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 주교 "교황 방북의지 확고..차분히 준비해야"

2018. 10.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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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째 교황 처소 머물며 교황-문 대통령 면담 '정지작업'
"아시아 중시하는 교황, 한국이 아시아 가톨릭 이끌어 나가길 소망"

(바티칸시티=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가까이서 지켜본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북 의지가 확고하다는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이제 교황의 방북을 실현시키기 위해 차분히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한국 가톨릭계에서 교황청 사정에 가장 밝은 것으로 평가되는 유흥식 주교(67·대전교구장)가 지난 18일 이뤄진 프란치스코 교황과 문재인 대통령의 면담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소회와 향후 교황의 방북에 대한 전망 등을 밝혔다.

'주교 시노드'에 참석 중인 유흥식 주교 (바티칸시티=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교황청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 중인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가 22일(현지시간) 교황청 경내 교황 숙소인 산타 마르타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ykhyun14@yna.co.kr

유 주교는 22일 교황청 경내 교황 처소인 산타 마르타에서 연합뉴스와 한 단독 인터뷰에서 "교황과 문 대통령의 면담이 있던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교황과 마주쳤다"며 "다른 나라 주교가 교황에게 '북한을 정말 가신다고 했느냐'고 물었는데, 이에 대해 교황이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시더라. 교황의 방북 의지가 확고함을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도 겸하고 있는 그는 북한에서 초청장이 오면, 그때부터 비로소 교황의 방북을 위한 준비가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3일 개막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이하 주교 시노드)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명한 대의원 자격으로 참여 중인 유 주교는 지난 달 28일부터 산타 마르타에 체류하며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이 집전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 교황과 문 대통령과의 면담 등의 사전 정지 작업을 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주교 시노드는 전 세계의 주교 대표들이 3~4년에 한 번씩 모여 교회의 중대 현안을 논의하는 교황청의 가장 큰 행사로, 올해는 세계 각국에서 250여 명의 주교가 자리를 함께 한 가운데 진행 중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유흥식 주교 (바티칸시티=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8일 교황청에서 나란히 걷고 있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제공]

세계 각국의 주교회의 대표 외에 교황이 직접 지목한 30여 명의 대의원에 포함된 유 주교는 주교 시노드에 참석 중인 전체 주교들 가운데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산타 마르타를 숙소로 배정받아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해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추기경) 등 교황청 고위 사제와 빈번히 소통할 기회를 얻었다.

유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해인 2013년 10월, 교황에게 이듬해 8월에 대전에서 예정돼 있던 가톨릭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냄으로써, 교황의 한국 방문의 단초를 마련한 이래 교황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유 주교는 이날 인터뷰에서 "교황은 즉위 이후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한 첫 순방지로 한국을 택할 만큼 한국에 대한 사랑이 크신 분"이라며 교황이 방북까지 여러 난관이 있을 것이란 짐작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전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을 사실상 수락한 것은 한국에 대한 이런 애정과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교황의 방북이 실제로 이뤄지기까지는 면밀한 준비와 관련국 간의 철저한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교황이 무조건 방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무조건이라는 말은 맞지 않아요. 교황이 어느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실무적인 협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북한의 경우에는 더군다나 가톨릭 주교가 없는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양쪽이 협의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라 봅니다."

지난 11일 교황청에서 열린 '주교 시노드'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 [로이터=연합뉴스]

유 주교는 교황이 내년 5월에 중국과 일본을 묶어서 북한까지 가는 동북아 순방에 나설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근거 없는 소설이 난무하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교황의 방북 시기를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교황이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가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니, 이제 문 대통령이 북한에 교황의 이런 의중을 전달하고, 북한이 교황에게 정식 초청장을 보내야 교황 방북을 위한 실무적인 협의가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황의 일본 방문도 결정된 게 없는 상황이고요. 교황은 단지 내년에 일본을 가고 싶다는 의향만 밝혔을 뿐, 언제 갈 것이라는 발표를 한 적이 없습니다. 중국 방문 역시 교황청과 중국이 주교 임명 방식에 대해 이제 막 잠정 합의에 이른 것이죠. 교황의 중국 방문은 논의가 시작조차 되지 않았고, 실제로도 아주 먼 길로 예상됩니다."

유 주교는 "교황의 방북 시기를 억측하는 것은 일의 성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 교황청과 교황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교황의 방북이 성사될 수 있도록 필요한 단계를 밟으며, 차분히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교황의 방북은 북한은 물론 세계 역사를 바꿔놓을 수 있는 큰 사건임에 분명하지만, 이런 큰 일도 주어진 작은 것들에 충실할 때 비로소 성사될 수 있다"며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니만큼,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한 단계 한 단계를 충실히 밟아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유 주교와의 일문일답.

-- 교황청이 여러 면에서 문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상당히 배려한 것 같다.

▲ 교황청은 문 대통령이 선의와 열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에 용기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과 파롤린 추기경은 남북 정상이 지난 3차례 만났을 때 단둘이 오래, 깊이 이야기를 나눈 것을 유심히 지켜봤다고 한다. 같은 민족·형제이자, 같은 언어를 쓰는 남북이 스스로 평화를 이루고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게 교황청의 바람이다.

-- 파롤린 추기경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 때 한국어를 하신 것이 인상적이었다.

▲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이고, 한국민들이 참여하고 지켜보는 미사이기 때문에 한국어로 인사 말씀을 하면 더 큰 울림이 있을 거라는 것에 공감이 있었다. 여러 차례 만나 함께 연습했는데, 처음에는 생소한 발음에 다소 어려워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쁘게 연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교황의 방북이 실제로 이뤄질까.

▲ 교황과 문 대통령의 면담이 있던 18일 산타 마르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교황과 마주쳤다. 다른 주교가 교황에게 '북한을 정말 가신다고 했느냐'고 물었는데, 이에 대해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시며 방북 의지가 확고하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북한에서 초청장이 오면 교황의 방북을 위한 준비가 본격화될 것이다. 교황이 방북 의지를 밝힌 것은 한국에 대한 교황의 애정과 관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본다.

-- 교황은 왜 한국에 애정을 갖고 있나.

▲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생적으로 가톨릭 신앙이 전파된 한국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교황이 즉위 후 스스로 결정한 해외 첫 방문지도 한국이었다. 2013년 3월 즉위한 교황은 그해 7월에는 브라질을, 이듬해 5월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중동을 순방했지만, 그 일정들은 이미 전임 교황 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다. 아시아를 중시하는 교황은 한국이 아시아 교회를 이끌어갈 국가로 여러 면에서 적합하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고, 2014년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더 깊어졌다.

-- 교황의 방북 시기는 언제로 예상하나.

▲ 교황이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가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니, 이제 문 대통령이 북한에 교황의 이런 의중을 전달할 것이다. 북한이 이후 교황에게 정식 초청장을 보내야 교황 방북을 위한 실무적인 협의가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근거 없이 교황의 방북 시기를 섣불리 추측하는 것은 일의 성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 교황청과 교황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필요한 단계를 밟으며, 차분히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

-- 이번에 교황과 문 대통령 통역을 한 한현택 신부와 최근 교황청의 두 번째 한국인 외교관으로 부임한 황인제 신부를 발탁하기도 했다.

▲ 오래전부터 교황청 관료조직인 쿠리아로부터 한국 신부님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동안 한국 교회가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 우리도 세계 교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젊은 신부들을 키우는 것도 의미 있는 사명이다.

-- 이번 주교 시노드가 청년을 주제로 이어지고 있다. 젊은 신자들의 이탈로 가톨릭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데.

▲ '듣고, 함께 걷고, 분별하라'가 이번에 강조되고 있는 사항이다. 지금까지 교회가 청년들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나 되돌아보고 있다. 청년들이 우리를 떠난 게 아니라 교회가 청년들을 떠난 것이 아니냐는 반성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가르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과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것과 청년들의 삶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도와주는 것이 지금 시대에 교회의 사명이라는 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 가톨릭 교회가 최근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사제에 의한 성학대 은폐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 이 문제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가 통렬히 반성하고, 각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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