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외식의 품격] 1천원대 싸구려 커피, 맛도 싸구려일까?

2018. 10. 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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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커피로는 ‘가성비’ 최고, 씁쓸한 맛과 신 맛 조화 나쁘지 않아
커피 수준 상향 평준화 결과… 맥도날드, 버거킹 커피도 권할만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내놓은 1000원대 저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각 업체 홈페이지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 온다’.
물론 장기하가 노래하는 싸구려 커피는 자판기 혹은 믹스 커피일 것이다. 요즘에는 또 다른 싸구려 커피가 존재한다. 패스트푸드나 주스 프랜차이즈 등에서 파는 아메리카노 말이다. 믹스 커피든 아메리카노든 ‘싸구려’라면 궁상 맞을 것 같지만 때로 이런 커피가 필요한 때가 있다.

막 출근해 일을 시작하려는 아침나절이 대표적이리라. 이 시각의 커피란 맛보다 각성을 위한 일종의 연료이다. 맛있으면 좋겠지만 맛이 없어서 먹지 못할 정도만 아니면 된다 . 평론가로서 ‘가성비’, 즉 가격 대비 성능비라는 표현을 음식에 쓰기 꺼려하지만 드물게 미덕이 될 수 있는 예가 아침의 싸구려 커피이다. 점심 혹은 그 이후의 좀 더 맛있는 한 잔을 기약하며 일단 정신부터 차리려 들 때 유용하다.

◇프랜차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서 발견되는 공통점 4가지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싸구려 커피에 정말 많이 기대었다.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말이다. 고압으로 추출한 커피콩의 정수인 에스프레소를 얼음물에 타서 만든다. 요리사이자 방송인인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빽다방’이나 주스 전문점 ‘쥬씨’를 비롯 , 버거킹이나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미디엄 사이즈(400ml)에 1500원 이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여름 내내 마셔보고 도출해낸 패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말 맛이 없어 마시기 힘든 수준은 넘긴다. 커피를 마신다는 최소한의 즐거움은 보장해준다는 말이다. 가끔 그 선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아침 나절에 각성을 위한 연료로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브랜드에 상관 없이 품질도 고만고만했다. 싸구려라도 최소한의 품질 혹은 맛은 보장해준다는 의미인데, 고민을 좀 했지만 각 업체보다는 커피문화 전체 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이 아니라 커피의 세계적 현주소가 그렇다는 말이다.

한국의 커피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외식 분야에서 지난 십 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분야가 커피와 제빵이다. 커피는 역사가 그만큼 유구하기 때문이라 보기도 쉽지만 일본의 영향을 받은 강배전, 즉 쓴맛이 강한 손내림 커피 일색에서 신맛을 내는 중배전의, 북유럽 영향을 받은 에스프레소와 그 ‘배리에이션’이 도입·정착 되었다. 기존과 결이 다른 커피의 세계가 뿌리내렸다는 말이다 .

둘째, 그래도 저가 커피·주스나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커피’의 일족이 최악은 아니다. 거의 같은 비용으로 편의점에서 파우치에 든, 미리 추출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데 비교해보면 단박에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편의점 커피는 1600~2200원(파우치 커피 1000~1500원에 얼음컵 600~700원)이 드는데, 맛이 옅으면서도 떫어 커피 마시는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다 . 커피 맛의 정수가 휘발성 강한 향 화합물질임을 감안한다면, 즉석 혹은 그에 준하는 추출만으로도 싸구려 커피의 일족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최고의 싸구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 있다

셋째, 진하다고 능사는 아니다 . 카페인 섭취량의 상한선(1일 400mg·참고로 에스프레소 한 잔이 212mg)도 고려해야 하지만, 커피는 쌀수록 대체로 쓴맛이 강하게 지배한다. 따라서 에스프레소 추출액을 많이 더할수록 쓴맛 또한 강해져 즐기기 어려울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면 얼음을 넉넉히 주는 게 나쁘다고 볼 수 없다. 이 가격대의 커피는 오히려 얼음이 녹으면서 커피가 좀 옅어져야 부드러워지면서 한결 마시기 편해진다. 단지 온도 변화에만 기대는 뜨거운 커피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매력이니, 얼음이 많다고 야속하게 여길 필요 없다.

넷째,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커피가 훌륭하다. 줄을 세운다면 모든 싸구려 커피 가운데 맥도날드가 가장 훌륭하고 근소한 차이로 버거킹이 두 번째이다. 이유가 뭘까? 세계적인 차원으로 가능한 박리다매 등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맛을 내는 요령을 그만큼 체계적으로 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산 브랜드에서는 ‘무료 샷 추가’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앞에서 밝혔듯 쓴맛과 더불어 떫은맛도 강해지므로 언제나 최선이라고는 볼 수 없다.

사족 하나. 점심 후 가장 어울리는 커피는 무엇일까? 자글자글 끓는 얼큰한 찌개에 김치 같은 한식을 먹었다고 가정할 때 아이스 라테를 권한다. 무엇보다 고춧가루의 매운맛을 책임지는 화합물인 캡사이신이 지용성이므로 우유로 씻어내릴 수 있다. 게다가 뜨거운 음식을 먹었으니 식혀준다는 의미에서 차가운 게 좋고, 열량 높은 시럽을 넣지 않아도 우유와 커피 자체의 단맛이 심심함은 덜어준다.

◆ 이용재는 음식평론가다. 음식 전문지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에 한국 최초의 레스토랑 리뷰를 연재했으며,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등 한국 음식 문화 비평 연작을 썼다. ‘실버 스푼’,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뉴욕의 맛 모모푸쿠’, ‘뉴욕 드로잉’ 등을 옮겼고, 홈페이지(www.bluexmas.com)에 음식 문화 관련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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