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니체가 있으니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

2018. 10. 23.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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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전채은의 내 사랑 프리드리히 니체
하찮은 인생을 빛나게 해준 존재들
내가 동물권 운동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한겨레]

죽은 아기 고양이를 내게 맡기고 떠났던 엄마 고양이가 돌아왔다. 만약 손을 뻗어 나에게 안기면 니체의 여동생으로 맞이하려 했는데… 손을 뻗으니 앞발로 나를 때렸다. 나는 겨울집을 보강했다. 나는 나의 원칙대로, 고양이의 선택을 따를 뿐이다.

20년 만에 학교로 돌아가 공부하랴 활동하랴 나는 사실 ‘번아웃’ 상태를 간신히 넘기고 있다. 힘들지 않냐고? 물론 힘들다. 그러나 육체가 힘들 뿐, 사실 마음은 아주 평화로운 상태다.

살다 보면 가장 힘든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이다. 그런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 몇 번의 위기와 실수를 넘기고 결국 내 몸과 마음이 일치되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했다. 나는 동물을 위한 도구이다. 자신을 도구로 정의하면 자아는 어디로 가냐고? 10년 이상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활동가가 왔다 갔다. 그들은 왜 포기하고 나는 왜 그대로 서 있을까. 욕심이 생기면 더 빨리 신념을 포기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나를 버리고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나의 인생의 중요한 목표로 가져가면 불행할 일이 없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돌아온 엄마 고양이를 만났다.
동네 길고양이 겨울집을 만들었다.

얼마 전 서울대병원에 뇌기증을 신청했다. 장기기증 신청은 벌써 예전에 했다. 만약 내가 뇌사 상태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장기기증에 사인했으니 장기와 각막을 꺼내 필요한 곳에 보낼 것이고 서울대병원에서 부검해서 병리학 연구에 쓰고 뇌를 꺼내 뇌 연구에 쓸 것이다. 나에게 삶은 선물이다. 우연히 세상에 와서 삶이란 선물을 받았으니 갈 때는 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 죽으면 끝 아닌가.

장기기증을 신청한 것은 이종장기 연구 때문이었다. 기증자가 너무 없어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이종장기를 연구하고 이에 따라 희생된 동물도 많았다. 내가 돈이 없으니 내가 가진 육체의 일부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 동물들이 아니었다면 그런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동물들이 가진 힘이 이렇게 대단하다.

직장을 못 잡아서, 가족과 사이가 나빠서, 누군가와 갈등이 생겨서, 자신을 불행하다고 느끼는가? 주변을 보라.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역사를 보라. 적어도 나는 전쟁을 겪은 적도, 강간을 당한 적도, 굶주림의 기억도 없다. 이 정도면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 아닌가. 자신이 운이 좋았음을 생각하지 않고 좋은 직장, 돈, 아파트, 명예, 권력… 도대체 왜 끝이 없나. 그렇게 살면 행복한가?

내가 행복한 순간에 집중하니 동물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동물이 불쌍해 보이고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깊게 들여다볼수록 그 안에서 동물을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보였다. 누구도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동물의 고통이 보였다. 누구의 책임인가. 누가 왜 어떤 이유에서 핑계를 대고 있는가. 분명히 이 지점에서는 동물에 대한 애틋한 감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에게는 사실관계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필요하며 지성이 필요하다. 동물의 도구로 사는 것이 억울한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 만만한 일은 아니다.

니체가 고개를 쭉 빼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간혹 우리가 동물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자부심을 가지는 활동가들도 많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인생을 빛나게 해 준 것은 동물들이다. 우리들의 하찮은 인생을 그들이 의미 있게 만들어주었고 세상에서 할 일을 찾아주었다. 인간과 동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진리다!

가을이다. 마을 고양이들의 중성화를 위해 덫을 주문할 예정이다. 겨울집도 주문해야 한다. 과제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동물학대축제를 여는 각 지자체에 항의전화도 해야 한다. 동물원법 개정을 위해 문제가 되는 동물원과 수족관을 찾아다니고 있다. 동물원 복지라는 주제로 넓게 이야기하니 자기는 문제가 없다면서 비판에서 빠져나오려는 업체들이 보였다. 아주 구체적으로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않으면 핑계가 늘어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마음과 정성과 신념만으로는 부족하다.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만든다. 나는 이기고 싶다. 뒤에 물러나서 세상 탓을 하며 푸념이나 하기는 싫다. 힘들어서 주저하는 활동가들도 채근해야 한다.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이렇게 이야기한다. “동물을 위한 활동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정말 내 길인지 알고 싶다면 일단 끝까지 달려봐야 한다. 모든 일이 성공하려면 전문성이 있어야 하듯 이 일도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다 힘들면 잠시 쉬었다 다시 시작하고. 그렇게 천천히 가면 된다.

나 자신은 절대로 포기할 사람이 아님을 스스로 믿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니체가 있다.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그러나 이렇게 막상 비장한 표정으로 니체를 바라보면 역시 별생각 없이 집사를 바라본다. ‘간식이나 내놔.’ 바로 이것이 고양이의 매력 아닌가.

글·그림·사진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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