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팩트체크] 탈원전 정책이 한전 적자를 키웠을까?

임주현 2018. 10. 22. 07:03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전력구입비 증가로 한전 적자가 늘어나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이 16일 한국전력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한 주장이다.

정 의원은 "한전의 올해 말 예측되는 당기순손실이 4천481억 원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발전비용이 싼 원전을 안 돌리고 화력발전을 돌려서 화력발전 구매비용만 3조 원이 늘었다. (정부가) 갑자기 탈원전 정책을 시작하면서부터 흑자가 나던 기업이 엄청나게 적자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은 정부의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이 한전의 대규모 적자를 야기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국제 연료비 상승이 최근 경영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요인”이라며 “원전의 정비 일수가 늘어난 만큼 원자력 가동을 못 했고, 그로 인한 발전량 공백을 석탄과 LNG 발전으로 채운 부분도 실적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탈원전 정책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한전의 경영실적 악화는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만큼 탈원전 정책과 적자의 연관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야당과 한전, 어느 쪽이 객관적인 사실에 가까울까.


한전의 경영 실적 악화 '사실'…어제오늘 일은 아냐

야당 의원들은 한전의 지난해 경영 실적과 올해 예상되는 실적을 문제 삼았다.

정 의원은 한전이 매년 기획재정부에 보고하는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내세웠다.

지난 2016년 보고서에서 한전은 2018년 경영 실적을 3조 4천억원의 당기순이익이 날 것으로 전망했지만, 실제로 올해 예측은 4천억 원이 넘는 손실이 날 것으로 봤다. 순이익 전망이 손실로 바뀐 원인이 탈원전에 있다는 게 정 의원의 주장이다.

정우택 의원실 자료 재편집. (원본에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부분만 발췌)


같은 당 정유섭 의원은 "한전이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이 8천147억 원에 달하는데 이는 전년 동기보다 3조 1천억 원이 감소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역시 탈원전으로 인한 LNG, 석탄 전력구입비 상승을 적자의 주원인으로 지목했다.

정유섭 의원실 자료 재편집. (원본에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부분만 발췌)


의원들이 제시한 자료 뿐 아니라, 한전이 공시한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를 종합해 봐도 최근 한전의 경영실적이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 가동률 하락에 따른 전력구입비 상승이 적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선 주요 원인으로 국제연료비 상승(2조 원), 전력구입비 증가(2조1천억 원), 신규 설비투자 확대에 따른 감가상각비 증가(4천억 원) 등을 꼽았다.

올해 상반기 두바이유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배럴당 51달러에서 68달러로 가격이 올랐다. 유연탄은 톤당 81달러에서 104달러, LNG는 기가줄(GJ)당 1만2천400원에서 1만3천500원으로 올랐다. 한전은 정비 등으로 원전 발전량이 줄어들 경우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 원전 다음으로 발전단가가 싼 석탄→LNG→-재생에너지 순으로 추가 전력을 확보한다. 한전의 전력 구입 내역을 보면 실제로 원전 발전량이 줄어드는 동안 원전보다 비싼 석탄과 LNG 전력 구입 비중이 늘어났다.

한전의 적자 상황이 탈원전 정책에서 기인했다는 주장은 여기서 출발한다. 정부의 탈원전 선언 이후 원전 가동률이 떨어졌고 그로 인한 공백을 석탄이나 LNG 발전으로 메우는데, 국제연료가가 크게 오르며 비용이 높아져 적자가 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전에서 충당하지 못한 에너지를 다른 곳에서 구입해 메우는 방식은 과거에도 수없이 반복됐던 일이다. 국제연료 가격 추이는 경영 실적에 그대로 반영돼 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이후 발생한 특수 상황으로 보기엔 어렵다는 말이다.

실제로 한전의 경영 실적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최근 10년간 연도별 손익현황을 보면 적자경영으로 마감한 경우가 절반에 달했다. 수년간 적자경영이 이어졌던 시기도 있고, 지난 한해보다 더 큰 폭으로 적자폭이 늘어난 시기도 있다. 모두 탈원전과는 상관이 없는 시기다.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의원실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전은 고유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원전가동률을 높였던 이명박 정부 기간(2008년~2012년) 내내 순손실을 기록했다. 고유가 기조로 발전 연료비가 상승한 것과 전기요금 동결 등이 당시 적자의 주요인으로 꼽혔다. 이후 경영 실적은 플러스로 돌아섰다 2015년을 기점으로 다시 마이너스 행보를 보이고 있다.


논점을 다시 정리하자면, 원전 가동률이 하락하자 → 전력 구입비가 증가했고 → 이는 결국 한전의 적자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전의 경영실적에는 전기요금 체계나 물가, 원전 정비상황 등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원전 가동률이 왜 떨어졌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원전 가동률은 야당 의원들의 주장처럼 지난해 6월 문 대통령이 탈원전 선언을 한 이후 떨어진 것일까?


원전 가동률·이용률,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

야당 의원들은 핵심 쟁점인 원전 가동률 하락 요인에 대해선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는 주장 외에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팩트체크 결과, 탈원전 선언(2017.6.) 이전에도 원전 가동률과 이용률은 꾸준히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14년 전부터 집계된 원전 이용률과 가동률 데이터를 보면, 간간이 상승하는 국면도 있지만 대체로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다.

가동률은 원전의 연간 발전 가능 시간 대비 총 발전시간 비율이고 이용률은 연간 발전 가능량 대비 총 발전량 비율을 뜻한다. 다시 말해 가동률은 1년간 원전을 얼마나 가동했는지, 이용률은 원전을 가동해 얻은 발전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계량한 것이다.

원자력발전소 이용률 및 가동률 (한국수력원자력 자료)


원전에 대한 거부감이나 친환경·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2004년~2007년에는 원전 가동률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이후 2011년까지 원전 가동률은 대부분 90%를 넘겼지만, 이후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올해 1월~9월까지의 이용률은 63.6%, 가동률은 64.2%로 집계됐다. 올해가 아직 두달 남았지만,2004년 이후로는 역대 최저치다. 한전의 적자 상황을 탈원전 정책과 연결짓는 의원들은 이 부분에 주목한다.

등락 폭을 기준으로 보면 2016년과 2017년 사이에 가동률이 8.6%, 이용률은 8.5%가 감소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다음으로 등락 폭이 컸던 시기는 2011년~2012년이다. 전년대비 이 시기 가동률은 8%, 이용률은 8.4%가 떨어졌다. 이에 비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9월 기준)의 가동률은 7.1%, 이용률은 7.6%가 떨어져 등락 폭이 세 번째로 컸다.


원전 가동률, 대체 왜 줄어드나?

원자력계는 지난해는 물론 과거부터 원전 가동률이 꾸준히 떨어진 것은 원전의 안전점검 일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아 설명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국감에서 "원전 가동률이 낮아진 건 안전기준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예방정비가 길어졌기 때문이다."라고 여러 차례 답했다.

산자부도 최근 보도해명자료를 통해 "상반기 원전 이용률이 낮아진 것은 탈원전 정책 때문이 아니라 격납건물 철판부식, 콘크리트 공극 등 과거 건설 원전의 부실시공을 보강하는 과정에서 원전 정비일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원자로를 둘러싸고 있는 격납건물 철판과 콘크리트는 원자로 용기 용융 등 중대사고 발생 시 방사선 누출을 막아주는 설비다. 문제가 생길 경우 방사선 누출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정종영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과장은 "점검에서 발견한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정비일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없는 원전을 일부러 가동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원전 안전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2012년 고리 원전 1호기 정전사태, 2016년 경주지진 같은 대규모 재난재해·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전 안전관리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이유로 전 세계 원자력 규제기관들이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추세이고 국내 여론도 있어 한수원이 자체 정비를 강화해온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앞서 2011년 이후로 원전 가동률과 이용률이 꾸준히 하락한 데는 후쿠시마 이후 잇따른 대규모 재난재해·사고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만희 한수원 홍보실 차장은 "한수원이 국내외 안전관리 강화 여론과 추세 등을 고려해 2012년부터 자체 정비를 강화했고 그 결과 계획예방정비 기간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KBS가 입수한 한수원 정비처의 `2001년 이후 연도별 계획예방정비 현황'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총 정비기간 일수와 원전 호기당 평균 정비기간 일수 모두 대폭 늘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2011년 까지는 백단위였던 총 정비기간 일수가 이듬해부터 천단위로 급증했다. 원전 호기당 평균 정비기간일수도 크게 늘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2001년 이후 역대 최다 정비일수를 기록했고, 점검강화는 올해로 이어지고 있다.

자료: 한국수력원자력


"탈원전→전력구입비 증가→적자 발생" 주장은 '대체로 사실 아님'

경영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어쨌든 한전이 원전 가동이 일시 정지돼 생긴 발전량 공백을 충당하기 위해 원전보다 발전단가가 비싼 석탄, LNG 발전에서 전력을 사왔고 그로인해 적자폭이 커진 건 명백한 사실이다.

야당 의원들이 수년간 흑자 경영 상태였던 한전이 지난 1년 새 적자 상태로 전환된 걸 두고 충분히 문제제기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원전 가동률이 떨어진 원인에 대해 지난 14년 동안 취합된 원전 가동률·이용률을 살펴봤더니, 탈원전 선언 수년 전부터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원자력계의 의견을 종합해본 결과 그 원인은 대형 재난재해·사고에 따른 원전 안전 강화 조치로 풀이된다. 이는 한수원 정비기록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2011년 이후로 안전점검 일수는 대폭 늘어났다.

다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원전 가동률 저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지난해 10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원전의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 안전을 강화하는 큰 흐름이 있긴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9월 기준) 총 정비기간 일수가 상대적으로 큰 폭으로 증가한 걸 보면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 정부 측도 공론화위원회의 권고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부정하진 않았다.

지난해 말 확정된 정부의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도 원전 가동률 저하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보는 건 합리적인 의심이다.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은 2017년부터 2031년까지 15년간의 전력수급 전망과 계획을 담고 있다. 원전과 석탄 발전은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고 신재생·친환경 에너지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결국 전력구입비 증가의 요인이 된 "원전 가동률 저하가 탈원전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지만, 공론화위원회와 전력수급 기본계획의 영향이 없다고 단정할 명시적 근거도 없다.다만 위원회 권고와 전력기본계획이 짧게는 10개월 전에 수립된 만큼 실제 원전 가동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간은 1년이 채 못 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전력구입비 증가로 한전 적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

임주현기자 (leg@kbs.co.kr)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