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출퇴근·통학길 자전거 이용 62%"..'탄소 제로' 도시로 [덴마크를 느리게 걷다]

코펜하겐(덴마크) | 글·사진 정유미 기자 2018. 10. 2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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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유럽 환경도시, 코펜하겐

차값 150% 등록세 매겨 차량 억제해 이산화탄소 배출 38% 줄여 일회용품 안 쓰고 풍력 에너지 확대…9개 정당 신재생 의기투합

한국은 지금 에너지정책을 놓고 날선 공방이 한창이다. 정부와 여당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보수 야당은 탈원전 정책을 서둘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낙농 국가였던 덴마크는 왜 원자력이 아닌 신재생에너지를 택했고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을까. 정부와 여야, 기업과 국민들이 합심해 2050년 ‘탄소 제로(0) 국가’를 표방하며 에너지 수출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덴마크를 찾았다.

북유럽의 자그마한 나라 덴마크.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5분의 1, 인구는 570만명이지만 삶의 만족도는 높다.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 양성평등 국가로 널리 알려진 덴마크는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로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 1위에 3차례나 올랐다.

한국에서 11시간30분 비행 끝에 지난 15일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도심 한복판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코펜하겐 호텔의 70%는 덴마크 정부의 ‘에코(Eco) 인증’을 받았다고 들었던 터. 소박해 보이는 녹색호텔로 들어서는데 엘리베이터 옆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풍력에너지를 사용하는 바람의 도시” “자전거를 타고 수돗물을 사랑하며 낭비를 혐오하는 도시” “절약하고 재사용하는 재생의 도시” “일회용 봉투가 아닌 바구니를 사용하는 도시”….

실제 호텔에서 쓰는 샴푸, 린스를 비롯해 휴지, 칫솔, 쓰레기봉투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건이 천연 재생용품이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일회용품을 꺼내기가 왠지 쑥스러웠다.

코펜하겐은 자전거 천국이었다. 도시 곳곳 어디에나 두바퀴 자전거가 넘쳐났다. 자전거 전용도로(450㎞)는 물론이고 편하게 세워둘 수 있는 공간도 많았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덴마크의 상징인 안데르센 ‘인어상’이 있는 항구까지의 거리를 검색해보니 4㎞. 자전거를 빌릴까 싶었지만 1시간에 30크로네(약 5200원)가 넘었다. 대중교통 요금을 알아보니 도시철도와 버스 가격이 24크로네(약 4200원) 정도였다. 시민들이 모두 자전거를 가지고 있으니 특별히 대여할 일이 없어 가격이 높았던 것이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사람들은 62%가 자전거로 출퇴근하거나 통학한다. 코펜하겐의 도시철도에는 자전거를 안전하게 놓을 수 있는 거치대 부분이 넓다.

“정말 놀랍게 변한 항구도시입니다. 코펜하겐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교통체증과 대기오염 등 환경 문제가 심각했지요. 지금은 항구에서 수영도 합니다. 저탄소 지속가능한 도시를 향해 끝없이 도전하고 있지요.” 덴마크 민관합작 에너지전문기관 ‘스테이트 오브 그린’에서 일하는 이버는 “코펜하겐은 2014년 EU로부터 유럽의 환경도시로 지정됐다”면서 “출퇴근과 통학길 자전거를 이용하는 경우가 전체 시민의 62%에 달하고 러시아워 때는 교통 신호등이 자전거 운행에 맞게 바뀌기도 한다”고 말했다.

덴마크에서 자전거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는 효자인 반면 자동차는 지구를 오염시키는 에너지 낭비의 주범이다. 덴마크는 1977년 자동차 등록세를 최고 180%까지 매겼는데 2015년부터는 18만5000크로네 이상의 차를 구입할 때 150%를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2000만원짜리 소형차를 살 때 당장 등록세 3000만원을 더해 5000만원을 내야 하는 것이다. 승용차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ℓ당 15㎞ 이하인 디젤차의 경우 한국에 없는 이산화탄소세를 포함해 연간 135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주유소는 물론 주차장은 찾아보기 힘들고 주차요금도 비싸다.

덴마크 에너지정책이 전환점을 맞은 것은 1973년 오일쇼크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99% 원유를 수입하던 덴마크는 1975년 중장기 에너지계획을 세웠고 1985년 원전 가동을 중단하면서 신재생에너지로 방향을 틀었다. 2012년에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사회민주당, 덴마크인민당, 사회자유당 등 9개 정당이 에너지 협약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총에너지의 55%를 신재생으로 대체해 ‘2050년 탄소 제로(0) 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코펜하겐 시의회는 2012년 ‘2025년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도시’를 선언했다. 2015년 코펜하겐시 인구는 2005년 대비 16%나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바이오와 풍력에너지 사용을 늘리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8%나 줄였다.

온종일 걷다 보니 갈증이 났다. 생수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는데 페트병 콜라(500㎖)가 4800원이나 됐다. 한국에서 500원 하는 500㎖ 생수가 무려 3500원이 넘었다. 세계적인 펌프회사 그런포스의 위더는 “지하수에 염소 소독제 등 화학물질을 넣지 않고 안전하게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는 기술이 덴마크에는 있다”면서 “누수량을 방지해 에너지 낭비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찜찜했지만 얇은 지갑을 생각해 도심 공원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었다. 놀랍게도 사먹는 생수만큼이나 깔끔하고 시원했다.

잔디가 깔린 도심공원 나무마다 잘 익은 무공해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사과를 한 입 물고 ‘인어상’에 도착하자 시민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줄지어 인증샷을 찍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동대문 정도 거리이니 돌아갈 때는 택시를 탈까 싶었지만 “5만원은 넘게 나올 것”이라는 매점 주인의 얘기에 포기했다.

자전거를 타거나 느리게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나라. 코펜하겐은 이미 ‘세계 최초의 탄소 제로(0)’ 도시에 다가선 듯했다.

코펜하겐(덴마크) | 글·사진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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