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이 패했다, 백종원이 아닌 연출·편집된 예능쇼 '골목식당'에 [백종원·황교익 논란-박구용 특별기고]

박구용/전남대 교수·시민자유대학 이사장 2018. 10.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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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연출·편집된 실제 상황…참·거짓 따질 영역이 아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외식사업가 백종원씨의 요리 방식, 방송 내용을 비판하면서 둘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이제 ‘백종원 VS 황교익’ 대결 구도 이면의 논리들을 깊이 읽어볼 때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위근우 칼럼니스트의 생각을 게재한다.』

SBS TV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죽어가는 음식거리 살리기’에 도전한다. 백종원씨는 망해가는 식당 주인에게 자신의 장사, 요리 비법을 전한다. 방송 갈무리

“재미로 했는데, 너무 심각하게 보신 것 아닙니까?” 그렇다. <뉴스공장> 김어준의 말이 맞다. 백종원은 재미로 진행했다. 황교익이 심각하게 따졌다. 누가 이길까? 둘 다 먹거리와 맛 평가 전문가다. 군말, 긴말 하지 않고 간명한 평가로 폐부를 찌른다. 그래서 둘 다 인기 방송인이다.

재미와 심각은 서로 붙어야 강도가 세진다. 심각할수록 재미있다. 재미를 섞은 시사 팟캐스트와 심각한 다큐 예능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황교익이 나오는 <수요미식회>나 <백종원의 골목식당>도 다큐 예능이다. 맛을 평가하는 황교익과 백종원의 심각한 말들도 재미를 유도하기 위한 자극적 제스처일 따름이다.

황교익 발언의 본질은 백종원이 아니라 TV 프로그램 ‘골목식당’ 장사 안된 책임 주인에 돌리는 성공 우선 편집은 잔인한 시장 논리 재미 위한 연출 허용 범위 어디까지…도덕적 선악 논의 이뤄져야

황교익이 난데없이 딴죽을 걸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제작진을 나무란 것이다. 인터넷 시장에서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들이 곧바로 황교익과 백종원의 싸움으로 몰아간다. 먹잇감을 발견한 기자와 누리꾼들은 실신한 황교익이 해온 말과 행동을 검열한다. 불고기의 어원, 한정식의 유래, 떡볶이와 라면의 맛에 대한 폄하 발언 등을 신랄하게, 어쩌면 다소 편협하게 검증한다.

황교익이 패했다. 그런데 이유가 석연치 않다. 그가 제기한 문제와 무관하게 패했기 때문이다. 그를 물어뜯은 하이에나들은 그가 제기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는다. 거꾸로 황교익에게 다른 문제를 들이대며 논점을 이탈시킨다. 그가 출제한 문제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온 막걸리 블라인드 테스트가 방송조작이며, 이 과정에서 출연자의 인격 침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이 방송조작인지 정당한 편집인지 여부, 조작이라면 법과 도덕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정도인지 여부는 쉽게 가릴 수 없다. 이 장면에서 백종원 신드롬이 증폭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막걸리집 사장의 인격이 훼손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풀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기본권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심층적 논의가 필요하다. 재미로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조작을 통해 개인의 인격을 침범하고 있다면 이에 대한 토론 검증이 있어야 한다.

우선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수차례 다시 보고 돌려 본다. 재미있다. 출연자들을 호되게 몰아치면서도 ‘같이 개선하면 돼’ 하는 백종원의 말과 눈빛은 따뜻하다. 반면 출연자들의 음식과 식당 분위기에 대한 그의 평가는 대부분 가혹하다. “디스플레이가 쓰레기 같다!” “이걸 누가 먹어!”

어쨌든 백종원이 한 말들은 정당하게 느껴진다. 3~4명을 제외하고 식당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백종원이 방문했을 때 엉망으로 조명된다. 위생상태가 처참하거나 조리의 기본도 모르고 식당 문을 연 사람들이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저렇게 잔인한 말을 듣고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도 백종원의 말은 냉정하기보다 고맙게 들린다. 가끔 백종원의 의견에 딴죽을 걸거나 조언을 따르지 않는 출연자가 있으면 ‘처방약을 거부하는 환자’처럼 비쳐 시청자들의 비난이 쇄도한다.

엉망진창인 출연자들에 대한 백종원의 솔루션은 크게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출연자들이 자신들이 엉망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유도한다. 그래도 수긍을 안 하면 다양한 형태의 대결을 펼친다. 이때 출연자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고집, 혹은 아집은 대부분 꺾인다. 출연자가 자신의 생각, 태도, 성격이 잘못됐다고 자각하는 과정에서 백종원의 능력이 돋보이게 연출된다. 결국 대부분의 출연자가 몸과 마음을 바꾸는 개종을 선언하면, 그 순간 백종원은 격려와 함께 대안을 제시한다.

자부심과 열정, 성실함으로 무장한 참가자에게 백종원은 이제 더 좋은 맛과 수익을 내기 위한 조리법 변형과 메뉴 조정을 해주면서 재무적 사고까지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한다. 대성공이다. 먼저 조언을 받아들인 식당 주인들이 성공한다. 엄청난 제작비와 최고의 전문가, 그리고 광고에 가까운 방송에 장시간 노출된 식당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방송에 나온 골목식당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이익을 얻는 것은 연출자, 제작사, 방송사, 그리고 진행자인 백종원이 대표이사로 있는 글로벌 외식기업이다. 시청자는 어떨까?

재미있게 본 시청자도 얻은 것이 있을까?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들은 자기혁신이나 변화를 다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거나 혹은 위로를 받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매우 심각한 판단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우선 장사가 안되면 그 원인과 책임이 온통 주인에게 있다는 통념이 생길 수 있다. 이는 곧 모든 형태의 실패와 불행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천민자본주의의 핵심 논리다. 이 논리는 형태를 변화시키면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정신을 파고들어왔다. 국민행복시대를 내건 박근혜 정권 때엔 행복 전도사들이 이 논리를 퍼뜨렸다. “행복하니까 웃는 것이 아닙니다. 웃으니까 행복한 겁니다.”

당신의 불행, 당신의 실패는 오로지 당신 혼자 책임져야 합니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최종 논리는 이처럼 잔인한 시장논리다. 그런데 무한경쟁의 시장논리에 따라 상처받은 사람들조차 이런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은 심각하게 재미있다. 그리고 경쟁의 과정이 온전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착시가 일어난다. 실제 사회는 장막 뒤에서 온갖 불공정이 자행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오디션 프로그램이 연출한 경쟁은 공정해 보인다.

독일 철학자 칸트의 말처럼 공개한 만큼 공정성과 공공성은 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연출된 공개, 편집된 공개는 거꾸로 공정성과 공공성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포함해서 <백종원의 골목식당>처럼 무한경쟁의 논리를 전파하는 다큐 예능은 그럴 위험이 크다. 이들 프로그램은 연출에 따라 실제 벌어진 경쟁과 성공의 과정을 영상에 담아 조각조각 나누고 임의적으로 붙여서 편집한 것이다. 그러니 황교익이 제기한 방송조작과 편집을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명확한 기준을 찾을 수는 없다. 그만큼 방송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윤리적 책임의식이 요구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골목을 적자생존이 벌어지는 야생벌판으로 뒤바꾸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재미로 승부를 거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재미를 위해 기획, 연출, 편집 가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디까지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다. 진위를 따질 영역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호불호나 취향의 문제만 남은 것은 아니다. 재미를 키우기 위해 허용될 수 있는 연출과 편집의 허용 범위에 대한 도덕적 선악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헌법의 두 기둥인 인권과 주권의 결정체인 인격 침해의 소지가 있다면 법적 책임도 따져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 인간의 삶을 착취하는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다면 인문학적 비판 담론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토론도 담론도 없다. ‘백종원이냐, 황교익이냐’를 놓고 다투기만 한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폭력에서 승부는 끝났다. 백종원은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전문성과 인간성, 심지어 이미 성공한 사업가다. 그러니 어떤 시청자는 그를 골목식당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선사업가로 착각한다. 국회의원조차 그를 자영업을 살리기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고민하는 공무활동가로 여기고 추앙한다.

나를 포함해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미 백종원처럼 말하고 있다. “일주일 내내 고민한 결과가 이거라면 이 일 하지 마세요. 재능이 전혀 없는 겁니다. 내가 볼 때 일 안 했습니다. 준비 안 하고. 방송 나가면 되겠지 생각하지요? 천만에. 방송 못 나갑니다.” 방송을 논문으로 바꾸면 교수의 말이고 승진으로 바꾸면 상사의 말이다. 예능은 어쩌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이다.

박구용/전남대 교수·시민자유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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