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사제 없어 교황 평양직행 어려워..서울 경유 현실적

2018. 10. 1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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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북 절차적 문제들

방북 위해 평양교구장 초청 필요한데
북 사제 없어 염수정 추기경이 서리역
조기 방북 위해 특단조처·우회로 필요

[한겨레]

“반갑습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강명철 위원장이 인사했다.

“피스!”(Peace·평화)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한 얼굴로 답했다.

지난 6월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70돌 기념행사 계기에 교황과 북쪽 기독교계 인사가 남쪽 교계 대표의 주선으로 만났다. 2013년 3월 교황으로 선출된 이래,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쪽 사람을 처음 만난 순간이다.

교황이 평양을 방문해 2500만 북쪽 인민과 만나는 상상은, 이제 더는 몽상이 아니라 ‘머잖아 다가올 현실’이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식)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할 것이고, 나는 갈 수 있습니다”라고 밝혀, 교황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언제 방북할지가 세계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다만 교황의 강한 의지가 확인됐음에도, 공식 방북이 현실화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교회법에 따르면, 교황의 특정국 방문에는 해당국 정부와 천주교회(방문 도시 교구장)의 공식 초청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교황이 방문하면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과 방문 도시 교구장이 교황을 맞이한다. 전통으로 굳어진 불문율이다. 교황청(바티칸시국)이 인정하는 평양교구장(서리)은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 추기경의 공식 초청이 있어야 형식 요건이 충족된다. 더구나 지금으로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면 염 추기경이 맞이해야 하는 셈이다.

이는 북한 당국과 교황청 모두에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자주’와 ‘주권’을 중시하는 북쪽이 ‘조선카톨릭교’를 대표해 염 추기경이 교황을 맞이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올해 세차례 정상회담으로 높아진 남북의 신뢰관계를 고려하더라도 쉽지 않으리라는 게 교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교황청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북한엔 당국에 등록된 천주교 신자가 3천여명이지만, 사제(신부)는 단 한명도 없다. 주권국으로서 바티칸의 외교 기조는 “복음의 전파”, 그리고 “세계 평화와 인권 수호”다. 한국을 포함해 183개 나라와 수교한 교황청이 북한은 물론 사회주의를 표방한 중국, 베트남과 미수교 상태인 데에는 이런 외교 기조가 작용하고 있다.

800만명의 신자가 있는 중국은 주교 임명을 둘러싼 오랜 갈등을 양쪽의 ‘주교 임명 관련 예비 합의안 서명’(9월22일)으로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중국 주교 2명이 16일 바티칸을 찾아가 교황의 방중 초청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교황의 방중이 머지않았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중국은 1951년 단교 이래 바티칸과 수교하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은 신자가 600만명으로 동남아에서 필리핀 다음으로 많고,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도 있다. 그럼에도 교황은 베트남을 방문하지 않았고, 베트남 정부의 오랜 노력에도 아직 수교에 이르지 못했다.

북한의 천주교 현실은 중국·베트남에 비해서도 턱없이 열악하다. 더구나 대표권을 한국 가톨릭이 행사하는 ‘외교적 난점’도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평화의 순례자”를 자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도 단기간 안에 공식 방북을 실행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한국 가톨릭 고위 인사는 “교황의 평양 방문에는 한반도 평화 진작과 함께 사목 목적이 병행돼야 한다는 게 바티칸 국무원의 분명한 방침”이라며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짚었다.

이런 사정 탓에 조기 방북을 현실화하려면, 교황이 특단의 결단을 하거나 우회로가 필요할 수 있다. 교계 고위 인사는 “교황의 평양 방문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조기에 성사시킬 가장 현실적인 길은 교황께서 이른 시일 안에 한국을 방문해 그 계기에 남쪽 교계 대표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교황께서 북한을 공식 방문하려면 북쪽 교회의 현실이 크게 개선돼야 하는데 이는 단기간에 풀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 방안은 교황의 공식 방북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대북 지원단체 ‘평화3000’의 운영위원장인 박창일 신부는 “교황의 공식 방북은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올 가장 좋은 길이자 한반도 평화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지금부터 바티칸과 북, 남과 북이 모든 것을 열어놓고 협의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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