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 "통일·외교부장관·주미대사 모두 무능하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글 원희복 선임기자 · 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2018. 10. 2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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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북핵문제의 조속하고 평화적인 해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비롯한 한·미동맹 대안 모색, 국방비 동결·감축을 통한 한반도 민중 복리의 증진,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 한반도 통일 실현. 이 정도라면 국가 ‘대전략’ 차원이다. 대전략이란 군사·외교적 역량을 넘어 정치·경제·사회적 요소, 심지어 국민의 심리적 요소까지 통합하는 큰 목표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대전략을 논의하는 곳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도일 것이다. 흔히 큰 사고가 나면 청와대 지하 벙커 NSC가 나오지만 그곳은 NSC를 지원하는 사무처의 일개 상황실일 뿐이다. 진짜 NSC는 대통령이 의장이 되고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등 정부의 모든 역량이 집결되는 헌법상 기구다.

그런데 민간에서 ‘소장 활동가’들이 이런 논의를, 그것도 20년 가까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서울 마포구 망원동시장 한 허름한 새마을금고 건물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꼭대기 사무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니…. 그곳 책임자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46·사진)는 약간 ‘때’가 낀 머그잔에 믹스커피를 훌훌 타서 기자 앞에 놓고 앉았다.

한반도 핵 갈등의 기원은 미국 “내년이면 평화네트워크가 만 20년이 된다. 대학(고려대)을 졸업한 1999년 5월 10여명이 모여 세미나를 하면서 시작했다. 그때 북은 대기근으로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었고, 남쪽도 국제통화기금(IMF)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도대체 한반도가 왜 이리 고단한가를 생각했다. 그래서 평화와 군축을 주제로 공부한 것이 이 평화네트워크의 시작이 됐다.”

-최근 관심사항인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문제는 정 대표의 전공 아닌가. 게다가 최근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는 ‘고대 인맥’이 말아먹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하~하~) 그런가? 고대는 MB(이명박 전 대통령)시대 이미 다 말아먹었는데. 뭐 그 전보다 조금 바쁘긴 하지만 생각만큼이나 바쁘진 않다.”

-지난 8월 출간한 책 <핵과 인간>은 잘 팔리는가. 이 자리에서 책 홍보 좀 하라.

“잘 안 나간다.(하~하~) 책이 700쪽 넘어 두껍고, 가격도 비싸서인지 많이 안 팔린다. 나도 책을 잘 안 읽어 남 탓할 입장은 아니지만….(하~하~, 그는 자주 웃었다)”

-책은 한반도 핵갈등의 기원과 전개를 기술했다. 결국 한반도 핵갈등은 미국 책임이 크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렇다. 나는 한반도 핵문제는 1945년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당초 미국은 대일전쟁에 소련 참전을 사정했고, 스탈린은 트루먼에게 8월 15일 참전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런데 미국은 7월 16일 원폭실험에 성공하자 소련 참전 없이도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8월 6일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니 소련은 8월 9일 일정을 앞당겨 대일 선전포고를 하며 참전했다. 소련이 미국의 의사를 간파하고 전후 지분을 얻기 위해 서둘러 참전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가 분단됐다.”

기자는 정 대표가 <국민라디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진짜안보’를 팟캐스트를 통해 듣는다. ‘민방위 훈련장에서 듣는 안보교육은 저리 가라’를 외치며 진행하는 그의 한반도 안보·평화·통일 관점은 웬만한 한반도문제 전문가보다 뛰어나다. 정 대표는 지난 6월 ‘평화협정을 써보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만든 평화협정문을 공개했다. 본인도 “의견을 듣고 변화를 반영해 수정·보완해야 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모두 종전선언·평화협정을 말로만 떠들었지 정작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기술돼야 한다고 한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는 북의 비핵화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북의 비핵화만 강조되고 평화체제는 덜 강조되는 상태다. 그래서 평화협정문이라도 한 번 만들어 공론화시켜보자는 취지로 기존 조약 등을 참고해 만들어봤다. 그런데 많이 공론화된 것 같지는 않다.(하~하~)”

우리 통일·외교·안보팀 ‘실력 없다’ 그의 말대로 한반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북의 완벽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만 얘기한다. 그러나 북핵 해결은 북·미 평화협정을 넘어 미국의 완벽하고 검증 가능한 북한 체제보장이 이뤄질 때만 가능하다. 북의 비핵화도 중요하지만 북에 대한 제재 완화와 체제보장 문제도 논의돼야 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나 정책결정권자, 심지어 언론조차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발언이 나온다.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과 유럽을 돌며 ‘북 제재 완화’를 설득하는 중이다. 그러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5·24조치 해제를 ‘검토한 바 없다’고 물러섰다.

-정부 시행령 수준인 5·24조치도 해제 못하면서 미국의 대북제재, 유엔의 대북제재 해제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당당하지 못하다.

“심지어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5·24조치 해제를 ‘검토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사실 5·24조치 상당 부분, 50% 정도는 유명무실화돼 있다. 또 나머지 50%는 유엔 안보리나 미국 제재에 걸려 있다. 따라서 5·24조치를 해제해도 실익이 없다. 우리 관료들이 그런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과 통일·외교·안보라인이 한 팀으로 짜여져 나가야 하는데 불협화음이 들린다.”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성과를 보이는 것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인데 그런 난맥이 드러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이 북에 강경하게 나갈 때나 전향적으로 나갈 때나 우리 관료들은 매번 미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우리 통일·외교·안보팀의 자신감과 실력이 의심스럽다. 관료들의 논리력, 대안 제시력, 설득능력 같은 소프트파워가 약하다.”

-정 대표가 했으면 잘했을 것인가.

“아니다.(하~하~) 강경화 장관의 경우 비외교부 출신 첫 여성 외교부 장관이라는 의미는 있지만 한반도문제 전문가가 아니다. 미국 조야에 우리 통일정책을 설득하는 주미대사도 중요한데 그는 통상전문가다. 통일부 장관은 과거 정동영 장관처럼 외교·국방부보다 반 발자국 앞서가야 하는데 오히려 처진 느낌을 준다. 과거 정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미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만나 설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

사실 남북 간 경의선 철도 연결이나 금강산 관광 등에 대해 미국은 번번이 제동을 걸고 있다. 그 주체는 유엔사령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유엔사령부는 유엔의 산하기구가 아니다. 1969년 간행된 유엔헌장 해설서에는 유엔사가 유엔 기구가 아님을 명확히 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9월 18일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대사가 “주한 유엔사령부는 기구의 이름 뒤에 숨어 있다, 유엔사령부가 21세기의 베를린 장벽과 유사한 것이냐”고 비판할 정도다. 그런데도 우리 국방부나 외교부도 당당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지금부터가 한반도문제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본게임의 시작이다. 얼마 전 출간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 밥 우드워드의 <공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노스코리아’다. 미국 주류에서 트럼프는 ‘이단아’다. 나는 한반도 현상을 변경하려는 트럼프와 현상을 유지하려는 미국 주류 사이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는 70년 넘는 분단적폐처럼 미국도 군산복합체를 비롯한 한반도 현상유지 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이는 민주당이나 공화당 등 정당 노선과 별개다. 결국 지금은 한반도 현상을 유지하려는 미국 주류세력과 한국의 극우에 가까운 보수세력, 그리고 일본 주류세력이 한편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트럼프와 우리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북의 김정은 위원장이 또 다른 한편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나는 학자 아닌 평화운동가 그는 “미국 주류세력은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어김없이 북핵위기를 강조했다”면서 “이는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라 문건으로 모두 확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미국 주류세력은 수십 년간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며 이득도 얻고, 패권을 강화했다”면서 “만약 한반도 평화가 이뤄지면 이것이 가능할까를 두려워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해석은 우리 외교·국방을 주도했던 주류세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1972년 서울 출신으로 대원외고를 나와 93년 고려대 정외과에 입학했다. 학생 시절 그는 통일운동보다 노동운동을 더 많이 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어 ‘평화활동가’를 자처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넘기며 눈이 빠지도록 ‘노스코리아’ 단어를 찾았다”면서 “그 결과 미국 언론의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 패턴이란 예산심의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북 미사일 위협과 미사일방어체제(MD) 보도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는 1999년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군축·주한미군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우리 국방부는 평화네트워크 주장을 반박했다. 이런 논란에 한 보수언론은 ‘국방부와 평화네트워크 사이버전’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학부 졸업 학력이 전부였다. 지금도 그는 그 흔한 정치학 박사학위가 없다. 2004년 뒤늦게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우리 단체 모토 중 하나가 ‘통일·안보의 민주화’로 통일과 안보문제를 고위 정치영역으로 여기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박사학위가 없어도 안보와 통일문제는 실력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기야 <핵과 세계사>, <21세기 한·미동맹>, <MD의 본색>, <동맹의 덫> 등 무려 22권의 책을 쓴 그가 박사학위 논문 하나 못 쓰겠나.

그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 통일·외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학부 학력의 자문위원은 이례적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도 받았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21세기 최악의 전쟁이라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면서 “군축 평화를 지향하는 우리 모임 정체성과 정면으로 어긋나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노무현 정부에 비판의 각을 세웠다. 그는 “노무현은 제2의 DJ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미국에 저자세였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스스로를 학자가 아닌, 핵 없는 세상과 평화를 연구·전파하는 평화활동가라고 했다. 국제 네트워크에도 힘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평화네트워크는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반핵·군축단체인 ‘아이캔(ican)’ 회원단체다. 평화네트워크는 300명 정도의 후원회원이 있다.(후원계좌: KEB하나은행 298-910009-08705) 그는 출판·강연·원고료로 부족한 재정을 메우며 ‘근근이’ 평화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몇 가지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매년 한 권 이상 책을 내고 있다”면서 “초심을 가지고 반핵·군축·평화를 꾸준히 알리는 것이 도와주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 원희복 선임기자 · 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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