성들은 자신의 바이크를 성적 대상화하며 바이크에 ‘샤샤’ 같은 여성 이름을 짓거나 바이크를 팔 때 ‘딸을 시집보낸다’는 식으로 표현했다”며 위계가 강한 남성 중심 문화 특성상 나이와 바이크 배기량, 기종 등에 따라 서열이 있다고 말했다.

도로 위 여성혐오도 모임이 생기게 된 계기다. 참가자 ‘바바’(별명)씨는 여성 운전자로 보이지 않으려고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여성으로 인식되면 위협 운전을 너무 많이 당한다. 차들이 괜히 클랙슨을 울렸다”고 떠올렸다.

‘바르니’(별명)씨는 말했다. “긴 머리의 왜소한 체형을 가진 남성 운전자가 여성인 줄 알고 운전자들이 쫓아갔다가 여성이 아닌 걸 보고는 실망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저도 한때 여성 운전자로 인식되는 게 2등시민이 돼버리는 것 같아 이발기로 머리를 밀고 치마를 입지 않았어요.”

참가자들은 트바움을 알게 된 뒤 여성 운전자가 받는 차별에서 자유로워졌다. 트바움은 성별과 배기량, 기종 등으로 서로를 차별하지 않는다. 바이크를 좋아하고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사람이면 존중받는다.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피하려고 서로의 이름과 나이, 직업, 연락처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가입과 탈퇴가 있는 동호회도 아니다. 트위터로 연락해 같이 바이크를 탔다가 해체한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 망원 한강공원에서 ‘치맛바람 라이더스’ 제1회 행사를 열었다. 바이크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성적 차별 없이 놀자는 게 취지다. 드레스 코드는 치마. 남성 참가자인 ‘서울혼당’(별명)씨는 처음으로 긴 치마를 입고 바이크에 올랐다. 치마가 아니어도 참가자가 원하는 어떠한 복장이든 가능하다. 참가자 약 50명은 망원 한강공원에서 박정희기념관까지 단체 주행하며 치맛자락을 휘날렸다.

행사 이름이 ‘치맛바람’인 이유는 치맛바람이 ‘여성의 극성적인 사회활동’을 뜻하는 부정적 단어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꼭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남자들은 짧은 반바지를 입고도 바이크를 잘 타면서 여자들에게는 치마를 입고 타지 말라고 말한다. 치마라는 단어에는 여성혐오라는 상징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성과 같이 바이크 등 이륜차도 도로 위에서 소수자성을 갖고 혐오를 당한다고 입을 모았다. 참가자인 바이크 웹툰 <100㏄>과 <로딩> 작가 이지우씨(33)는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바이크가 차별 받는 게 매우 많아요. 바이크 자체를 싫어하죠. 주차는 당연히 차가 들어갈 자리에 어딜 바이크가 들어가냐고 해요. 여성혐오랑 비슷한 점이 많아요. 그래서 페미니즘에 깊게 빠져들 수 있었어요.”

바이크 운전자에 대한 폭언도 문제로 꼽힌다. ‘모가요’씨는 “인터넷에서 상처 받아서 울 뻔 했다. 바이크가 너무 시끄러우니 사고가 나 운전자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글들을 봤다”고 말했다. 김씨는 “능력이 있으면 자동차 탔겠지 이륜차 탔겠냐고 한다. 배달 바이크를 타면 더 무시한다. 배달원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마저 투영한다”고 했다.

이들은 바이크 운전자를 배려하지 않는 정책도 많다고 지적했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 바이크가 진입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보험 적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바이크를 타다 다쳤을 경우 보상받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여성으로서, 바이크 운전자로서 차별 없이 도로 위를 달리고 싶어 한다. 김씨가 말했다. “바이크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이크는 재밌어요. 바이크를 타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평등하게 탈 수 있는 문화로 바뀌었으면 합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