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와 기독교 만나는 곳 가짜뉴스 공장이 있었다

2018. 10. 1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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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한겨레21>·<한겨레> 가짜뉴스 공동 기획…
5개 가짜뉴스 전파 경로 그리면서 취재 날개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소속 회원들이 10월8일 낮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가짜뉴스의 발원지는 에스더기도운동”이라는 <한겨레>와 <한겨레21> 공동기획 보도를 반박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어떤 현상은 사건이다.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입국하자 한국 사회엔 기다렸다는 듯 ‘혐오’가 창궐했다. 한 번도 난민 문제를 ‘우리 안의 문제’로 인식해보지 못했던 입장에서 뜻밖이었다. 어떤 이들은 왜 분노하는 것인가, 무슨 공포로 공동체의 밑동이 흔들리는 것인가. 그 전쟁을 주도한 건 ‘가짜뉴스’였다. 스웨덴 성범죄의 92%를 난민이 저지른다고도 했고, 이슬람이 늘어나면 무슬림 자치 경찰이 운영된다고도 했다. 이 글을 포함해 마감 지옥(!)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한 호기심의 출발이었다.

“선배, 가짜뉴스 하신다면서요?”

시작은 지지부진했다. 그래서 어떻게 찾을 것이냐는 질문에 다시 ‘가짜뉴스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방황했다. ‘해묵은 잡귀와 같은 내 오지랖’을 수도 없이 원망했다. 대부분의 가짜뉴스가 출처는 불분명하고 전파 경로는 복잡하다. 단선적 추적이 아예 불가능한 구조다. 그래서 어떤 가짜뉴스를 볼 수 있지만,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회로 안에 들어서지 못하고 입구인지 출구인지 모를 지점에서 계속 맴돌기만 했다.

“선배, 가짜뉴스 하신다면서요?” <한겨레21> 변지민 기자가 그 시절 <개그콘서트> ‘생활의 발견’처럼 물었다. 삼겹살 시킬까 목살 시킬까 고민하는데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는 애인처럼. 뭔가 툭 꺾이는, 아니 풀릴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왔다. “제가 뭘 해놓은 게 있는데 한번 보실래요?” <한겨레21>에 함께 있던 시절 나는 그를 ‘과학자’라고 불렀다.

과학기술이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다고 했던가. 아니면 필요한 자가 구한다고 했던가. 몇 개의 취재 가설을 세우고 추적을 반복해도 뚜렷하게 잡히지 않던 어떤 형체가 변지민 기자가 뽑아놓은 A3용지에 이미 시각화돼 있었다. 연결망 분석 방식으로 최근 횡행한 가짜뉴스 5개의 전파 경로가 그려져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가짜뉴스의 뿌리가 드러나 있진 않았다. 하지만 보자마자 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매우 적절한 기법으로. 참고로 <한겨레21> 시절 변지민 기자와 함께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때 ‘청와대·국정원·새누리당·경찰 4각 통화 커넥션’(제1188호 표지이야기 참조)을 밝힌 바 있다. 당시 변 기자는 서류 뭉치 속에 숫자로 존재하던 엑셀 파일을 풀어 연결망으로 재구성했다. 흩어져 있던 권력기관의 책임자들이 한곳에 모여드는 통화 동선을 밝히는 ‘쾌거’(!)였다. 그러고는 피곤했는지 지쳤는지, 아니면 그냥 정말 궁금했는지 그때도 생활의 발견 풍으로 물었다. “선배, 근데 국정원 직원도 공무원이에요?” 각설하고, <한겨레>와 <한겨레21>의 합작<한겨레21> 제1231호 ‘보수 유튜버의 가짜뉴스는 어떻게 돈이 되는가’, <한겨레> 신문 기획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겨레> 탐사팀은 가짜뉴스의 생산자를 추적하고 있었고, <한겨레21>은 가짜뉴스의 전파도를 그리고 있었다.

딱 봐도 가짜뉴스, 입증엔 며칠 걸려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나서며 가설을 세웠다. 개인들의 자발적 생산도 있겠지만, 정치 이슈의 흐름을 타며 가짜뉴스를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공장’이 있을 것이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우선, 가짜뉴스의 ‘적절성’이다. 가짜뉴스는 아주 적절한 시점에 맞춤한 자극으로 찾아온다. 준비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파급력’이다. 가짜뉴스는 우연히 어딘가에 올려 있던 것이 저절로 유포되는 것이 아니다. 특정 거점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전달된다. 많은 가짜뉴스가 ‘긴급공지’ ‘충격고백’ ‘몰랐던 진실’ 따위의 말머리를 달고 전달된다.

뿌리를 바로 캘 수 없으니 우회로를 뚫기로 했다. 어딘가 뿌리가 박혀 있으리라 생각하고 잎사귀와 줄기를 훑었다. 당면한 문제는 어떤 가짜뉴스를 어떻게 선정하느냐였다. 애초 문제의식으로 돌아갔다. 소수자 혐오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한국 사회의 극우세력은 언젠가부터 전통적인 반공과 종북의 전선만큼이나 소수자 혐오 전선을 형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성소수자, 여성, 난민이 차별과 배제의 대상으로 지목돼 공격받았다. 극우세력은 차별금지법과 인권조례를 열렬히 반대하고, 페미니즘을 거세게 공격하며 난민을 맹렬하게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 무기가 바로 가짜뉴스였다. 가짜뉴스는 적대와 혐오를 겨냥하는 일종의 분노증폭장치다.

소수자 문제를 중심으로 가짜뉴스 22개를 선정했다. 검증 과정은 복잡하고 지난했다. 딱 봐도 가짜뉴스였지만, 그 ‘딱’을 입증하는 데 길게는 며칠씩 걸렸다. 독일 정치가 요제프 괴벨스가 그랬다던가,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선동을 입증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고, 입증했을 때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고. 딱 그 꼴이었다. 하지만 기사의 바탕이 되는 소득이 있었다. 22개의 가짜뉴스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방식이 파악됐다.

수간 합법화한 판결로 둔갑

당연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만 가짜뉴스에는 ‘사실’이 포함돼 있다. 가짜뉴스 내용 중 상당수는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어떤 가짜뉴스는 사실 함량이 90%에 이르기도 한다. 가짜뉴스 생산자가 근거로 제시한 외신 보도를 읽고 또 읽어도 왜 가짜뉴스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어만 쓰는데도 ‘아’ 다르고 ‘어’ 달라 헛갈리는데 외신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당연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믿으니까. 가짜뉴스의 특징은 그럴듯함, 개연성이다. 다매체 시대 사람들은 ‘사실의 시대’가 아닌 ‘믿음의 시대’를 산다. 정보는 너무 많고 나의 경험칙 안에서 판단해가는 것이 편하다. 가짜뉴스는 일부 사실로 사람들을 호도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정치적 목적이 있다. 특정한 의도로 특정한 주장을 한다. 선전이다. 가짜뉴스의 사실은 의도에 복무하고, 인과관계는 선전 목적에 맞춰 정렬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동성애 합법화하면 수간(짐승을 상대로 하는 변태적 성행위)도 합법화된다’는 가짜뉴스가 있다. 동성애가 합법화할 경우 성적으로 더 자유로워져 수간도 합법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개연성을 강조한다. 근거로는 외신 기사와 <국민일보> 기사가 자주 인용된다. 인용되는 외신은 캐나다 사례인데 ‘(성기 삽입이 없는) 단순 성적 학대는 수간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에 대한 논란을 다룬다. 수간 합법화 얘긴 어디에도 없고 ‘수간’이란 말이 나올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수간을 합법화한 판결로 둔갑해 전파된다.

에스더기도운동, 가짜뉴스 발원지

진수일 명성교회 목사가 10월8일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연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집회에서 <한겨레>와 <한겨레21>의 가짜뉴스 탐사기획보도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동성애 커플 주례 거부 목사가 징역형’ 가짜뉴스도 널리 퍼졌다. 미국의 사례다. 법적 다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무혐의 처리됐다. 애초부터 종교 시설은 법리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그 목사의 경우 영리를 목적으로 1년에 결혼식을 1400건 하는 곳을 운영했는데 이를 종교적 서비스로 볼지 영리적 서비스로 볼지가 법적 다툼의 주요 쟁점이었을 뿐이다.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이들은 이 사실을 감추고 처벌될 경우를 상정해 최대치의 형량으로 공포를 자극한다.

‘3단 연결망 분석’이라고 이름 붙인 ‘가짜뉴스 생산-유포-전달자’ 그림이 완성되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 자체로 한국 사회 혐오 지형도였다. 거기서 하나의 집단이 떠올랐다. ‘에스더기도운동’이었다. 연결망 분석 이전부터 추적하고 있었던 가짜뉴스의 발원지, 공장의 실제 출현을 보았다.

에스더는 일찍부터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처벌하는 것이 기독교 내부에 어떤 정치적 효능감을 줄 수 있을지를 간파한 조직이었다. 2007년 결성 이후 바로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동성애 반대, 학생인권조례 반대 등의 정치 활동을 ‘필드 사역’이라고 불렀다. 인터넷 여론 조작을 ‘영적 전쟁’을 치르는 심정으로 해온 단체다. 이 과정에는 당연히 정치와 연결된 것이 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를 옹호하고 문재인을 비방하는 가짜뉴스를 뿌리고는 박근혜 대선캠프 외곽 조직 대표에게 1년 운영비를 요청하기도 했다. 박근혜 당선 이후에는 국정원 간부에게 ‘우파 청년을 양성하겠다’며 43억원의 후원 필요성이 담긴 사업기획안을 보냈다. 사업기획안을 보면 이들은 미국의 헤리티지재단 같은 보수 싱크탱크로 거듭날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한겨레>와 <한겨레21> 보도 이후 가짜뉴스 전파가 상당히 둔화된 느낌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의 말처럼 ‘가짜뉴스의 진원지를 심층 취재하자, 가짜뉴스의 유포와 확산이 위축’된 모습이다. 저널리즘의 패러다임(체계)이 완전히 바뀐 현실에서 무분별하고 확정적으로 유포되는 가짜뉴스에 강력히 대처하는 일이 필요할지 모른다. 과거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거나, 한정 수량의 인쇄물 안에서만 존재하던 유언비어와 지금의 가짜뉴스는 차원이 다르다.

‘진짜뉴스’ 언론들 연대하자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은 이후, 일부 기독교 단체로부터 직접적 비난을 받고 있다. 답답한 건 다른 언론의 태도다. 가짜뉴스가 좀먹는 건, 사회적 신뢰다.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하는 ‘진짜뉴스’ 집단의 토양이자 생존 방식이 훼손된다. 언론 공통의 문제란 뜻이다. 우리의 보도 이후 진짜뉴스를 생산하는 집단들의 반응은 아직 가짜뉴스를 전하는 이들에 비해 무디고 더디다.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 언론의 연대가 필요한 때다. 쓰다보니 의도대로 ‘셀프 쓰담’(자기 위안)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마당에 한 문장만 더 써보겠다. 더는 언론사 안에서도 저널리즘을 말하는 게 겸연쩍은 시대, 이번 보도로 정말 뭔가 뭉클한 용기를 얻게 됐다.

가짜뉴스를 다룬 <한겨레>와 <한겨레21> 탐사기획 기사를 관람했던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경향신문>에 쓴 칼럼(페미니즘과 포퓰리즘이 만날 때)엔 이런 문장이 있다. “극우와 기독교가 만나는 곳에 ‘가짜뉴스 공장’이 있었다.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대한민국 언론사에 남을 만한 문장이다.”

글 김완 <한겨레> 기자 funnybone@hani.co.kr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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