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일본 극우 야스쿠니 신사가 일왕을 비판한 이유는?
지난 10일 일본 야스쿠니 신사의 총책임자인 고호리 쿠니오(小堀邦夫) 구우지(宮司)가 퇴임을 발표했습니다. 구우지는 우리 사찰의 주지스님과 비슷한 자리인데, 이번 퇴임은 지난 3월 취임 이후 불과 7개월 만입니다. 극우세력의 본산인 야스쿠니 신사의 구우지가 갑작스레 사임한 이유는 한 주간지의 기사 때문입니다.
주간 포스트는 최신호에서 고호리 쿠니오 구우지가 지난 6월 신사 내 회의에서 현 아키히토 일왕을 비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고호리 구우지는 신사 회의실에서 열린 '제1회 교학연구위원회 정례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간지 녹음 파일 확보)
"각하가 열심히 (태평양전쟁 전몰자를 위한) 위령의 여행을 가면 갈수록 야스쿠니 신사는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는 거예요.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어디든 위령 여행을 가면 거기엔 혼령이 없어요. 유골은 있어도…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논의해 결론을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지금 각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무너뜨려고 하고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일본 보수세력의 성지인 야스쿠니 신사의 총책임자가 자신이 받들어야 할 일왕을 오히려 정면 비판한 겁니다. 고호리 구우지는 특히 일왕의 '위령의 여행'에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아키히토 일왕은 1992년 중국, 1993년 오키나와, 2005년 사이판, 2016년 팔라우, 2017년 필리핀 등 태평양전쟁의 격전지들은 두루 방문해왔습니다. 방문지에선 숨진 일본군뿐 아니라 현지 전몰자에 대해서도 위령의 뜻을 나타냈죠.
반면 야스쿠니 신사는 1989년 즉위 후 단 한 번도 찾지 않았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왕의 이런 태도에 큰 위기감을 느낀 겁니다. '야스쿠니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발언까지 나온 이유입니다. 일왕은 일본 국민들에게 정신적 아버지와 같습니다. 그런 일왕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경우 야스쿠니는 애국의 성지라는 위치를 잃어버리고 결국 주말마다 극우 세력들만 모여드는 장소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스쿠니의 더 큰 걱정은 내년 5월 아키히토 일왕의 뒤를 이을 나루히토 왕세자도 야스쿠니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고호리 구우지는 말을 이어갑니다.
"앞으로 반년 간 알게 될 거예요. 남은 재임 기간 중 결국 한 번도 참배를 오지 않으시면 지금 왕세자가 즉위 후 참배할 수 있을까요? 새롭게 왕비가 되는 분은 신사나 신도를 아주 싫어하는데 과연 올까요?"
아키히토 일왕이 끝내 재임 중 참배하지 않을 경우 반전주의자로 알려진 아들 나루히토 왕세자도 즉위 후 참배하지 않을 것이고 게다가 왕세자비까지 야스쿠니를 싫어한다는 설명입니다.
아키히토 일왕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일본 왕실 취재전문 기자들은 주간 포스트에 "아버지인 히로히토 전 일왕이 1978년 A급 전범 합사 이후 참배하지 않았던 뜻을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히로히토 전 일왕은 바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죠. 히로히토 전 일왕은 1975년 11월까지 야스쿠니에 참배를 했지만, 78년 A급 전범 합사 이후엔 발길을 끊었습니다.
히로히토 전 일왕이 A급 전범 합사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A급 전범 합사로 극우 세력을 결집해온 야스쿠니 신사에겐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은 2006년 전 궁내청 장관 도미타 토모히코의 메모가 공개되면서 알려졌습니다. 도미타는 1988년 4월 히로히토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내용의 일명 '도미타 메모'를 남겼습니다.
"A급 전범이 합사 됐는데, 거기엔 마쓰오카, 시라토리 등(태평양전쟁 지지 외무장관들)도 포함돼 있어. 전에 쓰쿠바 구우지(宮司)는 신중하게 처리해 (합사 하지 않았는데)…마쓰다이라 현재 구우지는 평화를 사랑했던 자기 아버지의 생각을 모르고 (합사를 강행) 그래서 난 그 후 참배하지 않아. 그것이 내 마음이야."
메모를 보면 히로히토는 자신과 A급 전범을 분리해서 생각하면서 스스로는 전쟁 책임이 없다고 여긴 듯합니다. 그는 태평양전쟁 과정을 구술한 '쇼와천황 독백록'에서도 "군부와 의회가 전쟁을 일으켰고 나는 입헌군주로서 재가만 했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이걸 막고 있는 것이 바로 일본 정부, 즉 아베 총리입니다. 아베 총리는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됐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손자이죠. 아베 총리는 현 아키히토 일왕과 나루히토 왕세자의 한국 방문에도 반대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위령의 여행'을 반대하는 야스쿠니 신사와 똑같습니다. 이번 야스쿠니 구우지(宮司)의 사임 사건은 시작일 뿐입니다. '역사를 직시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현 일왕가의 뜻이 야스쿠니 신사와 아베 정권의 방해를 넘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최호원 기자bestig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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