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빠 사형' 청원 세자매 절규.."평생 맞았다, '엄마 딸'로만 살겠다"

고양/고성민 기자 입력 2018. 10. 25. 07:01 수정 2018. 10. 2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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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부친 사형’ 청원 딸들
"짐승도 때리면 말듣는다"며 딸들 구타
"좋은 구경있대 가보면, 엄마 폭행 현장"
"아버지 똑똑해서 심신미약 주장할 것"

화장(火葬)이었다. 22일 이씨 성을 가진 47세 여성이 전 남편 손에 무참하게 살해됐고, 몇줌의 재로 남았다. 젊은 여성들의 손에 유골함이 넘겨졌을 때, 화장장에는 숨이 넘어가는 듯한 울음소리가 퍼졌다.

24일은 피해자 이씨의 발인날이었다. 기자는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서울 양천구 장례식장에서 경기도 고양 장지까지 동행했다. "엄마 살해한 아빠를 사형시켜주세요"라는 청와대 청원을 올린 딸들과 함께였다.

딸들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아버지를 심신미약으로 감형하지 말고, 사형에 처해달라"는 글을 썼다. 세 자매 의견을 모아 맏이 김모(24)씨가 대표로 작성했다. 세 자매의 아버지는 범행을 저지르기 전부터 "나는 우울증이 있으니 감방 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해왔다는 것이다.

살인 혐의로 체포된 김모(49)씨는 주먹으로 가정을 다스렸다. 그는 어린 딸들을 때릴 때마다 "짐승도 때리면 말을 듣는다"고 말해왔다. "엄마도 질릴 때까지 맞았다"는 게 이들의 증언이다.

24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살인사건 피해자 이모씨의 장례식이 열린 서울 양천구 장례식장. /고성민 기자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2일 오전 4시 45분쯤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 아파트 지상주차장에서 이혼한 아내 이씨를 흉기로 마구잡이로 찔러 살해했다. 현장 CCTV에는 비틀거리는 용의자의 모습이 찍혔다. 김씨는 "이혼 과정에서 쌓인 감정 문제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례식장과 화장장에서 세 딸은 서럽게 울었다. ‘아버지를 사형해달라’는 청원은 너무나 이례적인 것이어서 ‘왜 이들은 이럴 수 밖에 없었나’를 더 묻고 싶었다. 슬픔을 삭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두 딸에게 인터뷰를 청했고 그들이 허락했다. 아직 어린 막내는 인터뷰하지 않았고, 자매들 이견(異見)이 없는 부분은 답변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ㅡ‘아빠를 사형시켜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엄마의 한을 풀어주려면 최고형(刑)을 때려야 한다. 형을 무겁게 주고 싶은데 우리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국민들에게 부탁하면 목소리가 커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형시켜달라’고 썼다."

ㅡ아버지는 ‘심신미약’이 아닌가.
"아빠가 살해 혐의로 체포됐다는데, (경찰서가 아니라) 병원에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 아빠는 ‘나는 우울증이 있으니까 감방이 안 무섭다. 6개월이면 나온다’고 말해왔다. 범행 전날에는 ‘내가 왜 무서운지 아느냐. 똑똑하기 때문에 그렇다’고도 했다. 경찰조사에서 (아빠가) 무조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너무 급해졌다. 아빠는 심신미약이 아니다. 심신미약으로 꾸며서 형을 깎으려는 것이다."

ㅡ가정폭력이 어느 정도였나.
"그냥 일상이었다. 아빠가 집으로 오는 것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아빠 없는 친구가 부러웠다. 3년 전에 엄마가 얻어맞은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아빠가 ‘집으로 와라. 좋은 구경 한번 시켜주겠다’고 했다. 와보니까, 엄마가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얼굴이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일방적인 구타였다. 그 사람이 얼어붙은 우리를 지켜보면서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신고할 생각도 못 했다. 그때 우리는 너무 어렸다. 보복이 두려웠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당하면서 살아왔다."

ㅡ모친은 저항하지 못했나.
"우리는 어릴 때부터 맞았다. 중학교 접어들면서 폭행의 강도가 심해졌다. 사소한 일에도 손찌검을 했다. 입버릇처럼 ‘짐승도 때리면 말을 듣는데, 너네는 짐승만도 못하다’면서 때렸다. 우리가 한창 맞고 있을 때 엄마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엄마가 말리지도 못하고, 방안에서 귀를 막고 웅크리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를 너무 무서워했다. 이혼하게 된 것도 결국 구타 때문이다. 이혼 이후에도 아빠가 칼을 들고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ㅡ이혼 이후에도 도망 다녔다는 얘기인가.
"엄마는 도망 다녔다. 이혼한 뒤 처음에는 여성보호센터에 계시다가 지방에 몇 달, 서울 강북구에 몇 달 계시는 식이었다. 2016년 1월 1일 거처가 탄로 난 일이 있다. 아빠가 막내를 미행해서 집을 알아낸 것이다. 흉기와 테이프, 밧줄을 챙겨와서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훈방 조치됐다. (경찰에서)강력한 처벌이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도 포기했다. 이후에도 서울 노원구, 강서구로 거주지를 옮겨 다녔다. 우리는 항상 겁에 질려 있었다. 길을 걷다가도 뒤에 누군가 있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4년 동안 6번이나 옮겼다. 이 정도 말씀 드리면 아실 거다."

25일 오전 10시쯤 ‘강서 전처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48)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박소정 기자

ㅡ범행 사실은 어떻게 알았나.
"(둘째 딸)전날 엄마가 일찍 주무셔야 한다고 했다. 왜 그러냐 했더니 ‘허리가 아파서 새벽에 수영하러 간다’고 들었다. 그런 얘기를 나누고 잠들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혹시나 싶어서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모르는 남자가 받았다. 그 사람이 ‘이OO씨가 사망했습니다’고 전했다. 우리 엄마 이름이었다. 그때는 무슨 소릴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해가 안 되니까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경찰이었던 것 같다."

ㅡ후회가 있나.
"(첫째 딸) 평소에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 부모님 이혼 이후에는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적었다. 그래서 한스럽다. 돌아가시기 전날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용돈을 드렸다. 그 뒤로 8시간 만에 돌아가셨다."

"(둘째 딸)엄마가 변을 당했을 때 그것도 모르고 자고 있었던 것이 가슴 아프다. 주변이 다 아파트였는데 ‘악’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우리 엄마,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얼마나 아프고, 무섭고, 외로웠을까."

ㅡ범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우리는 피의자의 딸이다. 그러나 피의자의 딸이기보다 피해자의 딸로 살아갈 생각이다. 우리는 고(故) 이OO의 딸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이 아니다. 가장 강력한 처벌이다. 청원게시판에 쓴 대로 최고형을 원한다. 사형까지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빠를 사형시켜달라"는 국민청원은 게재된 지 이틀만인 25일 현재 10만여명이 동의했다. 청와대는 청원 게시글에 20만명 이상이 동의하면 답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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