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도 품격이 있죠?..태극기집회 뒤 서울역 가보니

CBS노컷뉴스 권희은 기자 2018. 10. 24.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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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 매주 술병 음식 쓰레기 등으로 엉망진창
낙서, 시민들과 충돌은 기본..에스컬레이터 매달리기도
화장실 사용 매너 없어 출입막았더니, 애국당 보복민원
"질서의식 꽝, 통제 불가능..주말마다 스트레스 시달려"
지난 20일 보수단체의 태극기집회 이후 서울역 광장에 버려진 쓰레기들. 태극기, A4용지를 비롯해 종이컵, 도시락 용기 등이 널려있다. (사진=독자 제공)
광장 한쪽에는 태극기와 함께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행사 피켓, A4용지 같은 집회 용품뿐 아니라 종이컵, 컵라면 용기, 스티로폼 도시락, 술병, 먹다 남긴 음식물까지.

푸른색 조끼를 입은 청소원들은 은색 집게로 쉴 새 없이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뒤로는 플래카드가 휘날렸고, 벽면, 기둥 등 곳곳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결백을 주장하는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매주 토요일 서울역에서 열리는 보수단체의 '태극기집회'로 서울역 일대에 난 생채기들이다.

매주 낯선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서울역 일대 상인들은 '태극기 집회'가 일으키는 문제로 쓰레기 투기, 고성과 몸싸움, 지나가는 시민들과의 충돌 등을 들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행렬이 시청, 광화문 등의 도심을 거치는 탓에 버스 주요노선이 우회하고 교통체증을 빚는 등 버스기사, 시민들의 피해도 심각했다.

서울역 광장에는 정부를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지난 20일 보수단체의 태극기집회 이후 서울역 광장에 버려진 쓰레기들. 태극기, A4용지를 비롯해 종이컵, 도시락 용기 등이 널려있다. (사진=독자 제공)
◇ 술병, 음식물 쓰레기까지 투척…아지트처럼 카페 점령하고 음식물 취식

가장 큰 문제는 집회 후 발생하는 쓰레기들.

서울역 노숙인 이용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A씨는 "(쓰레기) 양도 많고, 음식물 쓰레기도 다 섞여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노숙인 이용시설은 서울역 광장의 청소 업무를 맡고 있다.

실제로 A씨가 건넨 사진 속 쓰레기 더미에는 도시락, 컵라면 용기에 술병까지 수북했다.

A씨는 "얘기라도 해주시고 써야 하는데, 그냥 태극기 달고 왔다 갔다 하면서 막 쓰시니까 화장실 이용도 못 하게 막게 됐다"고 했다.

서울역 인근 시설의 화장실을 무질서 하게 쓰는 탓에 외부인 출입을 막고 의경들이 입구를 지키게 됐다는 거다.

그러자 보복이 들어왔다고 한다.

광장 앞 박물관 관계자는 "처음엔 허용하다가 화장실을 못 쓰게 했더니 애국당에서 민원을 넣어 곤란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많은 인원이 나와 집회에 참여하고,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다 보니 광장 근처의 카페 등이 아지트화 되기도 한다.

지난 20일 보수단체의 태극기집회 이후 서울역 광장에 대한애국당의 플랜카드, 현수막 등이 버려져있다.(사진=독자 제공)
서울역 광장 근처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 B씨는 "집회하는 날에는 집회 끝날 때까지 일반 손님은 못 본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영업장 내부가 집회에 참여한 보수단체 회원으로 가득 차있어서, 들어왔던 손님들은 곧바로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또 "집회하다 들어오신 분들이 커피 시키면서, 어디서 드시던 것도 많이들 가지고 오신다"며 "김밥이나 도시락 같은 것들을 내부에서 드시고 쓰레기통에 다 버리고 가시니까, 보통 토요일에는 손님 한 번 차면 쓰레기통도 큰 거 하나 다 차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 집회 장소 이탈해 시설물 매달리고, 태극기 흔들며 고성

이 '태극기집회'는 원칙적으로는 서울역 앞 광장에서만 진행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참가자들은 장소를 이동해 서울역 앞 아울렛 매장, 에스컬레이터 등에 진을 치고 소란을 피우기도 한다.

서울역 앞에서 1, 4호선 역사로 내려가는 긴 에스컬레이터는 안전 사고 우려 때문에 항시 안전요원이 대기하는 곳이다.

안전요원 C씨는 "질서도 전혀 안 지켜지고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C씨에 따르면, 이들은 에스컬레이터에 매달려 태극기를 흔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고성을 지르기도 한다.

서울역 광장의 한 노상점포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결백을 주장하는 낙서와 함께 태극기가 꽂혀 있다.
이를 제재하는 안전요원들에게는 욕설을 내뱉고, 이 과정에서 시민들과 말다툼을 하는 경우도 있다.

C씨는 "매주 토요일마다 돗자리 깔고 술 마시고, 난리통이 벌어지니 우리 입장에선 정말 스트레스"라고 했다.

◇ 행진 탓에 꽉 막힌 도로, 고통받는 버스기사들

서울역을 떠난 집회 행렬은 시청을 거쳐 광화문, 종로3가 등으로 향한다.

차도를 점령하고 이동하는 행렬에 차선이 꽉 막힌다. 이 곳을 지나는 버스 노선은 대부분 우회할 수밖에 없다.

서울역과 시청, 광화문을 모두 거치는 한 버스를 운행하는 D씨는 "(집회가) 너무 '무대뽀'식 아닌가 싶다. 1년이 다되어 가지만 여전히 우회노선에 불편해하는 시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평소 통행량이 많은 도로에 차량들이 우회까지 하다보니 극심한 교통 체증은 덤이다.

지난 20일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광장 앞 도로를 행진하고 있다.(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그는 "집회행렬을 하면, 한 번 인파가 다 지나는데 보통 2~30분이 걸린다"며 "우리 배차가 보통 5~6분인데, 20분만 잡아도 4대가 못 지나가고 서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배차 간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이는 전체 운행시간이 늘어나는 결과로 나타난다.

D씨가 운행하는 노선은 기점에서 종점을 돌아 차고지로 들어오는데 평균 두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집회가 있는 날은 보통 세 시간에서 세 시간 반이 소요된다.

D씨는 "전에는 주말에 운행하는 게 참 좋았다. 한산하고, 여유롭고. 그런데 요즘은 주말에 다니는 게 스트레스다. 기사들도 주말 운행을 기피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매주 토요일 열리는 태극기집회는 지난 20일 기준 86회째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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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권희은 기자] cathyheu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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