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안 간다" 경로당 외면하는 요즘 노인들, 왜
"경로당 변화하지 않으면 소멸"
'개방형 경로당' 모델 주목
고씨보다 7살이 많은 이창석(78)씨도 기자와 만나 "서울에 거주하며 아내와 봉사활동은 다녀도 경로당에는 가지 않았다"며 "할 것도 없고 쓸모없는 사람처럼 TV만 봐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노인 복지시설인 경로당이 노년 세대에게 외면받고 있다. 한국 사회는 2017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를 돌파하며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하지만 경로당을 찾는 노인들의 발걸음은 뜸해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경로당의 운영 주체인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경로당 회원 수 현황을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회원 수가) 예전만큼 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노인 복지 전문가들은 한국 노년 세대들의 경로당 외면 현상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경로당은 6만 7342개(2017년 기준)의 국내 노인 여가시설 중 사실상 전부인 97.4%(6만 5650개)를 차지하고 있다. 노인복지관과 노인교실 비율이 2.6%에 불과해 경로당이 외면받으면 이를 대체할 노인 여가 시설이 마땅치 않다.
수년간 경로당을 연구해온 김춘남 경기복지재단 연구위원은 "7080세대는 물론 예비 노년 세대인 베이비 부머들은 아예 경로당에 갈 생각이 없다"며 "신(新) 노년 세대라 불리는 이들의 여가 욕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면 경로당이 소멸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경로당이 외면받는 이유는 노년 세대의 욕구와 필요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로당 활성화' 보고서를 발표한 대구경북연구원의 박은희 연구위원은 "노년 세대의 학력과 건강 수준이 높아지며 경로당이 기존 동네 사랑방 이상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2016년 대한노인회가 전국 경로당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로당 활성화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경로당을 다니는 노인들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전국 경로당 중 62.2%인 3만 9866개의 경로당 회원들은 경로당의 '여가 프로그램'에 대해 불만족스럽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경로당 문턱을 낮추는 '개방형 경로당'과 세대·지역별 특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경로당 혁신사업'을 경로당 활성화의 방안이라 말하고 있다. 기존 회원제 중심의 폐쇄적인 경로당을 전 세대가 어울릴 수 있는 가족 여가 시설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에서도 지난 3년간 '아침이 기다려지는 경로당' 사업을 통해 도내 19개 경로당에서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고양시 덕양구 우방 경로당은 노년세대(1세대)와 청소년 세대(3세대)가 함께하는 '농사 체험교실'과 '역사 탐방교실'을 진행해 성공적 모델이란 평가를 받았다. 송파구에서도 2015년부터 1·3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개방형 경로당 모델을 도입했고 현재 25개 경로당으로 확대 운영 중이다.
김춘남 연구위원은 "어느 나라도 우리와 같은 탄탄한 경로당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고 있어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한국 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노년 세대를 위해 경로당의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라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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