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날리고 사라지는 영어마을..40%가 문 닫거나 용도 바꿔

구은서 2018. 10. 2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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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은서 기자 ]

경기 성남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입구에 있던 영어마을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성남시는 2005년 연수원 3개 동을 갖춘 성남영어마을을 조성했지만 재정 부담으로 2014년 문을 닫았다.


“(영어마을은)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영어권 언어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영어 공교육의 혁명이다.”

2004년 ‘국내 1호 영어마을’인 안산영어마을을 세우면서 손학규 당시 경기지사가 한 말이다. 하지만 안산영어마을은 개원 첫해 118억원 손실을 기록한 뒤 만성적자에 시달리다 2012년 문을 닫았다. 안산영어마을뿐만이 아니다. 최근 교육계에 따르면 2004년 이후 설립된 전국 영어마을 28개 중 약 40%인 11개가 문을 닫았거나 다른 기관으로 용도를 바꿨다. 파주영어마을과 양평영어마을은 한류트레이닝센터, 소프트웨어교육 등을 하는 체인지업캠퍼스로 활용되고 있다. 안산 하남 대전의 영어마을은 평생교육원으로 간판을 바꿨다. 상당수 영어마을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세금 수조원만 낭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적자로 28 곳 중 11곳 폐쇄·용도 변경

영어마을은 초·중·고교생 등 청소년 및 어른들이 생활밀착형 영어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외국 공항 입국심사대나 쇼핑몰, 병원을 본뜬 체험시설에서 원어민 교사와 대화하며 자연스레 영어를 익히도록 한 게 특징이다.

2004년 경기도는 “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연수 효과를 볼 수 있게 하겠다”며 국내 최초로 안산영어마을을 설립했다. 화제가 되자 다른 지역에서도 경쟁적으로 영어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어진 영어마을은 전국 28개에 달했다. 설립비만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경기도가 파주영어마을 한 곳을 짓는 데만 991억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운영난으로 영어마을 28개 중 11개가 문을 닫았거나 성격을 바꿨다. 운영 중인 영어마을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는 수유, 관악, 풍납영어마을을 짓는 데 각각 367억원, 308억원, 121억원 등 총 796억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최근 5년간 수유영어마을은 32억45000만원, 관악영어마을은 2억7900만원의 적자를 냈다. 풍납영어마을은 지난해 ‘창의마을’로 간판을 바꿨다.

“강사 자질 등 교육질 보장 못한 게 원인”

전문가들은 2000년대 초 각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영어마을을 지으면서도 정작 교육의 질은 보장하지 못한 게 영어마을이 외면받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게 원어민 강사의 자질 논란이다. 외국인이 국내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려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 출신으로, 학사 이상 학위와 교육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영어마을에선 무자격 원어민 강사가 수업하다가 적발되는 사례가 반복됐다. 애초에 교육적 효과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당국이 아니라 지자체가 영어마을을 경쟁적으로 짓다 보니 교육철학이 부재했다”며 “단기간 몰입교육은 학생들에게 방학기 간에 동기 부여를 해줄 순 있어도 꾸준히 영어실력을 늘려가거나 학생 눈높이에 맞춰 1 대 1로 교육하기는 어려운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아이돌 기숙사로 쓰인 영어마을

영어마을의 ‘말로’는 제각각이다. 지난여름 방영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48’에서 한국과 일본에서 모인 아이돌 연습생들이 숙식을 함께하면서 머문 기숙사는 파주영어마을 내 한류트레이닝센터다. 파주영어마을은 학생들의 발길이 끊기고 적자난에 시달리자 사업을 다각화하기 시작했다. 2014년 영어마을 안에 한류트레이닝센터를 설립했고, 2016년에는 요가강사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도 세웠다. 결국 파주영어마을은 지난해 ‘체인지업 캠퍼스’로 간판을 바꿔 달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2008년 설립된 전남 강진외국어타운은 문을 닫은 뒤 강진귀농사관학교로 바뀌었다. 리모델링에는 다시 시 예산이 들어간다. 설립 6년 만인 2015년 문을 닫은 경기 군포국제교육센터는 수년간 방치되다가 올 5월에야 ‘군포책마을’로 개편됐다. 리모델링에는 시 예산 50억원이 투입됐다. 전문가들은 영어마을 몰락의 원인으로 교육철학 부재를 꼽는다. 이병민 교수는 “영어교육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 없이 시설부터 짓기 시작한 게 영어마을 실패의 근본 원인”이라며 “정부의 교육정책 혼선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 NIE 포인트

전국적으로 ‘영어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자. 영어마을이 당초 취지와 달리 문을 닫거나 용도가 변경되는 등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정리해보자. 영어마을이 활성화 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도 토론해보자.

구은서 한국경제신문 지식사회부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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