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으로 신뢰를 담금질하는,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2018. 10. 1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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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백과'
탄생 배경과 운영원칙 등 소개
'공유지의 비극' 예상 깨뜨리고
지식의 자유로운 공유 쌓아올려

[한겨레]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진주완·정철·류철 지음/사계절·1만6000원

인간의 선의에 기대어서는 아무 일도 안 된다, 모두가 ‘모두의 것’을 내팽개치는 ‘공유지의 비극’은 불가피하다,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은 자격을 누려야 한다, 익명으로 주고받는 정보는 믿을 수 없다…. 2001년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백과’(wikipedia.org)가 처음 등장했을 때 던져졌던 불신과 우려의 눈길들은 대체로 이런 통념들에서 비롯했다. 소수의 전문 편집진이 만드는 전통적인 백과사전들과는 다르게, 누구나 무료로 또 수시로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위키백과는 정확성, 중립성 등에서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위키백과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온라인 백과사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290여개의 언어로 4000만여개 이상의 글을 품고 있을 정도로 방대한 콘텐츠를 축적하고 꾸준히 갱신하고 있다. 더이상 종이로 출판하지 않는 전통적인 백과사전들이 되레 “위키백과가 재편한 온라인 생태계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은 위키백과의 현황과 구조, 운영 원리 등을 종합적으로 설명해주는 ‘위키백과 안내서’다. 진주완(한국위키미디어협회 감사), 정철(웹 사전 기획자), 류철(한국위키미디어협회 이사) 등 3명이 함께 썼다. 열렬한 위키백과 사용자인 이들은 이번 집필도 웹상의 공동편집 도구를 사용해 서로의 글을 상의 없이 다듬는 등 ‘위키적’으로 수행했다고 한다. 여기에서부터 지은이들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다수가 만들고, 그 결과물을 누구도 소유하지 않으며, 모두에게 개방된 콘텐츠는 결국엔 좋아질 수밖에 없다.”

위키백과는 모두가 참여하여 지식을 구성하는 온라인 백과사전이다. 폴란드 스우비체에 세워져 있는 위키백과 기념 조형물.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위키백과의 탄생 배경을 먼저 따라가보자. 인류는 언제나 문자를 이용해 지식을 축적하는 데 열을 올려왔고, 대학과 같은 자율적인 커뮤니티는 새로운 지식의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모든 것을 담은 책’인 백과사전은 이런 지식 축적 노력의 총화다. 위키백과는 이 같은 문화적 전통에 현대의 온라인 네트워크 문화가 더해지면서 새롭게 생성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위키백과 이전에도 인터넷 백과사전을 만들고자 한 시도가 없지 않았으나, 대체로 소수의 전문가 편집진이 콘텐츠를 제작하는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이런 방식에 한계를 느낀 ‘누피디어’ 운영자 지미 웨일스와 편집장 래리 생어는 2001년 1월 일반인이 참여하는 ‘위키’ 방식의 백과사전으로 방향을 전환했는데, 이것이 바로 위키백과의 시작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사전과 위키백과를 결정적으로 가르는 요소, ‘위키’란 과연 무엇인가? 한마디로 누구나 문서를 간단히 작성하고 고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시스템이다. “모든 사용자가 동등한 편집 권리를 갖는다는 위키백과의 아이디어는 정보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위키백과는 2003년 비영리법인 ‘위키미디어재단’을 설립하는 등 오픈 소스와 자유소프트웨어 정신에 따라 영구적인 ‘비영리 운영’의 원칙을 못박았다. 누구나 편집에 참여할 수 있되 누구도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는, 위키백과의 독특한 성격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모두가 독점적 저작권을 주장하며 지식의 자유로운 공유를 거부한다면, 지식의 발전 자체를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위키백과 로고가 변천해온 모습. 사계절 제공

만약 누군가 어떤 사안에 대해 악의적인 편집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해관계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편집을 한다면? 중립적이지 않은 태도로, 정확하지 못한 정보를 적어넣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위키백과에서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이에 대해 지은이들은 “위키백과의 지난 역사는 선의의 건설자가 언제나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위키백과는 정교한 규정이나 지침 대신, “위키백과는 백과사전입니다”, “위키백과는 ‘중립적 시각’에서 바라봅니다”, “위키백과의 글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위키백과에서는 다른 사용자를 존중합니다”, “위키백과에는 엄격한 규칙이 없습니다” 등 다섯가지 원칙 위에 서 있다. 원칙들은 단순하지만, 사용자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무엇보다 위키백과는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가공하고 구성하여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곳이다. 때문에 사용자들은 언제나 어떤 정보에 대해 ‘출처’를 요구하고 그 중립성이나 신뢰성을 의심해본다. 출처가 없이 스스로 만든 ‘독자 연구’(Original Research)는 엄격하게 제한된다. “계속되는 의심과 불신 가운데서 인정받은 정보만이 살아남는” 셈이다. ‘최근 바뀜’, ‘역사 보기’, ‘토론’ 등의 장치들과 위키백과 커뮤니티의 최종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총의’ 등이 이런 과정을 돕는다.

위키백과 사용자들은 ‘위키마니아’라는 이름의 국제적인 컨퍼런스를 열곤 한다. 2016년 6월 이탈리아 롬바르디 지방에서 열린 위키마니아의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렇다보니 위키백과에서는 토론과 ‘편집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외래어 표기를 국립국어원의 원칙에 따를 것인가 언중 다수의 표기에 따를 것인가, ‘아이언 메이든’의 대표 항목을 헤비메탈 밴드로 할 것인가 중세의 고문도구로 할 것인가, 스페인과 에스파냐 가운데 무엇을 표제어로 삼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위키백과는 최종적인 결과물을 전제로 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변경과 개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잘못된 정보가 들어가더라도 누군가 그것을 발견해 바로잡을 수 있으며, 그 변경된 이력과 토론 과정마저도 기록으로 남아 사안에 대한 좀 더 풍부한 맥락을 제공할 수 있다.

지은이들은 “위키백과는 이렇게 지난한 토론과 숙고의 과정을 통해 설계되고 유지되는 만큼 그 어떤 매체나 커뮤니티보다 견고한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한국어 위키백과가 영어 등 다른 언어판 위키백과에 견줘 부실하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한 지은이들의 일침도 눈길을 끈다. “전공자가 자기 분야의 위키백과 문서가 충실하지 못한 것을 보고 그냥 넘어간 것 자체가 이미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이란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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