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지오캐싱, 보물찾기 탐험을 떠나다

2018. 10. 1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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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탐험
지피에스 활용 보물찾기, 지오캐싱
2000년 시작..현재 전 세계 200만개 있어
기자해보니 "초급자는 쉽지 않지만 신나"
마니아 허민 "숨겨진 풍경 발견하는 기회"

[한겨레]

캐시를 찾아 이름과 날짜 등을 기록하고 있는 지오캐싱 참가자. 그라운드스픽(Groudspeak Inc.) 제공

어렸을 때 운동회에서 보물찾기를 할 때면 상상하곤 했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서처럼 어떤 의미가 있는 데다 반짝이기까지 하는 진짜 보물을 찾는 탐험을 떠나러 갈 것이라고. 그 꿈을 이제라도 실현해 볼 재미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지오캐싱’(Geocaching) 이다. 도심이나 외진 곳에 숨겨진 ‘캐시’(cache)를 찾거나 숨기는 탐험을 떠나봤다.

2000년 5월2일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지피에스(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정보의 선별적 접근을 없앴다. 지피에스는 위성에서 보내는 신호를 수신해 위치를 계산하는 시스템인데, 그 사용을 군사적 용도로만 제한하다가 일반인도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바로 다음날 세계 최초의 ‘지오캐시’가 등장한다. 한 미국인이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인근의 숲 속에 ‘캐시’(숨겨놓은 물건)를 설치했다. 그는 위성이 파악한 좌표를 친구들에게 알려줬다. 그 정보를 보고 몇몇은 첫 지오캐싱에 나섰다. 지피에스 정보를 이용한 보물찾기, 지오캐싱의 시작이다. 18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에는 200만개가 넘는 캐시가 숨겨져 있다. 서울에도 2천개가 넘는 캐시가 있다. 캐시는 기본적으로 로그페이퍼(찾은 날짜와 사용자의 이름 등을 적는 종이)가 포함돼 있다. 여기에 작은 장난감이나,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이 들어있을 수 있다. 두근두근 탐험의 시작이다.

지오캐싱 앱 화면. 그라운드스픽(Groudspeak Inc.) 제공

“여기에 있을 것 같은데...” 자꾸 혼잣말을 하게 된다. 지난 10일 서울 한강공원 이촌지구로 가 지오캐싱에 도전해봤다. 한강공원을 거닐며 보물찾기 탐험을 하다니! 시작하기 전, 낭만적인 감상에 빠져봤다. 한강을 바라보며 속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캐시를 찾는 탐험을 시작했다. 숨겨진 캐시의 정보는 스마트폰이 있다면 ‘지오캐싱 앱’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용자로 등록하고, 앱을 켜면 지도 위에 주변에 캐시가 어디 즈음 있는지 알려준다. 그러나 이 정보는 오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캐시가 숨겨진 곳으로부터 10m 근방부터 캐시가 있다는 정보가 뜨기 때문이다.

이촌지구의 한 캐시를 향해 걷는다. 사람이 많은 곳을 살짝 벗어난 곳에 한강을 따라 난 길을 조금 걸었더니, 캐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캐시를 찾는다. 지도가 펼쳐진 앱 화면의 아래를 끌어올리면 캐시와 관련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난이도는 ‘1.5’(5가 가장 어려움), 지형 등급 역시 ‘1.5’(5가 가장 험난함)였다. 쉽게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렸을 적 보물찾기의 아픈 추억이 동시에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면 꼭 하던 보물찾기. 다른 사람들은 어찌나 잘 찾는지. 단 한 번도 보물찾기로 상품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운명의 소유자였다.

풀과 나무가 우거진 곳. 길옆의 돌을 들춰보고, 풀숲도 헤쳐 본다. 다만 땅을 팔 필요는 없다. 지오캐싱의 원칙 중 하나는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캐시를 땅을 파헤쳐 숨기면 안 된다. 그럼에도 땅이라도 파볼까 하는 심정이 들 즈음 반투명의 물체가 나무 옆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과연 캐시일까. 당연히 캐시가 아니었다. 플라스틱 음료수병. 그렇다 쓰레기였다. 20분을 찾았지만 실패다. 지쳐갈 즈음, 다시 캐시 정보를 확인해 본다. 아까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정보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크기 마이크로(Micro)’. 이 크기는 캐시가 들어 있는 보관함인 ‘컨테이너’의 크기를 뜻한다. 마이크로 크기의 컨테이너는 손가락 정도의 작은 크기다. 눈을 좀 더 가늘게 뜨고 다시 살펴봤다. 그렇게 다시 30분. 캐시를 찾기 위해 1시간을 보냈다. 일단 이촌지구의 캐시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캐시가 세계에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조금 답답한 마음을 안고 8년 동안 지오캐싱을 했다는 허민씨에게 그 노하우에 관해 물었다. 그는 ‘지오캐싱 코리아’라는 누리집도 개설해 운영 중이다. “처음에 할 때는 난이도나 지형 등급은 1, 크기는 소형 이상인 것을 찾아보길 권한다. 마이크로 크기는 손가락 크기 정도뿐이라 입문자들이 찾기는 대단히 어려울 수 있다.”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슬슬 몸을 푸는 기분으로 조금 큰 크기의 캐시를 찾아 나서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캐시를 담는 다양한 컨테이너들. 그라운드스픽(Groudspeak Inc.) 제공

허민씨는 지오캐싱을 하면 자연스럽게 운동 삼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해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오캐싱에 빠져들어, 누리집뿐만 아니라 개인 블로그에도 다양한 지오캐싱 정보를 올려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찾아볼 수 있게 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외국에 여행을 가면 여행 책자를 가져가는데, 지오캐싱을 하는 사람은 캐시 정보를 찾아 갖고 간다. 그런 지오캐싱을 찾다 보면 ‘현지인만 아는 숨은 보석’을 보고,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지만, 의외의 풍경이나 의미를 갖고 있는 장소를 지오캐싱을 하면서 찾게 된다. 일반 여행 책자에서는 볼 수 없는 정보들이고, 그게 참 재미있다”고 말한다. 허민씨가 소개하는 지오캐싱의 재미있는 점 또 한 가지는 ‘캐시를 숨기는 재미’다. 창의력 넘치는 컨테이너를 만들어 꽁꽁 숨기는 재미 말이다. 컨테이너는 돌 모양일 수도 있고, 나뭇조각 모양이나 육각형의 볼트 모양일 수도 있다.

지오캐싱의 장점은 도심에서도 잠시라도 짬을 내 탐험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지오캐싱 앱을 다시 켜 살펴본다. 마침 ‘마이크로’보다 큰 크기의 컨테이너가 회사 가까운 곳에 숨겨져 있다는 정보를 확인한다. 기필코 이번에는 캐시를 찾아 로그페이퍼에 이름을 남기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평범한 회사원 차림이지만, 마음만은 <인디애나 존스> 속 주인공 못지않다. 그 두근거리는 마음이 지오캐싱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우리가 모두 아주 오래 잊고 있었던 그 마음 말이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탐험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곳에 가 살펴보고 조사하는 행위. 산악, 극지, 사막, 정글 등을 탐험하는 탐험가들은 스스로 ‘살아남은 사람’이라 일컫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지난 13일(현지시각)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탐험대 5명이 히말라야 다울라기리산 구르자히말 원정 중 눈 폭풍에 목숨을 잃었다.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활동이지만, 최근에는 <정글의 법칙>, <거기가 어딘데?> 등의 예능을 통해 ‘탐험’과 일반인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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