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쓰레기 [NGO 발언대]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2018. 10. 1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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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 사회를 넘어 전 지구가 풀어야 할 핵발전소에 관한 무겁고 영원한 숙제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쓰레기, 고준위핵폐기물 처리방안이다. 핵발전소 가동으로 생긴 방사능 쓰레기 ‘사용후핵연료’는 적어도 10만년 이상, 길면 100만년까지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의 계획대로라면 24개 핵발전소에서 약 750t의 사용후핵연료 우라늄 다발이 매년 발생할 것이다. 2020년 이후부터 월성 핵발전소를 시작으로 고리, 한빛, 한울 등에 보관된 사용후핵연료는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고준위핵폐기장 논의를 더 미룰 수 없는 시점이다.

정부는 1991년 충남 안면도, 1994년 인천 굴업도, 2003년 전북 부안 위도의 핵폐기장 유치를 시도했지만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특히 부안 핵폐기장 건설이 주민투표 끝에 무산되면서 3000억원의 특별지원금을 걸고 부지를 찾아 나섰다. 고준위핵폐기장은 나중으로 미루고 중저준위폐기장을 따로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경주로 결정되었지만, 안전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다. 경주 중저준위핵폐기장은 곡괭이에도 부서지는 5등급 암반에 하루 5000t의 지하수가 흘러나왔다. 지진의 위험도 있다. 주민 수용성으로만 결정된,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핵폐기장인 것이다. 중저준위핵폐기장도 이러한데, 최소 10만년의 반영구적인 고준위핵폐기장을 구할 수 있을까.

국정감사에서도 핵폐기물은 논란거리다. 비싼 비용, 부실한 관리, 그리고 입지 문제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건설비, 운영비, 연구개발비, 지하연구시설 등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비용’이 6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전 국토를 파헤친 4대강사업을 두 번 하는 것과 맞먹는 엄청난 비용이다. 최고 전문가들의 안전불감증은 도를 넘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서울연구로’ 해체 과정에서 나온 납 44t, 구리 6t, 철제·알루미늄·스테인리스 30t을 무단 반출, 매각했다. 대전원자력연구소는 방사능에 오염된 구리전선 5t을 고물상에 팔아넘겼다. 특히 고준위핵폐기장 입지에 관해서는 어떠한 해법도 없다.

지역의 핵발전소마다 설치된 고준위핵폐기물 저장시설은 거의 포화상태다. 정부는 급한 불은 꺼야 하니,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소를 늘리고 향후 공론화를 거쳐 고준위핵폐기장 영구 부지를 찾겠다고 한다.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우리는 뛰어난 기술과 안전한 부지가 있다는 거대한 착각에 빠진 것 아닌가. 화장실도 없이 마구 먹기만 한 핵발전 문명은 과연 도덕적인가. 우리의 후손들은 ‘이런 무책임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하지 않을까. 방사능은 국경이 없고 세대를 뛰어넘는다. 고준위핵폐기물은 최소 10만년의 시간 동안 영원하다. 만에 하나 재난이 발생한다면 재앙은 전 지구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공론화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 재검토’가 곧 시작될 것이다.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을 어디에 어떻게 만들지가 핵심이 아니다. 좀 더 급진적인 탈핵 공론화를 통해 탈핵의 시점을 최대한 당겨보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65년 뒤인 2082년 탈핵은 머나먼 이야기며 탈핵이라는 이름을 쓰기조차 민망하다. 핵폐기물 대책이 없다면 핵발전소를 중단하는 것이 답이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가 포화된 핵발전소는 폐쇄하자. 핵폐기물의 수도꼭지를 잠그고 총량을 줄이자. 핵발전소는 탄생과 죽음까지 생애 전체가 논란거리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명실상부한 탈핵 에너지전환을 선택하자.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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