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40대 의사 아내, 1년 새 두 차례나 심장이 멎었다

이혜미 입력 2018. 10. 23. 04:45 수정 2018. 10. 2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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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는 없다] <29>충남 의사 부인 살인사건

“열이면 열, 다 안 된다니까요.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2017년 3월 21일,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 사무실은 소란스러웠다. 광역수사2팀 형사들이 난상토론을 벌이는 자리 한 가운데 이영우 경위(현 팀장)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아니 형님, 제 말을 들으세요. 괜히 헛힘 쓰지 마세요.” 후배들 생각은 하나로 모아졌다. 걱정과 만류. 한데 이 경위는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알겠다는 말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얼마 전 민원인이 찾아왔다. 누군가 ‘지역에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이가 있다’는 말을 전해 온 직후다. 대개 민원인은 자기 입장에서 모든 사건을 말하기 일쑤다. 때로는 거짓이 담겨 있고, 더 많게는 과장이 섞여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악성 민원인인 경우가 아닐 때보다 훨씬 많았다.

며칠이 지나도록 청사를 방문했던 여성얼굴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에는 유독 답답함이 넘쳐났다. 애가 닳을 대로 닳아, ‘믿든 믿지 않든 상관 없다’는 그간 수없이 만나온 민원인들과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여성은 동생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차분히 풀어갔다. 사건 경위, 동생 부부의 관계, 동생사망 및 장례 당시 동생 남편의 행동 등 의심스러운 정황을 정리한 자료도 준비했다. 그러나 이미 화장한 뒤로 시신은 없는 상태라 수사는 어려워 보였다. 이 경위가 물었다. “사망 당시 경찰에 신고는 됐죠?” 언니는 “안 된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 경위의 눈이 반짝였다. 그 문답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됐다.

B(당시 45세)씨는 열흘 전인 3월 11일과 12일 사이 집에서 숨을 거뒀다. 사인은 심정지. 고인의 언니는 동생의 남편 A(46)씨가 범인이라고 의심했다.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우선 둘은 결혼한 지 1년이 채 안 됐다. 창창한 40대던 동생은 그 사이 사망한 그날을 포함해 심정지를 두 번 겪었다. “장례식장에서 제부 표정은 말이죠. 아내를 잃은 표정이 절대 아니었어요.” 곧바로 이어진 의심, 이 경위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이 이어졌다. “아무리 결혼생활이 짧았다고 해도 그렇죠. 아내가 숨진 현장에서도 그렇게 태연할 수 없었다고 해요.” 서둘러 화장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남편은 어떤 사람이죠?” 잠시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서울에서 의료 사고를 여러 번 내고 돈이 궁했다고 하던데, 동생을 만나서 지역으로 내려와 병원을 열게 됐다는 말이 건네졌다. 2016년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났고, 만난 지 3개월 만인 그 해 4월 혼인신고를 올렸다고 했다. 동생은 지역에서 나름 부자로 알려져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경위 허리가 자연스레 곧추 세워졌다.

수사2팀은 결국 사건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일단은 정식 수사 전 내사였다. 이미 화장으로 한 줌 재가 돼 버린 시신, 비록 살인 사건이 맞다 하더라도 증거가 될 수 있는 시신이 없는 사건. 팀원들이 그래서 극구 만류를 했던 건데, 이 경위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 경위가 전한 언니 말이 결정적이다. “그런데 말이지. 동생이 숨진 게 자정 즈음이었어. 하필 그 때 남편은 ‘산책을 하겠다’면서 자리를 비웠다고 하더라고. 더 이상한 건 뭔지 알아? 저번에도 이번에도 아내 심장이 멎었던 두 번이 다 비슷한 시간대고, 두 번 모두 남편이 산책을 나갔다는 거야. 이게 다 우연이었을까?”

수사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B씨 사인이 문제였다. 사망 판정을 내린 의사가 적시한, 진단서에 적혀 있는 건 분명 심정지. 예기치 않은 사고나 지병 등으로 인한 사망이 의료진이 내린 결론이다. 그 곳에는 어떤 타살에 대한 의심도 의구심도 없었다.

A씨 행적부터 차근차근 쫓아가야 했다. 아내가 숨진 그 시간, 산책을 가겠다고 집을 나선 남편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언니의 말에 따르면 그는 가족들에게 ‘밤 11시쯤 집을 나갔다’고 했다. 부부가 살던 집 근처를 돌면서 확인할 수 있는 폐쇄회로(CC)TV를 모두 모았다. CCTV상 A씨는 자정에서야 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밤 11시라던 말은 일단 거짓이었다.

행색도 의심스러웠다. 밤에 산책을 한다는 사람이 동네 이곳 저곳을 걸으며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알리바이 만들려고 저러는 거 아닌가요? 일부러 시간 때우려고 하는 것 같은데.” 수사팀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급대원을 불렀다. 사망한 여성을 병원으로 옮긴 이였다. 시신이 없는 지금, 시신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 경위는 그날 출동했던 소방서 구급대원들을 상대로 당시 상황을 물었다.

결정적인 한마디가 나왔다. “신고를 받고 집안에 들어갔을 때 이미 심장이 멎어 있었어요. 그런데 피해자 오른팔에 주사 자국이 있었다는 게 기억나요. 호흡을 못해서 확장 주사를 맞혀야 했기 때문에 똑똑히 봤어요.” 주사 자국은 보통 일주일 정도면 사라지기 마련. 게다가 대원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몇 시간도 안 된 것 같았어요. 자국이 아주 또렷했거든요.” 퍼뜩 이 경위 머리에 남편의 직업이 떠올랐다. 성형외과 의사. 주사와 약물을 아주 잘 다룰 수 있는 사람. “살인 사건으로 갑시다.”

3월 30일, 마침내 수사팀이 A씨 병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정식 살인사건의 수사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목표는 A씨의 살인을 입증하는 것,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찾아야 했다. 수사팀은 병원의 약품 구입내역을 병원 관계자와 대조하고, 약품제조실을 이 잡듯 뒤졌다. CCTV도 몽땅 걷어들였다.

“여기, ○○성형외과인데요. 원장님이 이상한 말을 남겨놓고 사라졌어요.” 압수한 CCTV 화면을 돌려준 다음 날(4월 3일), 병원 직원이 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휴대폰도 병원에 둔 채로, A씨가 갑자기 사라졌다. CCTV에는 모두가 출근하지 않은 이른 시각, 스스로에게 혈관주사를 놓아 목숨을 끊으려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남겨진 휴대폰에는 어머니 등 가족과 변호사에게 본인의 범행을 털어놓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비상이 걸렸다. 수사팀으로서는 살아있는 A씨를 찾아야 했다. B씨 죽음은 아직 ‘병사’로 남아있었다. 만에 하나 A씨가 목숨을 끊어버리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이 경위와 수사팀은 불길한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본인 자백이 아니더라도 A씨가 범인이라는 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어요. 사망 당일 제조실에 들어가 약물을 만들고, 주사기와 지혈대를 가방 안에 넣는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찍혀있었으니까요. 자백만 받으면 되는 거였죠.” 그는 같은 날 오후 2시50분쯤 영동고속도로 강릉휴게소 주차장에서 수사팀에게 붙잡혔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고 입을 뗐다. 명문대 의대를 나온 그는 서울 압구정동에서 병원을 개업할 만큼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였다. 하지만 2008년 환자들에게 허위로 입ㆍ퇴원확인서를 발급하다 벌금형을 받으면서 탈이 나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환자에게 프로포폴을 과다 투여해 숨지게 하는 의료 사고까지 내면서 결국 병원도 폐업해야 했다. 의료 사고와 병원 폐업에 따른 경제적 문제 등이 겹치면서 이혼도 피할 수 없었다.

재기를 꿈꾸던 A씨는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B씨를 만났다. 둘은 결혼을 약속하게 됐고, 다시 병원을 열기로 했다.

의사부인 살인 사건 범행일지 송정근기자

부부 관계는 곧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 생전의 B씨는 가끔 언니에게 “힘들다”는 얘기를 했다. 반면 사망자의 진술을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범행 동기에 대한 A씨의 주장은 구체적이다. 판결문은 이를 ‘기존 채무로 인한 금전 문제, 전처에 대한 양육비 지급 문제, 전처 소생 아들과의 면접교섭 문제, 피고인 모친과 피해자 사이의 고부갈등 문제 등’이라고 적시했다.

그냥 이혼을 하기는 어려웠다. 이혼을 하게 되면 병원 개업에 들어간 B씨 돈이 모두 빠져나갈 게 불 보듯 뻔했다. 마침 B씨가 현금과 8억원 상당 건물, 약간의 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만약 아내가 죽게 되면 모든 재산이 자신에게 넘어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11월, 그때부터 B씨를 살해할 계획을 조금씩 세워나갔다. 유족들은 “A씨가 형량을 줄여보려고 범행 동기를 가정불화로 몰아가는 것”이라며 애초부터 돈을 노리고 범행을 계획했다고 보고 있다.

A씨가 선택한 건 수면제와 골격근이완제였다. 전신마취제의 보조제로 수술에 주로 사용되는 골격근이완제를 과다 투약해 심장 활동을 멈추게 할 생각이었다. 병원 직원들이 모두 퇴근을 한 뒤 이들 약품을 사용하기 편한 형태로 조제했고, 출퇴근할 때 들고 항상 들고 다니면서 기회를 호시탐탐 엿봤다. 11월 15일 저녁 마침내 기회가 왔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중, B씨 물컵에 먼저 수면제를 녹였다. 물을 마신 B씨가 잠들자 A씨는 정맥 혈관에 골격근이완제를 투약한 뒤 집을 비웠다.

첫 번째는 실패였다. 시간 계산이 잘못됐다. 도착한 119구급대원의 응급조치에 B씨가 목숨을 건졌다. 다만 그 누구도 B씨 심장이 왜 갑자기 멈추게 됐는지는 알지 못했다. 2017년 3월 11일, 자정이 다 된 시각 A씨는 다시 한번 B씨 음료수에 수면제를 탔고, 잠든 B씨 팔에 주사를 놓았다. 결국 B씨는 심정지로 사망했다.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의사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자신의 의학지식을 살인범행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높다”며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A씨는 곧바로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고, 형은 그대로 확정이 됐다.

예산=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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