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도 원격진료 한창인데..한국은 의료법 막혀 19년째 헛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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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성장 막는 한국판 ‘적기 조례’①
미국ㆍ일본ㆍ중국 등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이처럼 원격 의료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남의 나라 얘기다. 2000년 강원도에서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시장조사 회사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세계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2015년 181억 달러에서 2021년 412억 달러(약 46조5000억원)로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IT 강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에서는 원격 진료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IBIS월드에 따르면 미국 원격의료 시장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45.1%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감염병 치료에도 활용하고 있다. 네브래스카메디컬센터는 지난 2014년 라이베리아에서 의료봉사 활동 중 에볼라에 감염된 의사 리처드 새크라를 치료하는 데 원격 진료를 이용했다. 화상 통화와 무선 송수신 기능을 갖춘 전자청진기 등을 통해 의료진과의 접촉을 최소화해 치료를 진행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1175개 지역에 5710개의 원격의료 시설이 구축돼 총인구의 21%가 혜택을 보고 있다.(OECD 2012년 기준)
휴대전화를 이용한 ‘포켓닥터’를 2년 전부터 도입한 일본은 지난 4월 원격의료 관련 규제를 대부분 없앴다. 과거에는 인구가 적어 의사 수가 부족한 지역에서 주로 원격 진료가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도심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도쿄의 번화가 롯폰기에 위치한 병원인 ‘신 롯폰기 클리닉’은 외부 시선 때문에 통원을 꺼리는 우울증 등 정신과 상담이나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금연치료 등에서 원격 의료의 이용 빈도가 높다.
특히 병원이 멀리 떨어져 있어 환자가 직접 가기 힘든 미국ㆍ중국과 달리 국내에선 대부분 지근 거리에 병ㆍ의원이 있다. 직접 의사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은데, 굳이 불완전 의료 가능성이 있는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게 이들의 또 다른 반대 이유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 의료접근성은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높다”며 “일단 원격의료를 허용해놓고 만성질환 관리로 대상을 넓히겠다는 의도라 수용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2014년에 의료계가 집단휴진을 한 이유도 원격의료 때문이었다”며 “만약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라고도 했다.
소아 중증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김민선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번거롭게 병원을 오갈 일 없이 집에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어 효용이 크다”이라며 “긴급 응급처치나 환자 이송 여부 등에 대한 판단도 수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 편의성을 높이고, 세계적인 의료ㆍIT 융합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격의료 이용률이 전체 인구의 20%로 확대될 경우 2조 원 이상의 신규 시장이 창출된다고 분석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원격의료로 데이터를 다루는 간호직, 통신을 담당하는 전산직, 원격 진찰에 필요한 의술 및 장비를 연구하는 연구직, 전반적 업무를 보조하는 행정직까지 다양한 직업이 탄생할 것이라고 봤다.
정부는 군부대ㆍ교정시설ㆍ원양어선ㆍ산간도서벽지 등에 한해 원격진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경우 의료 소외계층 120만명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오상윤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장은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취지”라며 “법 통과를 위해 국회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IT업계에서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안이라는 평가가 많다. 도심에 있는 일반인 환자 대상 원격의료는 여전히 금지하고 있는 탓에 원격진료를 해외처럼 산업적으로 키우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차기 경영학회장인 김용준 성균관대 경영대 교수는 “이미 중국은 스마트폰과 원격 진료를 결합해 금융ㆍ헬스케어ㆍ의료기기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다”며 “관련 규제를 풀고 투자를 끌어낸다면 국민 효용은 물론 의료산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 해외 진출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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