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박근혜 생가터 사라지고, 전두환 나무 죽고..TK 가보니

김정석.김윤호.백경서 입력 2018.10.28. 12:56 수정 2018.10.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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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획] 국정농단 2년, TK 역대 대통령 5인 흔적들
청남대 대통령 광장에 조성된 실물 크기의 역대 대통령 동상. [중앙포토]
'보수'를 상징하는 TK(대구·경북)는 박정희·박근혜·이명박·노태우·전두환 등 대통령을 5명이나 배출한 곳이다. 이들은 TK에서 태어났거나 유년을 보냈다. TK 지역 곳곳엔 이들 대통령 생가와 역사관, 표시석, 동상 같은 각종 기념시설이 지어져 있다. 예전엔 잘 정돈돼 있었다. 주말이면 방문객이 북적였다. 2년 전 이맘때인 2016년 10월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전까지 그랬다. 지금은 어떨까. 현장을 찾아갔다.

TK 역대 대통령의 각종 흔적은 2년 새 대부분 썰렁해지고, 사라지고, 방치된 '천덕꾸러기' 신세로 바뀐 분위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생가터는 표지판조차 사라졌다. 박 전 대통령 생가터는 대구의 번화가인 중구 삼덕동 1가에 있다. 서울 명동과 같은 동성로 한가운데다. 지난달 30일 찾은 동성로는 주말을 맞아 외출 나온 인파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생가터 앞을 찾았지만, 어디를 봐도 생가터를 알리는 표시를 찾을 수 없었다. 생가터 자리로 보이는 곳엔 보도블록이 깔렸고, 주변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만 여럿 눈에 띄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생가가 있었던 대구 중구 동성로 거리. 대구=김정석 기자

원래 생가터 자리엔 표지판이 있었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11월 누군가 이 표지판에 붉은색 라커칠을 했고, 이후 철거됐다. 대구 중구는 라커칠이 된 박 전 대통령 생가터 표지판을 다시 세울 계획이 아직 없다고 밝혔다. 생가터 앞에서 만난 시민 김영호(33)씨는 "생가터가 있다는 말은 얼핏 들었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11월 대구 중구 박근혜 전 대통령 생가터에 설치된 표지판에 누군가 붉은색 라커칠을 한 모습. [뉴시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구에 남긴 흔적들도 희미해지고 있다. 대구공고 24회(1951년) 졸업생인 전 전 대통령은 2015년까지만 해도 총동창회 체육대회에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달 17일 찾은 대구 동구 대구공고. 입구에 세워진 그의 동상과 모교 방문 기념 표지석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학교 안에 있는 총동창회 건물에 조성했던 노태우·전두환 자료관은 텅 비어 있었다. 자료관을 채웠던 전 전 대통령의 육성 녹음(1994년 4월 대구공고에서 강연한 내용)도 들리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모교인 대구공업고등학교 내 세워진 방문기념비. 대구=백경서기자

경북 상주에선 32년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심은 느티나무가 고사해 논란이 되고 있다. 상주시청 앞 마당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86년 9월 16일 전 전 대통령이 국도 25호선 낙단교 개통식에 참석한 뒤 심었다. 지난 7월 상주시의회 임시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승일 시의원이 "범법행위를 저지른 전 전 대통령이 심은 나무를 상주시에서 아직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한 지 한 달 만에 관리부실 등으로 나무가 말라 죽었다.
상주시는 고사한 나무를 최근 뽑아냈다. 그 자리엔 다른 느티나무를 심었다. 이 시의원은 "나무 뿌리가 많이 훼손된 상태에서 가뭄 등 환경적 요인으로 나무가 말라 죽은 것 같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었다"고 했다.
경북 상주시 무양동 상주시청 무양청사 앞마당에 있던 전두환 기념식수가 잘 자라다가 갑자기 고사한 모습. [사진 이승일 상주시의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년을 보낸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덕성1리)은 말 그대로 '썰렁'하다. 이곳엔 이 전 대통령이 살던 집을 복원한 초가집과 그의 업적을 전시한 덕실관이 있다. 덕실관은 지난해 지진이 일어난 후 내부수리에 들어갔다가 6월 말 재개관했다.

지난달 18일 찾은 덕실마을은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방문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덕실관을 지키는 공무원 2명과 덕실마을 일대 환경미화를 맡은 공공근로자 서너명이 보일 뿐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년시절을 보낸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에 세워진 조형물. 포항=김정석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년시절을 보낸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 포항=김정석 기자

덕실마을은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된 지난 3월 22일부터 방문객이 계속 줄고 있다. 구속 후 첫 주말인 3월 24일 방문객 350명을 기록했던 덕실마을은 꾸준히 그 수가 감소해 9월 들어 평일 60~80명, 주말 100~130명 정도로 떨어졌다.
경북 구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도 비슷한 분위기다. 방문객 수가 2년 새 반토막 났다. 2015년 51만9211명에서 2016년 39만2566명으로 줄었다. 지난해엔 26만3102명으로 2015년 대비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올 들어서도 지난 8월 말까지 13만1173명이 찾는 데 그쳤다.
경북 구미시 상모사곡동 박정희 대통령 생가 전경. 구미=김정석 기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노 전 대통령 생가는 서촌초등학교 삼거리에서 차를 타고 굽이진 1차선 시골길을 10분여(1.5㎞) 더 달려서야 나온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백운영 문화해설사는 "방문객마다 '전 대통령 생가인데 진입로가 너무 좁고 주차도 불편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대구 동구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대구=백경서 기자

노 전 대통령 생가는 1901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 전 대통령이 유년을 보낸 곳이다. 규모는 대지 466㎡, 건축물 66.45㎡의 목조건물 3동이다. 이곳도 2016년부터 방문객이 반토막 났다. 2015년 11만6645명에서 2016년 5만1244명, 2017년 3만4155명, 올해 9월까지 1만1236명이 찾았다.

허만호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권 성향이 달라진다고 해서 역대 대통령 관련 시설의 관리 수준이 달라진다면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가치관을 탄압하는 것"이라며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최소한의 관리 예산을 책정해 정권 성향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포항·구미=김윤호·김정석·백경서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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