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생활 변화..수백년 전통 바뀌나

입력 2018. 10. 16. 07:00 수정 2018. 10. 1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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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침해 비판에 학습 '개인지도' 허용, 숙소서 자전거 타고 TV도 시청
관계자, "시대변화 맞춰 변화 당연하지만 전통 계속 확신"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수백년간 지속돼온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의 생활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쿠마리는 네팔에서 살아있는 여신으로 추앙받는 어린 소녀다. 보통 4-5세에 선발돼 살아있는 여신으로 추앙받다가 초경을 시작하면 후계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사원에서 쫓겨나 평생 비참한 삶을 사는게 일반적이다.

유엔은 2004년 아동 조혼과 함께 네팔의 쿠마리를 "여성차별"로 규정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내외 인권단체들도 쿠마리 제도가 "어린 소녀를 부모와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어린이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힘들었다.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었다"

카트만두에서 열린 지역축제에 등장한 쿠마리 [AFP=연합뉴스]

4살때부터 12살때까지 쿠마리로 살았던 라슈밀라 샤(38)가 15일자 아사히(朝日)신문에 힘겨웠던 쿠마리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부모에게서 떨어져 세계문화유산인 옛 왕궁광장에 있는 쿠마리관에서 살았다. 산스크리트어로 '소녀'와 '처녀'를 의미하는 쿠마리는 불교도 네팔인에게 샤캬( 迦)로 불리는 카스트에서 선발돼 왕국의 수호여신으로 다시 태어난 것으로 간주된다. 행운을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힌두교도에게서도 추앙받는다. 카트만두에 있는 로열 쿠마리를 비롯, 다른 고도(古都)에도 현지 쿠마리가 있다. 초경을 시작하면 신성(神性)이 다른 소녀에게로 옮겨간다고 여겨 점성술사와 승려가 차기 쿠마리를 선발한다.

"송아지 같은 속눈썹"과 "사자같은 가슴", "부드럽고 낭창낭창한 손과 발" 등 32가지 신체조건을 갖추고 공물로 바쳐진 물소 등 희생물의 잘린 목을 보고도 울지 말 것 등이 요구된다. 쿠마리가 되면 부정한 땅을 발로 밟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외출도 1년에 몇번 정해진 때만 할 수 있다.

라슈밀라는 쿠마리 시절 의례에 쫓겨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봉제인형"이 유일한 친구였다. 쿠마리에서 물러난 후 학교에 들어가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과 같이 책상에 앉았지만 "특히 영어를 전혀 알지 못해 창피했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한 끝에 대학을 졸업, 정보기술(IT) 엔지니어로 직업도 구했다.

"쿠마리 출신과 결혼한 남자는 1년 이내에 죽는다"는 미신이 있지만 라슈밀라는 3년전 중매결혼한 남편이 "살아있다"고 말했다. "힘들었지만 신과 소녀의 2가지를 체험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한다.

네팔은 2008년 쿠마리 제도와 관계가 깊은 왕정을 폐지, 연방공화제를 채택했다. 정권을 잡은 공산당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주의파는 한때 '봉건적 관습'이라며 쿠마리제도 폐지를 주장했다.

네팔 대법원은 2008년 여성변호사 등의 쿠마리제도 폐지 요청에 대해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에게도 어린이로서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면서 "이동의 자유와 가족과 만날 자유,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쿠마리제도 자체는 남았다.

왕정 폐지후 첫 쿠마리가 된 마티나 샤캬(13)는 3살 때부터 9년간 쿠마리로 살다가 작년 9월 은퇴했다.

쿠마리 시절 풍요를 뜻하는 빨간 색 의상을 입고 아침 의례를 마치면 오전에는 기도를 하고 오후에는 쿠마리관으로 선생이 찾아와 개인지도를 받았다.

또래 어린이가 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TV를 보거나 관내에서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휴대전화로 부모를 부른 적도 있다. 요즘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버지인 프라타프(52)씨는 "딸이 집을 나갔을 때 서운했지만 자랑스러웠다. 쿠마리관에서도 공부를 했기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학길에 만나는 사람들이 아직도 합장으로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족 대대로 쿠마리의 식사 등 일상생활을 돌봐온 고우탐 샤캬(52)씨는 "시대가 변한 만큼 쿠마리도 변하는게 당연하다"면서 "은퇴후의 생활도 고려하면서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인 만큼 이 전통은 계속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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