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걸렸다" 파양비 과다 요구한 사설동물보호소

이은지 입력 2018. 10. 21. 12:40 수정 2018. 11. 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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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 피해사례 10여건 접수해
지난 3월 고발했지만 처벌할 법적 근거 미비
전문가들 "파양비 사용 내역 고지 의무화해야"

부산에 사는 박모(46)씨는 지난 1일 사설동물보호소인 A업체를 찾아 4살된 강아지를 파양(입양했으나 키우지 못해 돌려주는 것)하면서 280만원을 지불했다. 강아지가 백내장이 의심된다며 치료비 100만원과 치석 관리비 30만원, 행동 교정비 30만원 등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업체가 내민 ‘파양동의 및 포기 각서’에 서명했다. 각서에는 ‘파양되는 동물의 치료 및 복리 후생은 의무가 아닙니다’라는 약관이 적혀 있었다. 이씨는 “치료비를 100만원씩 받으면서 ‘동물의 치료는 의무가 아니다’라는 약관에 서명을 강요하는 행태에 분통이 터졌다”며 “파양비 항목이 명확하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이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사설동물보호소를 찾았다가 과도한 파양비 요구로 피해를 봤다는 제보자가 속출하고 있다. 20일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A 업체를 상대로 10여건의 피해사례가 접수됐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3월 이 업체를 사기죄와 수의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3년 전 동물 파양을 받아주는 업체가 등장했고 지난해부터 피해 사례가 접수되기 시작했다”며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지난 3월 검찰에 고발했지만 단속하거나 처벌할 법적 근거가 미비한 상태”라고 말했다.

국내 동물보호법에는 동물 파양시 과도한 치료비를 요구한 뒤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않는 유기견보호소를 처벌하거나 규제할 만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업체는 이런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양동의 및 포기각서에 적힌 약관. [사진 독자제공]
해당 업체는 안락사 없는 요양보호소라 광고하며, 견주가 동물을 파양할 때 보호비와 위탁비 명목으로 적게는 20만원, 많게는 수백만 원의 파양비를 받고 있다. 파양된 동물을 입양하는 사람에게는 반려동물의 품종과 나이에 따라 책임비를 달리 받는다. 서울 잠실에 본점을 두고 있는 이 업체는 부산, 인천, 창원 등 6개 분점을 운영 중이다. 이 업체는 동물카페는 물론, 애견 샵, 동물호텔, 동물판매 등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인천에 거주하는 한 제보자는 구조된 고양이를 키울 수 없어 이 업체를 찾았다가 1400만원의 파양비를 지불했다며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해왔다”며 “심장사상충 치료비로 거액의 파양비를 요구한 사례인데 제보자가 이 업체에 전화해서 실제로 치료를 했는지 문의했지만 해당 업체는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소비자들의 알권리가 침해받고 있지만 이 업체를 상대로 취할 수 있는 법적 제재가 미비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업체 관계자는 “파양한 동물의 치료 상황과 입양 여부 등은 정보이용료 10만~30만원을 내면 고객에게 알려주고 있고, 파양비는 동물의 상태에 따라 합의하에 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 파양과 입양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업체가 소비자와 공정거래를 할 수 있도록 투명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자유연대 자문을 맡은 남현식 변호사는 “소비자에게 받은 비용이 어떻게 쓰였는지 업체가 사후 알려주도록 의무화한다면 소비자 기만행위가 줄어들 것”이라며 “업체를 이용했다가 피해를 본 소비자들은 이런 사실을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알려야 제2, 제3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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