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들어야" 사립유치원 학부모들 '부글부글

문주영 노도현 기자 입력 2018. 10. 16. 16:52 수정 2018. 10. 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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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유치원 설립자 겸 원장이 교비로 고가의 가방과 성인용품 등을 사고 아파트 관리비와 노래방 비용으로까지 쓴 것으로 드러난 경기 화성시 동탄유치원 앞에 16일 통학 차량이 서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사립유치원 비리 공개의 후폭풍이 거세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이 갑질 사회에 분노를 일으킨 도화선이 됐던 것처럼, 이번 비리 공개를 시발점으로 그동안 당국과 사립유치원 간 ‘짬자미’ 식으로 유야무야됐던 유치원 비리에 학부모들 분노가 봇물 터지듯 터져나오고 있다.

비리 유치원의 대명사가 된 ‘환희유치원’이 있는 경기도 동탄지역 학부모들은 지난 14일 오픈카톡방을 개설해 교육청과 지자체를 성토했다. 16일까지 700여명이 참여한 카톡방에서 학부모들은 비리 유치원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온 당국이 근본적인 문제라며, 집회·시위와 항의전화·방문 등의 계획을 논의했다. “최순실도 유치원 부원장 출신” “하는 짓들이 최순실 축소형” “촛불로 나라를 바꾸었듯이 이번엔 부모들이 나서야 한다” “전국적인 움직임으로 가야한다”는 논의들이 오갔다.

동탄 학부모들은 이날부터 모임을 갖고 당국에 비리근절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사립유치원 입학설명회들을 당국 대책이 발표될 때까지 미뤄야 한다는 주장,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비리 유치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전체 유치원 감사결과 공개 요구, 급식시스템 학부모 감시 등 온갖 제안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노에 더욱 기름을 부은 것은 사립유치원들의 연합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움직임이었다. 지난해 회계감사 등에 반발하면서 ‘집단휴업’에 나서겠다고 해 반발을 산 한유총은 “사립유치원 전체를 비리집단으로 매도하지 말라”며 이날 기자회견과 집회를 한다고 밝혔다. 공분을 산 환희유치원 원장이 지난해 한유총 집회에서 “교육당국은 사립유치원에 간섭하지 말라”고 발언했던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성난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맞대응 집회를 하자는 의견이 모였다. 비판 여론에 부담을 느낀 한유총은 집회를 취소했다가, 오후에 기자회견을 열고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정부에 잘못이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학부모들이 공통되게 토로하는 것은 명단이 공개된 사립유치원들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박용진 의원의 말처럼 비리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원장이 고가의 가방을 사고 7억원을 횡령한 환희유치원은 상징적인 예일 뿐이라는 것이다. 전국 시·도교육청이 비리나 회계문제 제보·민원이 많은 유치원들을 대상으로 특정감사 등을 벌인 결과를 보면 대전의 한 유치원은 설립자 휴대전화 요금을 유치원 돈으로 994만원 납부했다. 또다른 유치원은 설립자의 해외항공료 268만원을 교비로 지급했다. 채용 서류에도 없는 운전기사에게 월급을 준 곳, 교회 장로와 목사에게 유치원비로 명절 선물 250여만원어치를 사서 준 곳도 있었다. 부산의 한 유치원은 원장에게 조리사 수당 1858만원을 줬고, 같은 지역의 또 다른 유치원에선 원장이 ‘스승의 날 보너스’ 등으로 1350만원을 챙겼다.

정부는 무상교육인 누리과정이 시행되면서 어린이 1명당 누리과정비 22만원, 방과후과정 지원비 7만원 등 29만원씩을 지원한다. 또 교사처우개선비, 급식비, 학급운영비 등을 별도로 지원한다. 올해에만 1조8000억원의 세금이 사립유치원에 투입됐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가 원장 개인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감사 내용은 의원의 자료제출 요구가 있기 전까지 공개되지도 않았다. 학부모들은 원장이 어떤 식으로 돈을 쓰고 회계처리를 하든 알 길이 없었다.

경기도교육청 감사관 ㄱ씨는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국가에서 지원받는 돈이든, 학부모들이 낸 돈이든 모두 ‘내 돈’이라고 생각한다”며 “심지어 특수목적사업비인 급식지원금과 방과후과정 지원금은 별도 계좌를 통해 관리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유치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들이 유치원 알리미사이트에 공개된 원비가 자신이 직접 낸 원비보다 적다며 연락이 오는데 이런 곳들은 다 문제가 있다고 보면된다”고 덧붙였다.

사립유치원들의 비리가 계속되는 것은 돈이 들고 나는 과정을 기록하는 ‘공식적인’ 회계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유치원은 수기로 장부에 기록하고, 어떤 유치원은 민간 회계시스템을 이용한다. 국공립 유치원과 사립 초·중·고교가 국가에서 개발한 ‘에듀파인’이라는 회계시스템을 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간 사립유치원들은 “소규모 유치원에 에듀파인은 안맞는다”며 반대해왔다. 그렇다 보니 감사도 힘들다. 국가회계시스템의 경우 각 지자체나 교육청이 프로그램 상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지만 사립유치원들은 문제를 확인할 ‘길목’이 없는 것이다.

국고 지원만 할뿐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정부에도 문제가 있다. 전국의 유치원은 총 9029곳으로 국공립과 사립이 절반 정도지만 원아 수 기준(2017년)으로 보면 사립유치원생이 75.2%로 국공립의 3배에 이른다. 국고지원이 유치원 교육의 내실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변호사)은 “개인영리사업자들에게 유아교육이 맡겨져 있고, 그들을 관리감독할 공적인 체계가 없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며 “아이들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돈을 받았다면 유치원들은 이같은 목적에 맞게 (교비를) 써야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회계 기준을 제대로 도입해야 하는 것은 물론 각 시도교육청에서도 정기감사를 통해 제대로 된 관리감독 기능을 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주영 노도현 기자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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