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계약은 1~3차 하청업체와, 근무는 원청서..'무늬만' 프리랜서

이효상 기자 입력 2018. 10. 26. 06:01 수정 2018. 10. 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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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IT 노동자 503명 실태조사 해보니
ㆍ‘원청과 실제 계약’ 20%뿐…70% ‘원청회사가 직접 통제’
ㆍ고강도 노동·임금체불에도 ‘사업자’ 이유로 보호 못 받아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와 근무형태는 같으면서도 개인사업자로 취급 받는 ‘프리랜서’는 정보기술(IT)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단기간에 고강도 노동을 투입하는 IT 업계 생리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정한 집단이나 회사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프리랜서의 사전적 정의와 달리 일반 회사원처럼 매일 아침 같은 곳으로 출근해 팀 일원으로 일하며 월급을 받지만 대부분 노동권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자와 사업자 사이에 끼인 채 IT 업계의 고강도 노동을 감내하는 게 이들이 처한 현실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한국정보통신산업노조(IT 노조)와 함께 지난달 9월12일부터 이달 3일까지 IT 업계 노동자 503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25일 경향신문에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프로젝트를 가동할 때만 인력을 채용하는 IT 업계 관행이 업계의 고용생태계를 크게 변화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하청에 재하청, 심지어 재재하청 업체를 통해 필요할 때만 노동력을 공급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전체 응답자 503명 중 원청과 계약을 맺고 있는 사람은 100명에 불과했다. 1차 도급업체 소속이 111명, 2차 하청업체 소속이 101명, 3차 이상 용역업체 소속이 75명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근무처는 원청이 201명으로 가장 많았고, 1차 도급업체가 122명으로 뒤를 이었다. 대다수가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1~3차 하청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 중 소속사가 아닌 원청 회사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다는 응답도 70%에 달했다. 계약 형태에 따라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에 해당할 수 있는 부분이다.

프리랜서로 일한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125명(25%)이었다. 계약기간은 ‘1개월 이상 6개월 미만’(62.4%)이 대다수였다. 프리랜서 대부분은 회사에 소속된 노동자처럼 일했다. 프리랜서 91.2%는 회사 사무실 등 지정된 장소에서 일을 했다. 96.2%는 정기적으로 정해진 날짜에 임금을 받도록 계약을 했다. 그런데도 프리랜서 66.7%는 업체와 고용계약 대신 용역계약을 맺었고, 이로 인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도 10.3%나 됐다.

노동환경은 취약했다. 일주일에 52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응답한 프리랜서는 30.8%로 정규직(23.5%)보다 많았다. 71%는 임금체불을 경험했다. 프리랜서 65.6%는 과도한 업무와 임금체불 등으로 프로젝트 도중 그만둔 경험이 있었다. 일부는 정규직 채용에 응시했다가 회사로부터 프리랜서 전향을 권유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노동관련법 보호를 받지 않는 프리랜서를 선호하는 회사가 많다는 것이다.

왜곡된 근무형태와 장시간 노동은 각종 질환으로 이어졌다. 지난 1월 한 IT 스타트업에서 정규직 웹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장민순씨는 장시간 노동에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응답자의 48%는 1주일에 1일 이상은 ‘상당히 우울했다’고 답했다. 정신 질환으로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경우가 24명 있었고, 최근 1년간 자살을 시도했다는 응답자도 14명이나 됐다. 낮과 밤이 바뀌는 장시간 노동으로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병증은 만성피로(33명), 근골격계질환(32명), 위장장애(31명) 순으로 많았다.

이 의원은 “많은 인재들이 IT 전문가를 꿈꾸며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공대로 진학했다. 그러나 그들이 한참 일할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들어선 현재,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이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하여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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