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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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노동존중특별시에서 노동존중사회로 나아가는 성장통 / 김병철

입력 2018. 10. 29. 18:46 수정 2018. 10. 3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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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2016년 5월28일, 한 청년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에 말문이 막혔던 그날을 기억한다. 고인은 강북지역 49개 지하철 역사의 스크린도어 전체를 관리했던 고작 4명의 인력 중 한명이었으며, 외주업체 소속의 비정규직이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스크린도어 정비를 위해 구의역 9-4 승강장으로 홀로 달려갔으나,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던 지하철을 결국 피하지 못하고 결국 생을 달리하고 말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공공과 민간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많은 일자리를 비정규직, 저임금, 외주하청으로 돌리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고인과 같은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의 가치가 ‘위험의 외주화’로 떠밀리는 현실을 한국 사회는 그대로 방치해왔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노동에 관해선 집중적으로 정규직화를 추진하였다. 그럼에도 동일노동·동일처우의 원칙이 온전히 실현되기엔 ‘무기계약직’란 고용 형태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다시 수용하며, 동일노동·동일처우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투자출연기관 무기계약직의 온전한 정규직화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구현하는 데 있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고 더 좋은 일자리를 늘리려는 서울시의 노력은 응당히 평가를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정규직화 전환 정책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은 마냥 환영하는 입장이기보단 공정성에 관한 기준을 놓고 과연 합리적인 방향인지 사회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사상 최악의 실업난과 불안한 미래에 시달리며 정규직이 된 청년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는 지탄이 언론에 가득하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정규직에 합격한 일부 청년들에게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두고 과연 정의에 부합하는 방향인지 묻는 날 선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노동일수록 좀 더 정당한 대우가 이뤄지고 직접고용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정한 경쟁에 가담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청년들의 절박함을 우리 사회가 놓쳐선 안 된다는 두개의 주장이 충돌하는 것처럼 비친다. 얼핏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른 하나의 문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정말 이 두개의 주장은 함께 실현될 수 없는 문제일까?

더 많은 사람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고 좀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건 당연히 하나의 정책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 개개인의 삶의 배경과 현재의 처지는 모두 제각각이므로 이해관계는 복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우선이라는 안전의 가치와 특권 없는 공정한 절차성의 문제가 대립하는 것으로만 인식된다면 우리 사회는 결코 함께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 문제를 조금만 더 먼저 성찰했다면 구의역의 한 청년노동자의 죽음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고, 공공부문 정규직 경쟁률이 몇십대 일까지 치솟지 않았을 것이라는 성찰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가운데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에선 올해 3월 서울교통공사에서 완전히 정규직으로 전환된 1285명 중 108명이 기존 정규직의 친인척으로, 고용세습이 이뤄진 권력형 채용비리 게이트라 규정하고 나섰다. 이에 서울시는 왜곡된 주장이라며 친인척이 일부 있지만 그 과정은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엄격하게 심사를 했다고 반박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명의 청년으로서,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왔던 노동자로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지난 7년간 서울시가 보여준 ‘노동존중특별시’로 대표되는 노동정책과 청년실업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청년정책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작금의 갈등과 논란은 지난 시기 차별과 불평등을 치유해가는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하나의 성장통이다. 성찰에 앞서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지지도 않은 채 청년들이 겪고 있는 경쟁의 고통을 볼모 삼아 상호간의 일자리 빼앗기 식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심지어 ‘무임승차’론을 호도하며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을 공고화하는 무책임한 목소리들이 빨리 멈춰지기를 촉구한다. 죽거나 다치지 않고 노동하는 것이 일터의 당연한 권리임을,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는 게 특권이 아닌 사회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는 사회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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