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선일보

무력감과 수치심..기자가 '사이버 왕따' 당해보니

고성민 기자 입력 2018.10.14. 11:05 수정 2018.10.1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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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직접 당한 ‘사이버 왕따’
욕설 공격→SNS테러→신상공개
저항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야, 카톡 바로 안 보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지."

평소 나를 괴롭히던 민지로부터 걸려온 전화.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민지는 카카오톡 확인이 늦었다는 이유로 "두고 보라"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카톡’ ‘카톡’ ‘카톡’....카카오톡 메시지 알림이 반복적으로 울렸다. 민지가 만든 단톡방(단체 채팅방)에서 ‘나’를 겨냥한 욕설 메시지가 뜨는 소리였다. 채팅방에는 송이, 은혜, 현아, 지연, 명진까지 모두 6명이 초대되어 있었다. 민지가 "선제공격"이라고 쓰자, 일제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메시지 40여개가 떴다.

순식간에 메시지가 와르르 올라와서, 맞대응하는 답장을 쓸 수도 없었다. 방법이 없어 채팅방을 나갔다. 그러나 강제로 다시 단톡방에 ‘초대’되어 욕설 메시지를 바라봐야만 했다. 저항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방을 나가? 맞으려고 환장했네."
"혼자서 죽지마, 우리가 죽여줄 테니까."
"신고해봐, 끝까지 계속 괴롭혀줄게."

◇사이버왕따, 간접체험인데도 수치심이 밀려왔다
기자가 경험한 ‘인터넷 왕따(Cyber Bullying)’ 체험이다. 광고회사 이노션이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와 함께 만든 앱(응용프로그램)을 스마트폰에 깔면 실제와 유사한 형태의 ‘사이버 왕따’를 겪는다. 직접 사이버 왕따 피해를 경험함으로써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자는 취지로 앱의 이름도 ‘사이버 폭력 백신’이다. 12일 현재 이 앱의 다운로드 횟수는 5만회에 이른다. 구글 안드로이드마켓에서 ‘사이버 폭력 백신’은 인기앱 순위 상위권에 등록되어 있다.

12일 ‘사이버폭력 백신’ 앱을 실행한 모습. 여기에는 가상의 카카오톡·페이스북·문자메시지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다. ①앱을 실행하자 “피해학생의 휴대폰으로 바뀌었다”는 공지가 뜬다.(왼쪽)②가해자들이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으로 일제히 욕설을 하고 있다.(가운데) ③이후 사이버 왕따 피해자의 신상이 페이스북에 공개된다.(오른쪽) /고성민 기자

앱을 실행해서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면 왕따가 가해진다. 먼저 앱을 통해 "메신저를 보라"는 전화가 걸려오고, 미리 입력된 가해자들의 언어폭력이 일제히 뜨는 식이다. 욕설·비방 메시지는 실제 따돌림 사례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피해자(앱 실행자)가 가해자들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는 없고, 일방적으로 욕설이 쏟아진다. 실제 사이버 왕따의 양상도 이와 비슷하다.

기자는 초대된 ‘사이버 왕따’ 단톡방에서 무기력하게 메시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가해자 명진이가 "이제 노잼(재미없음). 페북(페이스북)가서 놀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피해자가 괴롭힘을 당하는 사진이 가상의 페이스북에 떴다. 머리채가 잡힌 채로, 벌려진 입으로 빵이 강제로 들어가는 사진이 가상의 페이스북에 떴다. "우리학교 찐따 신상공개, 010-XXXX-OOOO, 금은동아파트 513동 1801호"라며 피해자 신상이 공개됐다.

이번에는 댓글로 조롱이 이어졌다. "웃겨 뒤짐." "얘 우리 학원 다님. 학교에서도 왕따네." "나 같으면 자살." "맞고 다니게 생겼다." 간접 따돌림 체험이었지만 수치심이 밀려왔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메시지가 왔다. "나랑 만날래? 너네 집 금은동아파트지" "네 동생 OO중학교 다니냐?" 페이스북 사진을 접한 가상의 가족들도 "어떻게 된 일이냐"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폭력보다 위험" 두 배 이상 늘어난 ‘사이버 왕따’
전문가들은 사이버 왕따가 물리적 폭력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매일 사용하는 휴대전화로 ‘손쉽게’ 폭력을 당하면서 피해학생은 정신이 황폐해진다"면서 "물리적 폭력은 흉터가 생기면서 발각되기 쉬운데, 사이버 왕따는 주변인이 발견하기도 어려워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달 2일에는 충북 제천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사이버 왕따를 당했던 고교 1학년 A(16)양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A양은 같은 학교 선배·동급생 6명에게 지속적인 사이버 왕따를 당했다. 가해자 가운데 일부는 A양에 대한 가짜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사이버 왕따 피해자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교육부·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사이버 왕따 신고수는 2012년 900건에서 2016년 2122건으로 증가했다. 가해 수단의 절반가량(50.3%)은 카카오톡 등 메신저로 이뤄졌다. 온라인 게임(41.5%)이나 소셜미디어(SNS·34.1%)로 가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가해자의 42.2%는 "상대방이 싫고 화가 나서 그랬다"고 응답했다. 다음으로 보복하기 위해(40%), 장난삼아(23.8%), 내 의견과 다르게 틀린 말을 해서(15.2%)순이었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왕따를 줄이기 위해서는 "학교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대부분의 사이버 왕따 피해학생들은 담임 선생님이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한다"면서 "교사들이 사이버 왕따의 심각성을 보다 크게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처벌기준을 보다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이버범죄연구회장)는 "사이버 왕따를 처벌하는 직접적 법률이 없기 때문에 가해자가 처벌을 받지 않고 그냥 풀려나는 경우가 있다"면서 "직접적인 ‘왕따’보다 더 위험한 만큼, 적절한 처벌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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