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장 급하다고 밀어붙여선 안돼" "정부 신뢰 회복이 첫걸음" [핵 폐기물 처리,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주영 기자 2018. 10. 2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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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하) 우원식·양이원영 좌담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왼쪽)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마감시간’이 다가오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과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정부에 대한 신뢰 회복”을 문제 해결의 첫걸음으로 꼽았다. 오랫동안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온 우 의원과 양이 처장은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향신문과의 좌담회에서 “핵폐기물 처리 문제가 시급한 현안이긴 하지만 급하다는 이유로 밀어붙여선 해결할 수 없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탈핵 에너지전환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양이 처장은 대표적인 탈핵 운동가이자 전문가다.

- 한국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아무 대책이 없다. 35년 넘게 방치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원식 = 사용후 핵연료를 10만년 이상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하는데, 10만년 동안 문제가 없을 지역을 선정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세계적으로도 영구처리시설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 핀란드가 32년간의 논의를 거쳐 2015년 부지 선정 후 건설에 들어갔고, 우리보다 훨씬 많은 104기의 원전을 가진 미국도 1977년부터 부지를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과제다.

양이원영 = 핵폐기장 건설을 밀어붙일 때 시급하다, 이거 안 하면 원전 중단된다는 것이 주요 논리로 등장한다. 핵폐기물 문제를 원전을 가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거다. 이런 접근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걸 떠안는 지역사회는 희생을 강요받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주체로 같이 문제를 풀어보자가 아니라 돈 몇 푼 줄 테니 희생하라는 논리다. 또 하나는 안전에 대한 인식 차이다. 10만년, 100만년 방사능 수치가 나오고 발생한 열을 식히지 못하면 폭발할 수 있는 핵폐기물은 안전하지 못하다. 전 세계 30개 넘는 나라가 왜 해결을 못했겠나. 그간 원전을 확대하려는 정책, 안전을 과신하는 태도를 갖고 접근하다보니 한 발도 못 나간 거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근혜 정부 때 공론화 과정, 시민사회나 전문가 다 빠져나가…절차적 정당성 없고 내용도 부실 임시저장시설 건설 땐 주민 의견 수렴 의무화…용량·사용기간 못 박아 정책 신뢰 근거 만들어야

우원식 = 후쿠시마, 체르노빌 등 원전사고를 겪으며 국민들이 원전과 방사능 위험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계속 급하다며 밀어붙였다. 그래서 안면도, 굴업도, 부안 사태가 생긴 거다. 핵폐기장을 만들려면 정부의 원전 정책에 대해 신뢰가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만 가능하다. 어떻게든 밀어붙여서 해보겠다는 자세로는 불가능하다.

- 산업통상자원부는 공론화위원회 논의를 토대로 2016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만들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당시 의견 수렴 과정이 민주적이지 못했고, 에너지 정책이 바뀐 만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2년 가까이 공론화 과정을 거쳐 만든 것을 재검토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양이원영 = 제대로 절차를 밟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 때 공론화위를 구성해 시작했는데 시민사회 쪽은 시작하는 날 사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론화위가 운영되는 과정 자체가 민주적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보고서는 반쪽짜리 보고서다. 시민사회가 다 빠졌고, 지역도 대부분 빠진 상태에서 남은 사람들이 만든 보고서에 근거해 만든 기본계획은 합의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핵폐기물을 갖고 있는 지역과 어떻게 소통하고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해결하느냐가 출발점이다. 시민사회, 지역주민과 합의하지 않은 계획은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 하더라도 동의하기 어렵다.

우원식 = 공론화는 가장 중요한 게 절차의 정당성이다. 그런데 참여했던 지역 주민이나 시민사회나 전문가가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공론화한다는 의미는 세상에 알려 의견을 모은다는 것 아닌가. 가장 민주적이어야 하는데 민주적이지 못했고 사용후 핵연료 문제가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결론 낸 것을 봐도 뚜렷한 게 없다. 예민하고 어려운 문제도 충분히 논의해 결론을 찾았어야 하는데 내용도 부실하기 이를 데 없다.

양이원영 = 당시 정부는 원전 내에 임시저장시설을 건식(고준위 핵폐기물을 대기 중에서 공기로 열을 식히는 저장방식)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미래세대에 떠넘기지 않고 핵폐기물을 해결할지를 논의한 것이 아니라 원전을 계속 가동하고 확대하기 위해 부지 안에 저장할 곳을 우선 찾은 거다. 보관할 다른 장소를 찾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니 20년, 30년 뒤로 미뤄놓고 당장 원전 부지 안에 건식 저장하자는 결정만 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 문제가 시급하긴 하지만, 원전을 확대하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 안된다. 논의를 하다 합의를 못하거나 시간이 더 필요하면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합의를 끌어내겠다는 선언을 하는 게 중요하다.

우원식 = 지난번 공론화위 합의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임시저장시설이다. 그런데 ‘임시저장시설을 건설해서 처분 전까지 보관할 수 있도록 한다’고만 합의했다. 임시저장시설의 용량을 어떻게 할지,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고 그냥 짓는다고만 해놨다. 임시저장시설은 해당 원전에서 사용기간 동안 나오는 핵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으면 된다. 다른 원전에서 핵폐기물을 옮겨와서는 안되고 해당 원전에서 나온 것만 처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규정들을 지역주민과 전문가들이 논의해서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는 것인데 전혀 하지 않았다.

양이원영 = 핀란드와 우리나라는 사용후 핵연료의 양이 다르다. 핀란드는 원전이 4기밖에 없다. 반면 우리는 사용후 핵연료가 이미 1만t이 넘는다. 또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할 때 철강 안에 할지, 구리통 안에 할지에 따라 가격이나 안전성 차이도 크다. 이런 세부적인 얘기들이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 사용후 핵연료가 지금 습식(물속에서 열을 식히면서 보관하는 것)으로 보관되고 있는데 사고 위험은 없는 건지, 건식 보관으로 넘어가면 그게 정말 더 안전한 건지 이런 검토가 면밀하게 이뤄지지도 않았다. 주민들은 ‘도대체 이게 무엇을 위한 거냐’라는 의문이 생긴다. 지금 정부는 탈원전을 표방했지만 주민들은 정권이 바뀌면 원전이 다시 추진되는 거 아니냐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기간이나 방식에 대해 구체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

핵폐기물 문제, 원전 가동 수단으로만 삼으면 지역 사회는 희생을 강요받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어 전기를 쓰는 사람은 전 국민…지역에만 떠넘기지 말고 한국 사회 전체가 어떻게 책임질지 논의해야

- 핵폐기물 처리 문제가 국가적 과제임에도 그동안 원전 인근 지역 이슈로만 다뤄져왔다. 모두가 함께 고민하는 의제로 만드는 것이 1차적인 과제인 것 같은데.

우원식 = 2년간 지역사회와의 논의를 거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했다. 지역사회에서도 임시저장시설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기 지역에 한번 만들면 시설이 영구히 가는 거 아니냐는 걱정도 있다. 그래서 시기를 못 박아야 한다. 해당 원전이 사용되는 기간 동안만 운영하고, 다른 원전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못 들어오게 하고, 저장시설이 만들어질 때까지만 운영된다는 게 충분히 논의되면서 주민들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게 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주민 의견 수렴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담았다. 고준위 방폐물 안전관리위원회를 두고 위촉직으로 원전 소재 지역 주민단체를 5명 이상 포함하게 하고 부지선정 절차를 구체적으로 정해서 논의를 하자는 거다. 사용후 핵연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전국 단위의 공론화, 지역의 임시저장시설 문제에 대한 지역 단위의 공론화가 같이 이뤄져야 한다.

양이원영 = 지역만의 사안으로 가선 안된다. 원전 전기를 쓰는 사람은 전 국민인데 그 폐기물 책임은 왜 지역에 한정해서 얘기가 되느냐는 불만이 크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어떻게 위험을 공유하고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돼야 한다. 열린 자세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의 시작은 결국 신뢰의 회복이다.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회에서 제안해서 토론하고 합의해나가는 과정이 결국 비가역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 아닌가. 정부는 실속 없는 공론화위원회를 핑계 삼아 ‘위원회가 결정했으니 우리는 실행한다’는 식이었다. 방향이 정해진 다음 실무를 행정부가 하는 건 맞지만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선 국회의 역할이 먼저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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