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버스 음식물 반입금지' 9개월, 승객들은 꼼수를 쓰고 있다

입력 2018.10.11. 16:56 수정 2018.10.1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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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가방·외투에 몰래 넣어서 타는 등 꼼수..'배 째라' 맞서기도
기사들 '불친절' 민원 받을까 승객에게 하차 요구 망설여
서울시 "몰래 타는 사람 어쩔 수 없다..조례개정 홍보 집중"

[한겨레]

한겨레 자료 사진

지난주 출근길에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버스에 오르려다가 버스 기사님께 승차를 제지 당했습니다. “시내버스 운전자는 여객의 안전을 위해하거나 여객에게 피해를 볼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 음식물이 담긴 일회용 포장 컵(일명 ‘테이크아웃 컵’) 또는 그 밖의 불결, 악취물품 등의 운송을 거부할 수 있다”는, 지난 1월 개정된 서울시 조례 때문이었습니다.

바쁜 출근길에 버스를 떠나 보내니까 허무함이 밀려들더군요. ‘다음에는 가방에 넣어서 탔다가 몰래 꺼내먹을까?’, ‘안 흘리면 되는 것 아냐?’란 생각도 잠시 스쳤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궁금증이 생겼어요. 나처럼 삐딱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버스 기사들은 이런 승객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지난 10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버스회사 차고지에 달려가서 버스 기사들을 만나 직접 물어봤습니다.

■ 꼼수 부리고, ‘배 째라’ 버티는 승객들

지난 1월 서울시 조례가 개정된 이유는 무엇보다 승객의 안전 때문입니다. 버스가 움직일 때 빨대에 목을 찔리거나 뜨거운 음료가 쏟아져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음식물을 들고 있느라 손잡이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요. 버스에선 아무래도 서서 가는 경우가 많으니, 버스 기사도 승객을 일일이 신경 쓰기 어렵습니다. 일반 차량보다 안전 기준이 엄격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버스 기사들은 조례 개정되고 조례에 대한 홍보 방송 등의 공지가 있었던 여름쯤부터 음식물을 갖고 타는 승객이 많이 줄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개정 전 음식물을 소지한 승객이 100명 정도라고 보면, 지금은 20∼30명꼴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음식물을 몰래 반입하려는 ‘꼼수’도 다양해졌습니다.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나 떡볶이 등을 가방에 몰래 넣어서 타는 것은 기본이고, 외투에 음료를 숨겼다가 살짝 빨대만 꺼내 쪽쪽 빨아먹는 경우도 많답니다. 심지어 ‘팀플레이’를 벌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자친구가 먼저 타서 앉아요. 그다음에 밖에서 남자친구가 창문으로 음료를 넣어줘. 나는 그냥 연인들끼리 ‘바이바이’하는 줄 알았는데 글쎄, 창문으로 커피를 넘겨주는 거예요.” (버스 기사 최중임씨)

“먼저 탄 사람이 다인승으로 두 명 치 요금을 찍어요. 그리고 뒤에 탄 사람이 음료를 들고 있어서 내가 안 된다고 했거든요? 근데 그 사람이 앞에 대고 ‘어? 음료 안 된대~’라고 하는 거예요. 그럼 그 앞에 있던 사람이 ‘이미 두 명 찍어버렸는데요’라고 해요. 이걸 어떻게 말리냐고.” (버스 기사 강윤식씨)

그래도 이런 꼼수는 상대적으로 양반 격입니다. ‘배 째라’고 맞서는 승객도 적잖습니다.

“내가 봤을 땐 분명히 바닥에 음료가 남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무조건 다 먹었대요. 어차피 조금밖에 안 남았다는 거예요.” (버스 기사 ㅂ씨)

“어떤 사람은 ‘운전만 똑바로 하면 되지, 왜 이런 것까지 신경 쓰냐’고 하더라고요. 안전 때문이라고 말해도 콧방귀도 안 뀌어요.” (버스 기사 공명호씨)

“내 노선이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많이 태우거든요? 그런데 한 학생이 음료를 턱 하니 내밀더니만 ‘조례는 개정됐어도 그게 법은 아니지 않으냐’고 하는 거예요. 아주 똑 부러지게.” (버스 기사 최상옥씨)

■ 왜 조례대로 ‘승차거부’ 못하나

꼼수를 쓰거나 무작정 버티는 승객을 만날 때마다 조례에 따라 그 승객을 하차시키면 되는 것 아닐까요? 기사들은 이런 질문에 ‘사실상 조례를 곧이곧대로 따르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불친절 민원이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는 다산콜센터 등을 통해 버스 관련 민원을 받습니다. 신호 위반, 난폭운전, 정류장 무정차 등 민원 이유는 다양한데요. 이 가운데 ‘불친절’도 민원 이유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스 기사가 화를 내며 안내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죠. 불친절 민원이 일단 접수되면, 버스 기사들은 내용의 적절성과 별개로 불친절을 ‘해명’하는 경위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민원 한 번 들어오면 사무실에 앉아서 진술해야 해요. 기분도 나쁘지만 민원 건수가 결국 직원 등급평가에도 반영이 되거든요. 나는 그냥 규정대로 안내했을 뿐인데, 안내가 적절했다고 인정을 받아도 나한테는 결국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예요.” (버스 기사 ㄱ씨)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버스 기사들은 승객과 승강이를 벌이는 일 자체를 피하게 됩니다. 이미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승차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다가, 할머니에게 노약자석을 양보해달라고 말했다가 불친절 민원을 경험한 버스 기사들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음식물 반입금지 건으로 불친절 민원을 받아봤다는 버스 기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테이크아웃 잔을 든 승객이 탔어요. 내가 봤을 땐 얼음이랑 음료도 조금 들어 있었거든요. ‘타시면 안 된다’고 얘기했더니 비어 있다고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버리고 타라고 말했는데도 그냥 타버려요. 그러고 나서 불친절 민원이 들어왔어요. 내가 잘못한 건가 싶어서 서울시에 물어보니 얼음 한 개라도 들었으면 반입이 안 된대요. 그럼 결국 내가 맞은 거잖아. 너무 억울했죠.” (버스 기사 ㅂ씨)

■ 서울시 “몰래 타는 사람들 어쩔 수 없어…조례 홍보에 집중”

한 버스 기사는 “조례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결국 승객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기사들은 특히 여름보다 겨울을 걱정합니다. 여름에는 가장 위험한 요소라고 해봤자 빨대 정도였고 ‘쏟아봤자’ 차가운 음료였는데, 겨울에는 얘기가 달라진다면서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계절이 가고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의 계절이 오면 어떻게 될까요? 기사들의 예상은 이렇습니다.

“겨울은 더 심각하겠죠. 뜨거운 음료 숨기고 타는 승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탑승시켰다고 쳐요. 그게 주행 중에 쏟아지면 100% 안전사고죠. 차가운 커피가 쏟아졌을 때는 바닥만 끈적거리고 말았는데 뜨거운 커피면… 어휴, 아직 겨울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걱정이 많이 돼요.” (버스 기사 ㅂ씨)

만약 지금처럼 계속 버스 기사의 눈을 피해 음식물을 몰래 들고 탑승하거나, 버스 기사가 민원을 우려해 음식물 반입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하지 못한다면, 애초 조례를 개정한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러한 사각지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1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아직은 조례개정을 홍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민원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버스 기사들에 대해선 “(아직) 버스 기사가 중징계를 받았다거나 금전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조례가 개정된 걸 알면서도 몰래 음식을 들고 타는 사람들에 대해선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버스정류장마다 쓰레기통을 구비할 필요가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모든 구에 정류장마다 쓰레기통을 많이 비치하자고 이야기해도 (서울시 버스정책과는) 힘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지금은 어떤 승객이 조례를 위반한 채 몰래 반입한 뜨거운 음료가 쏟아져 승객이 다쳤을 때, 조례가 지켜지지 않은 책임을 버스 기사에게 물어 피해 보상을 하게 한다고 해도 서울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입니다. 정작 조례를 만든 건 서울시인데도요. 조례의 사각지대를 보완해 승객도 안전하고, 버스 기사도 안심할 수 있는 후속 조처를 기대하긴 어려울까요?

박윤경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