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100일.. "업무량 그대로, 월급만 줄었다"

문수정 손재호 기자 2018. 10. 22.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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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현장 체감도는

잡코리아, 직장인 설문 결과 “업무 강도 높아졌다” 38%
인력 충원 기업 10곳 중 3곳 제도 긍정적 효과 실감 못해
일각선 “업무 집중도 높아져 52시간제 성과 판단 시기상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시행된 지 100일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7월 1일부터 해당 기업의 근로자들은 주40시간 근무, 연장 근로 12시간을 포함해 주당 최대 52시간까지만 일을 해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과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주52시간 근로제는 출발했다.

현장에서는 이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을까. 습관적으로 회사에 남아 야근하는 일이 크게 줄었다. 퇴근 시간이 빨라져 저녁이 길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근로시간은 단축됐으나 업무량은 줄지 않은 것, 수당이 없어지면서 월급이 줄어든 것 등이 근로자들을 떨떠름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일하는 김모(38)씨는 상반기만 해도 매주 3∼4일은 야근을 했었다. 주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 뒤 업무용 PC는 오후 6시 이전에 꺼진다. 하지만 김씨는 요즘도 종종 자체 야근을 한다. 김씨는 “알아서 야근을 하지 않으면 스케줄대로 일이 굴러가지 않는다. 주로 카페에서 일하는데, 일을 마치는 시간이 오후 9시 이후인 날도 잦다”고 말했다.

최근 잡코리아가 직장인 47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근로시간 단축 제도 도입 후 오히려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는 의견이 38.0%였다. 대기업 직장인 중에는 45.3%나 됐다. 하지만 제도 시행 이후 인력을 충원한 곳은 10곳 중 3곳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업무량도, 인력도 그대로인데 근로시간만 짧아져 고강도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자에게 ‘돈’ 대신 ‘시간’을 주는 제도이기도 하다. 제도 시행 전 일부 기업들은 근로자에게 야근비를 지급했었다. 연장 근로에 대해 정당한 보수를 주기보다 식비, 교통비 수준의 소액을 지급하는 식이었다.

주 52시간 근로제에서는 주당 12시간 이내의 연장 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1.5배, 밤 10시 이후 야근의 경우 2배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통상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수당을 지급하기보다 연장 근로를 한 만큼 휴가로 보상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근로자의 시간을 쓴 것에 대해 시간으로 메워주겠다는 것이다.

업무량이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자들은 ‘휴가 보상’이 달갑지 않다. 출판업계에서 일하는 이모(40)씨는 매달 받던 20만∼30만원의 야근 수당을 제도 시행 이후 못 받게 됐다. 대신 초과 근로한 시간만큼 휴가를 쓸 수 있게 됐다. 이씨는 “쉬는 동안 그만큼 일이 쌓이는 거니까, 쉰다기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기분이다. 이럴 바에야 예전 수준의 수당이라도 받고 일하는 게 더 낫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제도 시행을 실감하려면 회사를 나서는 순간 일에서 해방될 수 있어야 한다. 근로시간은 짧아졌지만 해야 할 일의 규모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근로시간 단축의 긍정적인 효과를 실감하기 어렵다. 추가 고용이 동반돼야 하는 이유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는 21일 “근로시간 단축으로 절감한 인건비를 고용 투자로 이어가야 한다. 고용이 늘어 경제에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면 기업도 그 혜택을 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무 강도가 심해진 게 아니라 ‘집중도가 높아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 효율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불필요한 업무 절차를 줄여서 생산성을 높이면 이게 고용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성과를 판단하기엔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야근을 하지 않는 것 자체를 낯설어 하는 직원들도 많다. 아직 얼떨떨한 상황”이라며 “성과를 평가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문수정 손재호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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