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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제는 왜 직접 고구려 원정에 나섰나?

임기환 입력 2018. 10. 1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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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명장면-56] 604년 수양제는 아버지 문제(文帝)가 사망하자 황태자로서 황제위에 올랐다. 그런데 양제의 즉위에 불만을 품은 막내 동생 한왕 양량(楊諒)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무사히 진압했지만 이를 계기로 수양제에게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아직 자신의 황제 권력이 의외로 불안정한 상태임을 실감했던 것이다.

아버지 문제가 정권을 잡아 북주(北周) 왕실을 폐하고 수(隋) 왕조를 세우는 과정에서, 문제를 지지하였던 수도 장안(長安)과 관중(關中) 일대의 거족세력의 동향도 그 이유의 하나였다. 사실 양제는 아직 이들의 충성심을 믿기 어려웠다. 양제는 재위 13년 동안 장안에 머문 기간이 1년여 밖에 되지 않는다.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때문이지만, 사실 낙양 천도 자체가 그리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낙양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북방 순행, 서역 정벌, 강도(江都 :지금의 강소성 揚州)로 순행, 요동 정벌길 등 많은 대신과 장군, 군사를 대동한 채 전국과 천하를 돌아다녔다. 마지막에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진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장안이나 낙양 대신 강도(江都)행을 택하였다. 그만큼 양제는 장안과 관중 지역을 기피하였다.

그리고 병주총관으로서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던 동생 양량의 반란에서 보듯이, 이들 군사 귀족세력과 그들이 거느린 군사력은 언제든지 양제에 반기를 들 수 있는 불안 요소였다. 그래서 무엇보다 군권의 확립이 우선 과제라고 판단한 수양제는 곧바로 군사개혁에 착수하고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였다.

605년에 지방 군사력을 갖고 있는 총관부(總管府)를 폐지하고 총관의 지휘를 받던 군부를 중앙군으로 흡수하여 군사권을 단일화하였다. 그리고 중앙군 규모를 대폭 늘리고 황제가 병부를 거치지 않고 각 부대의 대장군을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지휘권을 강화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고, 이런 제도 개혁 결과 실제로 양제가 중앙에서 전국에 대한 군사 통수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보장도 확실하지 않았다.

양제는 군제 개혁을 통해 구현된 황제의 군사지휘권을 대규모 군대 동원과 친정(親征)이라는 방식으로 재확인하고 실행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607년에 50만 대군을 거느리고 북방 돌궐에 대한 순행이었다. 그리고 2년 뒤인 609년에는 토욕혼(土谷渾)에 대한 정벌에도 직접 나섰다.

이 두 차례의 순행과 정벌에서 양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첫째, 대규모 군사를 동원하고 친정(親征)하면서 직접 지휘권을 행사하여 수많은 신료들과 장군, 군사들 앞에서 황제의 권위를 높이고, 군사통수권자로서의 위상을 실제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양제를 정점으로 하는 압도적 군사력을 과시하는 대규모 무력시위를 통해 주변 세력을 굴복시켜 '일통천하(一統天下)'를 완성한 황제의 권위를 만방에 과시할 수 있었다.

실제로 607년 양제가 돌궐을 순행한 기록을 보면 "깃발과 치중 행렬이 천리에 끊이지 않았고…호인(胡人)들이 양제를 신(神)으로 여겨서 모두가 황제의 어영(御營)을 바라보고 10리 밖에서 무릎을 끓고 이마를 찧었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토욕혼을 정벌할 때에도 당시 토욕혼 가한 복윤(伏允)의 군대를 깨뜨리고, 대규모 군사를 동원하여 장액(張掖)까지 무력시위를 벌이면서 서역 여러 나라에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였다.

이 서역 정벌 후 양제는 장액에 반년을 머무는데 주위 27개국의 수장들을 소집하여 조공을 받고 양제 자신의 통솔권을 확인받았다. 중국 황제 중에서 최초로 서역 변경을 친정(親征)하였고, 이를 통해 실크로드의 교역권을 장악했다는 점에서 그의 공적이 결코 적지 않다. 왜냐하면 이후 서역과 장안, 낙양을 잇는 국제 교역이 재현되고, 양제 때 건설한 대운하를 통해 낙양에서 장강 하류의 항주로 이어지는 교역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북방 순행과 서역 정벌을 통해 북방과 서방을 안정시킨 양제에게 이제 남은 곳은 동방뿐이었다. 양제는 두차례 대외 순행을 통하여 대규모 군사 동원을 갖는 국내 정치적 효과 및 대외적으로 대규모 무력시위가 갖는 효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마지막 동방 원정 때 가장 극적인 대규모 군사동원과 무력시위를 스스로 기획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수의 운하 지도

즉위 초부터 대규모 대외 원정을 추진하였던 양제는 이에 따른 물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문제 때 만들다 중단한 각종 운하 개착 사업을 가속화하고 기존의 수로를 정비하였다. 그래서 605년에는 황하와 회수(淮水)와 양자강을 잇는 길이 1500㎞, 폭 60m의 대운하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운하를 통해 운송된 곡물을 정장하기 위해 606년에는 낙양 일대에 대규모 곡창을 짓고, 양곡을 집적하였다.

토욕혼에 대한 정벌을 끝난 후 양제는 608년에는 낙양, 즉 황하와 탁군(지금의 북경 일대)을 연결하는 영제거(永濟渠)를 착공하여 609년에 완성하였다. 탁군은 고구려 원정의 전선사령부가 두어질 곳이었으니, 이 영제거 대운하는 바로 고구려 원정을 위한 목적으로 건설할 것이었다. 이어서 610년에는 강도(江都)와 회계(會稽 : 지금의 강소성 蘇州)를 연결하는 강남운하를 정비하여 중국대륙 남북을 잇는 대운하를 완성하였다.

양제는 610년 12월 고구려 원정을 위한 예비 명령을 내렸다. 611년 2월이 되자 양제 자신도 남쪽 순수를 위해 머물렀던 강도(江都)를 떠나 용주(龍舟)를 타고 영제거를 통해 탁군으로 이동했다. 양제가 탁군의 임삭궁(臨朔宮)에 도착한 것은 4월. 탁군에서 다시 고구려 원정의 조서를 내려 전국의 병사를 원근 불문하고 모두 징발하여 탁군에 모이도록 명령했다.

용선. 수양제가 타던 용선(龍船)의 모습이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이와 별도로 4월에 유주총관 원홍사(元弘嗣)를 보내 동래항에서 300척의 전선(戰船)을 급조토록 했고, 또 양자강과 회수 이남에서 수군 병력 7만명을 동원하였다. 5월에는 하남, 회남, 강남 지역에서 전차(戰車) 5만 대를 만들어 군수물자를 싣고 오도록 했고, 7월에는 다시 양자강과 회수 남쪽의 백성과 배를 동원하여 군량미를 탁군으로 운송토록 했다.

이렇게 갓 완성된 대운하 등을 통해 수양제는 중국 사상 처음으로 통일제국의 모든 생산력과 군사력을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한 전진기지에 집결시키도록 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인적, 물적 대동원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612년 1월까지 탁군에 113만3800명이 집결했다.

양제는 고구려 원정에 나서기 8개월 전부터 원정을 위한 베이스캠프인 탁군에 도착하여 직접 전쟁 준비를 감독하였다. 양제는 자신의 한마디 명령에 천하의 병력과 물자가 탁군으로 속속 모이는 것을 보면서 중국 천하가 양제 자신의 발아래에 굴복하고 있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여기에 양제는 탁군에서 또 다른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서돌궐의 살나(薩那)가한과 고창(高昌)국 국왕 등 주변 강국의 통치자를 불러모은 것이다. 백만대군의 위용을 자랑하며 황제로서 자신의 권위와 위엄을 주변국과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수양제의 위세에 탁군까지 불려온 이들은, 집결된 100만 대군의 군세를 보고, 이 대군의 원정 대상이 자신의 나라가 아님을 천만다행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제 모든 준비는 갖추어졌다. 남은 것은 고구려 평양으로 대군을 이끌고 진군하는 일뿐이었다. 양제 스스로가 고구려를 수나라의 1개 군(郡)도 안 되는 인구에 불과한 작은 나라라고 가벼이 생각했다. 그런 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왜 113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했을까? 양제의 목표는 정벌 그 자체가 아니었다.

거대한 규모의 군사력 앞에 고구려 영양왕은 감히 항거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죄를 빌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조백관과 주변 제국의 국왕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고구려왕이 항복하는 장면, 그리고 평양성에서 어느 황제도 이루지 못한 천하를 통일한 파티를 여는 장면, 바로 그것이 양제가 바라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전무후무한 거대한 군대 앞에서도 고구려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수양제, 아니 수왕조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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