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경향신문

칼럼을 위한 칼럼 [사유와 성찰]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정치사상 입력 2018.10.19. 21:08 수정 2018.10.1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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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귀국한 지 벌써 십수년이 흘렀습니다. 귀국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가 쓰러지셨습니다. 병상을 지키고 있는데, 의사가 제 직업을 확인하고 나서, 한국 정치가 왜 이 모양이냐고 제게 다그쳤습니다. 한국 정치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염려되어 참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칼럼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 대해 잘 모릅니다. 양해해주십시오. 그렇게 거절했지만, 그때부터 이 땅의 칼럼 쓰기에 대해 좀 더 눈여겨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유익한 칼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칼럼니스트들이 당대 권력자들을 독자로 상정하고 글을 쓰더군요. 읽고 반성하라는 취지의 칼럼도 있었지만, 내 의견을 받아들여달라, 한자리 달라, 이뻐해달라는 칼럼도 적지 않아 보였습니다. 특정 정치인이나 경제인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칼럼을 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스스로 한패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저는 그 칼럼니스트가 당대의 권력자와 어떤 관계인지 우연히 알고 있었기에, 내심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일을 볼 때, 칼럼을 쓰는 것도 ‘정치적인’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관의 자문회의 같은 곳에 참석하면 다음과 같은 부탁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저희가 이번에 추진하는 정책을 지원하는 칼럼을 써주시면 감사하죠. 그런 부탁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들겠지요. 오, 나도 제법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군.

‘영향력’이라는 게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향력’을 없앨 수 없다면, 그나마 덜 나쁜 방향으로 쓰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떤 칼럼이 그나마 덜 나쁠까? 정략적 로비를 위해 쓰지는 말자.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지는 말자. 최소한 비문으로 가득 찬 글은 쓰지 말자. 중·고교 학생들이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신문 칼럼을 읽기도 한다던데.

무엇보다 칼럼은 다양한 많은 이들을 독자로 삼는 글입니다. 논문을 쓰며 살아온 저 같은 사람에게 이 점은 특히 중요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읽기를 바란다면, 가능하면 가독성 있는 글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가독성을 얻는 가장 편한 길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내용만을 쓰는 거겠지요. 그러나 칼럼을 읽고 독자가 조금이라도 변화하기를 바라는 필자라면 그래선 안될 것 같습니다. 상상 밖의 내용이라도, 혹은 내용이 거슬리더라도, 글을 읽어나가게 하는 힘은 많습니다. 사실 리듬감만 잘 유지되어도, 사람들은 글을 읽어나갑니다. 어려운 목표이긴 하지만, 읽는 과정이 곧 변화의 과정이 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요. 그러려면 글이 맹목적 정보 전달 이상의 내러티브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독자 대다수가 칼럼을 읽고 변화를 겪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일간 신문 칼럼이 소수 독자만 대상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독자 다수가 이해할 수 있는 공분모만 찾아서 써야 할까. 그러다 보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확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 다수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모든 층의 독자에게 같은 내용을 전달하려 하지 말고, 각기 다른 층의 독자들이 하나의 글에서 각기 다른 것을 가져가게끔 글을 쓴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려면, 글에 여러 단면을 만드는 게 좋을 것입니다. 사실, 독자들은 대체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글을 전유하지 않던가요. 필자의 희망과는 별개로, 독자 개개인에게는 목전의 글을 하필 그렇게 읽고 싶은, 혹은 그렇게 읽지 않을 수 없는, 사정과 개인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쓰기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읽기의 영역이겠지요.

연구자의 정체성을 지닌 이가 칼럼을 쓰는 것이 반드시 연구와 무관한 일일까요? 제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는 마치 연구대상에 탐침봉을 넣듯이, 자신의 칼럼 이곳저곳에 다양한 센서를 장치한 뒤에, 사회에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가 어디서 버튼이 눌리는지, 어떤 센서에는 반응을 하지 않는지 등을 알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저는 제 연구의 대상인 이 사회와 저 자신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을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읽어주셔서 놀랐습니다. 세상에, 9시 뉴스 앵커가 제 칼럼을 인용하더군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다고, 최근 인기에 힘입어 마동석 배우는 더욱 많은 영화에 출연 중이더군요. 노 젓느라 최근 팔뚝이 더 굵어지고, 한층 더 엄청난 근육남이 되었더군요. 저는 딱 한 줌 쥘 뱃살이 남아 있는 현재 제 몸이 좋습니다. 멀리서 마동석 배우를 응원하겠습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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