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예정가 부풀려 40% 폭리..낙찰 후엔 싼 부품으로 설계 변경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2018. 10. 2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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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효성 전 직원, 발전 공기업·민간 ‘입찰 담합’ 내부고발
ㆍ부품 공급하는 민간기업끼리 순번 정하고 로비 진행
ㆍ효성, 중부발전에 상품권·골프 접대…“룸살롱까지”

한국전력 등 발전공기업에 민간회사들이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발전기 부품을 공급하면서 입찰담합 비리가 일상화돼 있다는 내부고발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대표적 독과점 시장으로 통하는 발전시장이 ‘발전마피아’들에 의한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많았지만 내부고발자가 털어놓은 입찰비리 실태는 일반의 예상을 넘었다. 발주 시작 전부터 민간회사들은 예정가격을 높이기 위해 발전공기업 직원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고 낙찰을 받은 후에는 가격이 싼 부품으로 설계변경을 하기 위해 또다시 로비를 시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은 28일 효성중공업 전력영업팀에 근무하면서 내부비리를 고발했다가 2015년 11월 징계해고된 김민규 전 차장의 고발 내용과 입찰담합 비리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을 공개했다.

김 전 차장이 2014년 11월 현대중공업 장모 부장과 통화한 녹취록은 낙찰 순번을 바꾸기 위한 대화로 시작된다. 김 전 차장에 따르면 당시 신고리 3·4호기에 들어가는 8100KVA짜리 변압기 입찰은 현대중공업이 낙찰받기로 돼 있었지만 김 전 차장은 장 부장에게 효성이 낙찰을 받을 수 있도록 부탁했다.

“아이 그거 돈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갖고.”(장 부장)

“엄청 커요 이거는. 예산이 7억이잖아요. 8100KVA잖습니까.”(김 전 차장)

“응 그러면 무지 남는다.”(장 부장)

“에이, 무지는 아니에요. 한 40% 정도.”(김 전 차장)

“아, 참 LS(산전)는 안 들어와요, 들어와요?”(김 전 차장)

“걔는 알지도 못할 거야 아마.”(장 부장)

“그런데 가끔씩 뜬금없이 들어오더라고요. 그건 제가 체크해 볼게요.”(김 전 차장)

장 부장이 김 전 차장의 거듭된 부탁에 “이○○ 부장이 너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넘기라고 그러더라”고 하자 김 전 차장은 “네 엄청 도움이 됩니다”라고 답변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현대중공업과 효성중공업이 평소 입찰에 들어가기 전 입찰가격을 서로 긴밀히 상의하고 이를 통해 40%가 넘는 폭리를 취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 전 차장은 또 2012년 9월 중부발전의 ㄱ대리와 오전 근무시간 중 나눈 카카오톡 대화도 공개했다.

“사무실에 들어가기는 좀… 명절 앞둔 시기라. 근처 커피숍에 주차되는 데 있나요. 1시30분쯤 어떠세요.”(김 전 차장) “회사 주차장에 주차하시고 근처에 탐앤탐스 커피숍 있어요.”(ㄱ대리)

김 전 차장에 따르면 당시 카톡 대화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중부발전을 찾아가 상품권을 전달하기 위해 약속시간을 정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당시 중부발전은 300억원 규모의 신보령발전소 변압기 입찰을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효성은 입찰 예정가격을 알고 싶어 했다. 신보령발전소 변압기는 효성에 돌아가기로 순번이 정해져 있었지만 회사 입장에서 한 푼이라도 더 높은 금액에 낙찰을 받으려면 미리 입찰 예정가격을 알아내야 했던 것이다. 김 전 차장은 “ㄱ대리한테 상품권 10장을 전달했고 대략적인 입찰 예정가격이 320억 수준이라는 귀띔을 받고 회사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효성중공업은 김 전 차장이 알아낸 정보로 입찰을 했으나 중부발전이 개찰을 연기하면서 실적 집계에 차질이 생기자 이번에는 골프 로비를 했다. 김 전 차장이 2012년 11월 상급자인 ㄴ팀장에게 “팀장님 11월10일 운동 예약되는 곳 있을까요. 먼저 물어보네요. ㅠㅠ”라고 하자 ㄴ팀장은 “확답은 말아라. 알아봐야 되니”라고 답변했다. 이후 중부발전의 ㄱ대리가 “11월10일 솔모로 pine 07:38 예약완료”라며 먼저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고 김 전 차장은 ㄱ대리가 예약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가졌다. 라운딩에는 두 사람 외에 남동발전의 ㄷ대리와 김 전 차장의 당시 직장 상사가 합류했다. 김 전 차장이 제시한 당시 골프스코어 카드에 ㄱ대리는 ‘한세영’, 남동발전의 ㄷ대리는 ‘정예준’으로 적혀 있었다. 모두 가명이었다.

김 전 차장은 2011년에는 2단계 평택복합화력발전소 변압기와 차단기 입찰(190억원 규모)을 앞두고 서부발전의 ㄹ차장을 상대로 골프 접대를 했다. 역시 스코어카드에 ㄹ차장은 ‘신선수’(가명)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 전 차장은 “중부발전의 ㄱ대리를 상대로는 골프장뿐 아니라 강남의 북창동식 룸살롱 접대도 했다”며 “ㄱ대리는 골프나 룸살롱 접대를 할 때마다 남동발전의 ㄷ대리를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김 전 차장에 따르면 효성중공업은 낙찰을 받고 나서도 설계변경 승인을 받기 위해 로비를 진행했다. 설계변경을 통해 싼값의 부품으로 교체가 이뤄지면 이익률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김 전 차장은 “발전소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들은 업체들끼리 담합해 순번을 정한 후 낙찰금액을 높여 40%를 남기고 설계변경을 통해 10% 정도 더 남기는 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해왔다”고 털어놨다.

김 전 차장은 2015년 11월 효성중공업에서 해고된 후 공정거래위원회에 자신이 참여했던 6건의 입찰담합 비리를 고발했으나 지난 8월 공정위는 1건에 대해서만 비리를 인정하고 과징금 4000만원을 부과했다.

김 전 차장은 “2014년 11월 현대중공업과 담합을 시도한 녹취록을 제시했는데도 공정위는 ‘내가 당시 영업라인에 있지 않았다’는 회사 측 말만 믿고 현대중공업과의 담합은 무혐의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검찰에서도 나머지 5건 모두 기소하면 제보자도 공범으로 함께 처벌할 수밖에 없으니 1건만 기소하자고 했다”며 씁쓸해했다. 김 전 차장으로부터 접대를 받았던 발전공기업 직원들도 남동발전의 ㄷ대리만 경고처분을 받고 아무도 징계를 받지 않고 넘어갔다.

이훈 의원은 “발전공기업을 상대로 한 독과점업체들의 입찰담합은 적발도 쉽지 않고 걸려봤자 수천만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김 전 차장이 제시한 증거들을 기초로 공정위의 철저한 수사와 이를 묵인하고 협조한 공기업 직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징계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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