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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으론 살길 막막해..생계형 '노인창업' 급증

입력 2018. 10. 29. 05:06 수정 2018. 10. 2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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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살 이상 대표 법인등록 14.2% 증가
연령대별 평균의 2.2배
포화시장 몰리고 77%가 소자본 창업
정부 지원도 청년층에 집중
"재기 기회 없이 빈곤층 전락 위험"

[한겨레] 김아무개(61)씨는 올해 초 서울 을지로에 건자재 판매회사를 차렸다. 대기업 건설회사에 다니던 김씨는 3년 전 정년퇴직했다. 퇴직금으로 그럭저럭 생활을 했지만 점차 바닥으로 내려가는 통장 잔고 탓에 사업에 뛰어들었다. 내년부터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월 70만원 남짓한 수령액으로는 ‘100세 시대’를 버티기가 힘들 게 뻔했다. 좀 더 여유로운 노후를 설계하려면 다른 대안이 없었다. 직원 3명을 채용해 업무를 나눠주고 자신은 건설현장 인맥을 활용해 직접 영업을 뛰면, 회사 운영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만큼 매출은 충분히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리 녹록지 않은 현실이 금세 다가왔다. 김씨는 벌써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김씨처럼 환갑을 넘긴 나이에 회사를 세우는 ‘노인창업’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28일 중소벤처기업부의 ‘신설법인 동향’을 보면, 올해 들어 60살 이상 고령층이 대표인 신설법인 등록 건수가 크게 늘었다. 올해 8월까지 누계로 전체 신설법인은 7만435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6.2% 증가했는데, 대표자 나이가 60살 이상인 신설법인은 14.2% 늘었다. 60살 이상 신설법인이 연령대별 증가율에서 압도적 1위로, 전체 평균보다 2.2배나 높다. 창업활동의 핵심연령층인 40대와 50대의 신설법인 증가율은 각각 3.1%, 50대 5.9%로 전체 평균에도 못 미쳤다. 60살 이상이 대표자인 법인이 전체 신설법인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해도 전체의 6~7%대에 머물던 60살 이상 비중은 2014~2016년 8% 선으로 올랐다가 지난해에는 10.2%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두 자릿수 비율에 진입했다. 올해 8월까지 누적 비중은 10.5%로 최대치 기록 경신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노인창업이 대부분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과 경쟁이 치열한 업종에 몰린다는 데 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형 창업’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영역에서 ‘생계형 창업’을 늘리는 데 노인층이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8월까지 등록된 60살 이상 신설법인의 10곳 중 6곳가량이 서비스업이다. 그것도 영세 소상공인의 3대 생계형 업종으로 꼽히는 도소매, 음식·숙박업, 시설관리서비스업 등에 집중돼 있다.

더구나 올해 60살 이상 법인의 업종별 증감 추이는 지난해보다 더 어두워 보인다. 지난해에는 제조업이 20.5% 늘어 노인창업 증가를 주도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도소매업(44%)과 숙박음식업(29%) 등이 크게 늘고 제조업은 오히려 3.9% 줄었다. 게다가 전체 신설법인의 76.6%는 자본금 5천만원 이하 소자본 창업이다. 명색은 법인사업체이지만 기업 규모가 개인사업자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영달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인사업자도 5년 내 생존율이 40% 선을 넘지 못하고, 특히 경쟁이 포화상태인 업종에 소규모 창업을 하는 것은 실패확률을 더욱 높이는 요인이 된다”며 “노인층의 사업 실패는 재기할 기회조차 없이 곧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예의주시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창업 교육과 지원 정책이 청년층에만 집중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교수는 “창업의 성공 여부는 철저한 사전 검토와 준비 작업에 달린 만큼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과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창업을 억제하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노인창업의 증가는 인구구조 변화를 뛰어넘는 현상이다. 통계청의 인구·고용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60살 이상 인구의 증가율은 5.2%이고, 취업자 수는 6.5% 늘었다. 다른 연령층보다 상대적으로 증가율이 높기는 하지만 신설법인 증가율보다는 훨씬 낮다. 경제활동인구에서 노인 비중이 커지는 속도 이상으로 노인창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만큼 사업 실패에 따른 노인 빈곤화의 위험지수도 높아지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창업자들을 연령층으로 구분한다면 청년층은 취업에 실패한 경우일 것이고 고령층은 노후 생계수단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일자리를 만드는 생계형 창업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당장 일자리를 늘리거나 노인복지를 확대할 방법이 없어서 연령대별 창업의 특성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다”며 “노인창업의 증가를 장려하거나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또 다른 사회경제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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