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섬, 삼쇠
[오마이뉴스 박진홍 기자]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기자 말
유럽 대륙에서 북부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북해 쪽으로 툭 튀어나온 반도와 몇 개의 큰 섬으로 이뤄진 해양국가 덴마크. 이 나라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약 120킬로미터(km), 차로 약 1시간 30분을 달려 칼룬버그항에 도착한 뒤 다시 카페리로 1시간 30분을 가면 삼쇠(Samsø)섬이 나온다. 덴마크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섬이다.
강화도의 3분의 1 정도 크기인 114제곱킬로미터(㎢)의 땅에 약 4000명이 사는 이 작은 섬이 기적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곳에서 쓰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원에서 얻기 때문이다. 동시에 섬 바깥에서 전기를 전혀 수입하지 않는 '100% 자립'을 지난 2006년 세계 최초로 달성했다.
▲ 독일 북부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북해 쪽으로 뻗어 나온 반도국가 덴마크. 항구도시인 코펜하겐과 삼쇠섬처럼 풍부한 바닷바람으로 전기를 만드는 도시와 마을들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모범적인 에너지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
ⓒ 구글 지도 |
당시 덴마크 정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과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등의 청사진을 담은 '에너지21' 정책을 마련했다. 이 목표를 구체화하기 위한 시범지역으로 5개 후보지와 경쟁 끝에 삼쇠가 선정됐다. 목표는 10년 안에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을 만드는 것이었다.
▲ 삼쇠섬 인근 바다에 설치된 해상풍력발전기와 섬 안 들판에서 돌아가는 육상풍력발전기들. |
ⓒ 삼쇠에너지아카데미 |
▲ 덴마크의 연간 전력 소비에서 풍력이 차지한 비율 변화. 덴마크 전체 전력 소비 중 풍력으로 생산한 전력 비율이 2007년에는 19.9%였지만, 2017년에는 43%로 10년 만에 2배 이상 커졌다. |
ⓒ 덴마크 에너지청, 박진홍 |
"덴마크의 풍력은 주로 지역 개척자들에 의해 개발됐습니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덴마크 정부는 석유를 대신할 모든 종류의 대체에너지 자원을 장려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풍력이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후 구체적인 풍력 장려 정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죠."
에너지정책 전문가인 클라우스 스구트 덴마크공과대학(DTU) 에너지경제규제본부장은 지난 7월 19일 <단비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덴마크의 에너지전환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바람이 풍부한 덴마크에서는 1891년 학교 교사였던 폴 라 쿠르(Poul la Cour)가 최초로 발전용 풍차를 개발한 이후 1950년대 중반까지 날개를 개량하는 등 각 지역에서 실험이 이어졌다. 이런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석유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대안으로 풍력이 재빨리 부상했다는 것이다.
스웨덴, 독일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덴마크도 70년대에 두 차례 세계적인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에너지전환을 시작했다. 덴마크 에너지청에 따르면 1972년 덴마크의 총 에너지소비 중 92%는 석유였다. 산유국인 덴마크는 2016년을 기준으로 하루에 14만9000배럴의 원유를 생산, 98개국 중 38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과거처럼 석유에 의존했다면 여전히 많은 양을 수입해야 하는 처지였을 것이다.
스구트 교수에 따르면 덴마크 정부는 1976년 최초의 국가에너지계획을 수립, 석탄과 원자력을 중심으로 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구트 교수는 "당시만 해도 재생에너지의 역할은 한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덴마크 시민들은 정부의 원자력발전 계획에 반발했다.
"원전 말고 재생에너지!" 이끌어낸 시민의 힘
핵발전의 잠재적 위험에 주목한 시민단체 '원자력정보기구'는 정부 공식계획에서 원자력을 빼고 재생에너지를 넣은 '대체에너지 시나리오(AE 76)'를 발표해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당시 덴마크는 스웨덴과 달리 건설 중인 원전이 없었다.
스구트 교수는 "우리도 1973년부터 원자력 도입을 검토했고, 국립 에너지연구기관인 리소연구소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했지만 시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무산됐다"고 회고했다. 덴마크 의회는 1985년 원전건설 계획의 공식 폐기를 결의했다.
"1988년 수립된 세 번째 에너지계획(Energi 2000)은 세계 최초로 원자력이 빠진 공식 에너지 계획이었습니다. 200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 줄이고 풍력발전으로 전기 공급량의 10%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덴마크 정부는 이후 풍력발전 육성에 박차를 가했다. 리소연구소는 베스타스(Vestas Wind Systems)같은 풍력발전기 제조사와 함께 발전기 개량 연구를 진행했다.
▲ 멀리 풍력발전기가 보이는 덴마크 코펜하겐 앞바다에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다. |
ⓒ 제정임 |
최근에는 독일, 중국 등의 추격으로 시장점유율이 낮아지고 있으나 세계 1위는 내주지 않고 있다. 베스타스의 2017년 매출액은 99억 5300만 유로(약 13조 291억 원), 이자 및 세전이익(EBIT)은 12억 3000만 유로(약 1조 6101억 원)였다. 베스타스의 풍력 터빈은 제주 행원 풍력발전소, 군산 새만금 풍력발전소 등 우리나라에서도 총 165기가 돌고 있다.
주민 참여 협동조합이 풍력터빈 75% 소유
덴마크에서 풍력발전이 급성장한 데는 FIT 등 보조금의 힘이 컸지만, 협동조합을 통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삼쇠에너지아카데미는 삼쇠섬의 성공 비결을 '지역 소유'로 꼽았다. 삼쇠에너지아카데미의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이 섬의 육상풍력터빈 11개 중 9개, 해상터빈 10개 중 5개가 농부 등 개인과 주민협동조합 소유다. 삼쇠시가 소유한 나머지 터빈에서 나오는 이익도 모두 시 운영비와 재생에너지 투자비용으로 쓰인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풍력협동조합은 전국적인 운동이 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토니 세바 교수가 쓴 <에너지 혁명 2030>에 따르면 덴마크에서는 2001년 기준 10만 가구, 2005년에는 15만 가구 이상이 풍력협동조합에 가입했다. 이런 협동조합이 덴마크 전체 풍력터빈의 75%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기준 인구가 560만 명 남짓인 나라에서 매우 높은 참여율이다. 스구트 교수는 "풍력협동조합은 소수 농민들이 함께 모여 작은 풍력 터빈을 건설하던 70~80년대에 매우 효과적이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보다 더 큰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펜하겐에서 3.5km 떨어진 바다에 조성된 미들그룬덴(Middelgrunden) 해상풍력발전소를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스구트 교수에 따르면 2001년 2MW급 터빈 20기로 세계 최대규모의 해상풍력발전단지가 된 이곳은 코펜하겐 시 소유 전력회사와 '코펜하겐 에너지·환경협회'라는 풍력협동조합이 각각 절반의 소유권을 가졌다. 협동조합에는 코펜하겐과 인근 지역 주민 8650명이 참여했다.
▲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3.5km 떨어진 바다에 조성된 미들그룬덴 해상풍력발전소. 시민 9천여명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절반의 지분을 소유했으며, 코펜하겐 전력 수요의 4%를 공급하고 있다. |
ⓒ 제정임 |
정밀한 예측으로 공급 안정성 99.9%
풍력,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흔히 '햇볕이 약하거나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는 전력을 생산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어쩔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2018 대한민국 에너지전환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나선 크리스토퍼 붓짜우 덴마크 에너지청장은 이런 의문을 한 마디로 일축했다.
▲ 크리스토퍼 붓짜우 덴마크 에너지청장이 지난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에너지전환 컨퍼런스’에서 강연하고 있다. |
ⓒ 대한민국 에너지전환 컨퍼런스 운영 사무국 |
붓짜우 청장은 이와 함께 덴마크가 지난 6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100% 전기 생산' '2050년까지 화석연료에서 완전 탈출'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설정했으며 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덴마크의 경험 (하)] '석유 먹는 하마'가 줄어들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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